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rles Joseph Stanlandㅣ실로에 간 베냐민 군사들ㅣ개인 소장

성서화 자료를 모으다 보니 어느 날 이상한 그림을 발견 했다. 그것은 춤추는 여인들 사이에 군인들이 난입하여 여인들을 납치하는 장면이었다.

필자는 사건 원전을 찾아 사사기를 다시 찬찬이 읽기로 했다.

그 동안 나는 구약의 사사기를 읽을 때마다 마지막 부분에 가면 성경에 이런 이야기도 있는가 하고 생각했다. 우습기도 하고 허망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모두 21 장으로 구성된 사사기에서 12 사사의 이야기를 기록하다 보니 박진감이 넘치는 전쟁이야기도 모두 짧은데 반해, 유독 3장이나 되는 비교적 많은 분량을 차지한 사건이 세 번 있었다.

기드온과 삼백용사의 전쟁이야기, 입다와 그 딸의 슬픈 이야기는 한 편의 드라마 같은 내용이어서 읽을 때 마다 감동을 받는다.

그러나 제일 마지막의 레위인과 그의 첩 이야기(19~21장)는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언제나 의문투성이였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어떤 레위 사람이 행실이 좋지 못해 달아난 자기 첩을 용서하고 처갓집(베들레헴)에서 데리고 오는 도중 날이 저물어 기브아란 마을에서 유숙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날 밤에 그 동네 비류 (깡패)들이 그 녀를 강제로 끌어내 욕을 보이고 죽게 하였다.

레위인은 이 원통한 사실을 모든 지파 사람들에게 호소문을 돌렸다. 그 결과 이스라엘 연합군(40만 명)이 동원되어 기브아 마을이 속한 베냐민지파를 응징하기로 하였다. 결국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베냐민 군사 오만 명을 비롯해 사람과 가축을 전멸시켰다.

다만 장정 600명만이 간신히 돌산으로 도망가 숨었다. 하지만 여자가 없어 대가 끊어지게 되었다.

이스라엘 연합지파가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보니 아뿔싸!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서 한 지파가 사라짐을 염려하게 되었다.

궁리 끝에 그들이 포로로 잡아온 길르앗 처녀 400인을 베냐민 장정에게 주었다. 그래도 여자가 모자라므로 그 당시 성소가 있던 실로에서 가지는 절기 축제 때에 춤추는 처녀들을 보쌈 해 가도록 넌지시 종용하였다.

포도원에 숨어있던 베냐민 군사들은 밤중에 무도회에 잠입하여 춤추는 실로의 처녀들을 아내로 삼기위해 집단으로 보쌈 해갔다. 그들은 성읍으로 돌아가 성을 중건하여 살게 됨으로서 베냐민 지파가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고 근근이 회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도판상 : 베냐민의 부인들(춤추는 여인을 보쌈하는 장면)ㅣ모건 그림성경ㅣ프랑스파리(1240년대)ㅣ뉴욕 모건도서관 소장

레위인과 그의 첩 이야기는 스토리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성소에서 제사 일을 한다고 뽐내는 레위인, 창녀가 된 그의 첩, 남색하자고 대드는 기브아 깡패들, 강간당하여 죽은 여인을 열 두 덩이로 토막 내어 이스라엘 사방에 보내 복수 하려한 그 남편의 행위 등 너무나 타락하고 잔인한 사건이다. 그뿐인가? 하찮은 전쟁에서 연합지파 4만 명과 베냐민 지파 5만 명이 넘는 동족이 목숨을 잃은 정신 나간 전쟁이라 은혜롭지 못하다고 평소 생각해왔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데로 행하였더라"는 사사기의 마지막 결론을 유도하는 하나의 에피소드쯤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사시대가 끝나고 왕정시대의 초대 이스라엘 왕인 사울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서 깜짝 놀라게 되었다.

