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처리를 놓고 여야가 극렬한 대결을 이어가고 있다. 여당은 일부 당내 이견에도 불구하고 본회의에서 8월 안으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고, 야당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끝까지 저지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국회에서 다뤄지는 모든 ‘쟁점 법안’은 통상적으로 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찬반이 갈린다. 여당이 국회에서 8월 안에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호언해 온 ‘언론중재법 개정안’ 역시 여야가 확실한 찬반 입장으로 나뉜다는 점에서는 분명 ‘쟁점 법안’이 맞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이 법안을 여당 내 추진 세력과 강성 지지층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외 언론 단체들은 물론 법조계, 학계가 들고 일어나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하고, 심지어 여당 내에서조차 우려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언론을 개혁하자는데 왜 이토록 반대가 심한 걸까. 우선 이 법안은 ‘민주주의’라는 말을 쓰기 부끄러울 정도로 도처에 위헌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이 법의 핵심은 위·조작 보도로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언론사에 피해액의 5배까지 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데 있다. 그런데 위·조작 보도를 막을 요량이면 지금의 법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한데 왜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는 가중 과잉처벌카드를 꺼낸 것일까. 한마디로 껄끄러운 언론 보도에 재갈을 물리려는 의도가 아니고는 달리 설명이 안 된다.
그렇다면 여당은 내부에서조차 비판하는 법안을 왜 이토록 서둘러 강행 처리하려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그 배경에 조국 사태가 있음을 지적한다. 2년 전 당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에 내정된 뒤 딸과 관련된 각종 의혹 보도가 쏟아지자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것을 말한다. 이것이 언론과 검찰 간의 검은 유착관계의 증거라는 것이다.
여당과 일부 극렬 지지층은 지금도 일부 언론들이 당시 ‘가짜뉴스’를 쏟아낸 것이 조국 사태를 부른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대선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하는 시점에서 이런 사태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언론에 거액의 징벌을 가하고 뉴스도 차단할 수 있는 특단의 법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여당은 이 법안에 대한 반발이 거세자 미국 등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법이라며 문제가 없다는 식이다. 그러나 미국은 오보, 또는 그 어떤 위·조작 보도라도 언론사의 ‘현실적 악의’를 입증해야 할 책임을 원고(피해자)가 지게 되어 있다. 대놓고 5배까지 배상을 청구하라고 하고, 그 입증 책임 또한 언론사에 사실상 지우는 여당 법안과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있다.
정파적인 찬반 논란을 떠나서 언론 보도의 피해자는 항상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피해자들에 대해서 언론사들이 충분히 책임을 다해 왔는지에 대해서도 반성할 점이 없지 않다. 그렇다고 이런 법을 만들면 피해자의 인권 보호 기능은 어느 정도 나아지겠지만 반대로 힘을 쥔 자에 대한 감시와 비판 기능은 약화해 결국 그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는 언론이 검찰개혁과 마찬가지로 특권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집단 이기주의를 드러내는 것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그런다고 이런 비판의 손발을 다 자르면 좋아할 사람은 또 누구겠는가. 그런 점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의 최대 무기는 권력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는 언론으로 하여금 무서워 몸을 사리게 만드는 것이다. 그 미치는 효력 또한 전방위적이어서 일반 언론 방송뿐 아니라 유튜브 등 의사소통이 활발한 인터넷 공간까지 재갈을 물리는 효과가 단박에 나타날 것이다.
법적 물적 대응 측면에서 열악한 편에 속하는 대부분의 교계 언론도 예외일 수 없다. 교계 언론은 일반 정치적 사안보다는 교계 내부의 문제를 취재하고 보도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나 그 안에는 일부 교회의 비리나 목회자들의 도덕적 탈선, 이단 집단의 한국교회 침투를 막는 비판 감시 기능도 포함돼 있다. 그런데 이 법이 통과되면 징벌적 손해배상이 무서워 ‘관보’로 전락하는 언론매체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한국교회연합은 23일 논평에서 이 부분을 지적하며 “징벌적 소송이 남발되는 상황에서 언론이 ‘살아있는 권력’과 자본의 부패와 비리 보도에 위축됨으로써 나타날 그 모든 피해는 대다수 국민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샬롬나비도 24일 “언론의 허위 보도에 대해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토록 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허위 보도 피해 구제’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으나 실상은 비판 언론의 입을 막으려는 언론 자유 제한법”이라고 했다.
여당이 강행하는 ‘언론중재법’에 대해 일부 언론은 ‘언론징벌법’ 심지어 ‘언론재갈법’이라는 신조어까지 쓸 정도다. 법안의 제목이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임에도 그 내용은 언론을 징벌하고 재갈을 물리는 데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언론은 누군가에게는 늘 성가시고 불편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힘이 있을수록, 또 그 힘을 불의와 불법에 사용한 사람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이런 사람들에게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그 불편한 존재들을 털어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힘 있는 권력자가 어떻게 해서든 감추려는 어두운 구석에 국민과 특히 약자가 빠져서 허우적대는 꼴을 보면서도 어찌 입 다물고 귀 막고 있겠는가. 힘을 가진 자에 대한 비판과 감시 기능이 약해지고 국민의 알 권리가 침해돼 이득 보는 사람을 가만 놔두는 것은 한 패거리나 마찬가지다.
거여의 입법 폭주가 어디 이번뿐인가. ‘대북전단금지법’도, ‘공수처법’도 다 이런 식으로 몰아붙였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인 언론에 징벌을 가해 재갈을 물리려는 독재적 발상은 생각할수록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시대적 착각이요 역사적 오판이다. 지금은 군부독재 시대가 아닌 민주주의가 만개한 21세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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