사울의 고향마을이 <기브아>이며 그가 이스라엘 왕이 된 후부터 '사울의 기브아', '베냐민의 기브아'라고 사울의 이름에는 반드시 기브아 마을 이름이 함께 따라다니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스라엘의 다른 왕들에게는 출신마을 이름을 붙인 이는 없다. 유독 사울에게만은 약 150 여 년 전 기브아 마을에서 있었던 부끄러운 역사를 잊지 말라고 붙인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니 사울은 춤추는 여인을 보쌈 해 간 기브아인(베냐민 지파) 600 인 중 한 군사의 자손인 것이다.

Gerbrand van den Eeckhoutㅣ기브아에 온 레위인ㅣ1650년대ㅣ워싱턴 국립미술관 소장

그런 연유로 사울은 사무엘이 그에게 왕으로 기름 부으려 할 적에 "나는 이스라엘 지파 중 가장 작은 지파인 베냐민 사람이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 하나이까" 하며 극구 사양하였다.

미스바에서 거행된 국왕 대관식 때에도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을 찾았으나 그는 짐짝 사이에 숨어서 나서지 않았던 겸손한 지도자였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데 하나님의 인사방식은 실로 위대하다.

사사시대의 최고 통수권자는 사사이다. 200년 간 12명의 사사를 뽑을 때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큰 집안이던 작은 지파이던 간에 12지파에서 사사를 한 명 씩 골고루 등용시켰다. 대통합 인사! 바로 그 것이었다.

더 중요한 또 하나의 인사 조건은 뭘까? 하나님이 택한 지도자의 품성은 바로 '겸손'이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약 150만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나온 해방군 사령관은 80세의 모세였다.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양치기를 하며 처가살이를 하던 그를 지도자로 뽑을 때 그는 자격이 없다고 여러 번 사양했으나 하나님은 그를 뽑으셨다. 그 이유는 '모세로 말하자면,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겸손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무엘로부터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사울ㅣ미치엘 반 데르 보르흐(1332)ㅣ양피지에 채식(彩飾)ㅣ헤이그 국립박물관 소장ㅣFrom Jacob van Maeriants "Rhimebible of Utrecht"

그 이스라엘 민족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신정국가로 열 두 사사가 200년을 통치한 후 체제변경을 하게 된다. 인근 국가처럼 왕국으로 바뀐 것이다.

이스라엘 왕국의 초대 국왕으로는 가장 작은 지파이면서 부끄러운 역사를 지닌 베냐민 지파요 기브아 마을 출신인 사울을 지명한 것이다. 깡패가 우글거리던 기브아가 왕국의 첫 도읍지가 되었다.

작은 성서화 한 장이 성경 속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성경을 더 깊이 느끼게 해 주었다.

사사기 마지막의 <춤추는 여인을 보쌈해간 이야기>는 그런 의미에서 사사기의 대미를 장식하는 의미 있는 사건임을 깨닫게 되었다.

강정훈 교수는…

강정훈 신성대학교 교수

강정훈 교수는 1969년 제7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해 뉴욕 총영사관 영사(1985~1989)를 거쳐 조달청 외자국장, 조달청 차장(1994~1997) 등을 지내고 1997~1999년까지 조달청장으로 일했다.

행정학박사(연세대·서울대 행정대학원·성균관대학원)로 성균관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2004~2005), 2003년부터 현재까지는 신성대학교 초빙교수를 맡고 있다. 또 (사)세계기업경영개발원 회장(2003~2008)을 역임하기도 했다.

강 교수는 1992년 성서화전시회를 개최했으며 1994년에는 기독교잡지 '새가정'에 1년 2개월간 성서화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했다.

현재 자신의 블로그 '영천의 성서화 라이브러리(http://blog.naver.com/yanghwajin)'를 통해 다양한 성서화와 이어 얽힌 뒷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35년간 중세의 성서화 자료와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의 저서를 모으고 있다. 그 중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 저서 및 자료 675점은 숭실대 학국기독교박물관에 2011년 기증했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강정훈 #성서화칼럼 #성서화탐구 #춤추는여인 #보쌈하기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