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가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숙명과 같은 근심과 걱정 그리고 시련에 있을 때 크리스천이 집중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전했다. 김 목사는 25일 '삶을 축제로 바꾸는 지혜'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삼복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어서인지 무척 덥다.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 지역도 나타나고 있다. 하루 종일 방호복을 입고 코로나 검사와 방역에 종사하는 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릿해진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느끼는 절망과 공포감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이전에는 북적거리던 동네 먹자골목이 저녁 6시 이후가 되면 적막할 뿐만 아니라, 문을 닫은 가게도 아주 많습니다. 기약 없는 미래가 주는 불안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햇빛은 찬란한데 우리 마음에는 어두운 구름이 드리워 있다"며 "그러나 아무리 어렵고 난감하다 해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했다.
김 목사는 "바람이 그치기를 기다리다가는, 씨를 뿌리지 못한다.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리다가는, 거두어들이지 못한다"(전11:4)는 전도서 기자의 말은 우리 삶의 엄정함을 잘 드러내고 있다"라며 "사람들은 근심과 걱정이 없는 세상에 대한 꿈을 꾼다다. 유토피아, 샹그릴라, 엘도라도, 엘리시온, 무릉도원 등 낙원에 대한 꿈은 오히려 삶이 힘겹다는 반증이다.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는 것처럼, 근심과 걱정은 기쁨의 다른 짝이다. 인간은 그 양극 사이에서 살게 마련이다. 모든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근심에 사로잡힐 때 사람은 고립감을 느끼게 마련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혼자라는 생각에 골똘하게 되는 것이다. 저는 가끔 소토메마치에 있다는 엔도 슈사쿠의 '침묵의 비'를 떠올린다. "사람들이 이렇듯 슬픈데, 주님, 바다는 너무나 푸르기만 합니다." 일종의 부조화다. 무심한 자연은 도무지 우리가 겪고 있는 일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런 무심함이 오히려 고맙기도 하다. 우리 삶을 냉철하게 바라보도록 해주니 말이다"라고 했다.
김 목사는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혀 사는 이들은 자기 속에 있는 가장 소중한 보물을 보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보물이란 "하나님의 형상 혹은 아름다운 사람으로서의 가능성"이었다.
김 목사는 "길을 걷다가 표정이 밝고 선선한 사람을 보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이콘 화가들은 성인들을 그릴 때 후광을 함께 그렸다. 그들 속에 깃든 빛을 그렇게 형상화한 것일 것이다. 속으로부터 빛이 흘러나오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있음 그 자체로 세상을 정화시키는 사람들이다. 젊은 시절에 홀로 읊조리곤 하던 노래가 있다. '이 세상 어딘가에'라는 곡(박희진 작사, 한태근 작곡)이다"라고 했다.
김 목사는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이 세상 어딘가에 이런 사람이 있다. 남이 알아주든 말든 상관없이 착한 일을 하는 사람, 탐욕과 분심을 눌러 얼굴이 빛나는 사람, 청빈하게 살면서 덕행에 힘쓰는 사람, 하늘을 예경하고 이웃을 돕는 사람 말이다"라며 "그들은 있음 그 자체로 우리 마음을 밝게 하고, 정화시켜 준다. 우리 마음의 변화는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이들이 있음을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좋다/싫다, 예쁘다/밉다, 춥다/덥다, 기쁘다/슬프다와 같은 일차적인 지각을 사유의 체로 거르는 것이 생각이다.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이들은 그저 팔자 좋은 사람이려니 생각하면 안 된다. 그들은 근심과 걱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속의 빛이 어두워지지 않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성경이 말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란 "시련과 고통을 겪고도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김 목사는 ""도가니는 은을, 화덕은 금을 단련하지만, 주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단련하신다"(잠17:3) 했다. 명철한 사람은 생의 부정적 계기 속에 담긴 속뜻을 헤아리고, 그 고통 속에서 값진 보화를 찾아내는 사람이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되돌아온 후에 동일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돌보고 격려하는 분들이 있다. 장애로 고통 받는 가족을 돌보던 이들이 다른 가족들을 위로하고 힘을 북돋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분들이 감내해야 했던 삶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지만, 그것을 인격으로 바꾸었기에 그들의 삶은 향기롭다"고 했다.
김 목사는 또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겪는 환난을 자랑했다. "환난은 인내력을 낳고, 인내력은 단련된 인격을 낳고, 단련된 인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롬5:3b-4). 환난, 인내, 단련된 인격, 희망이라는 이 일련의 흐름은 저절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총의 빛을 받을 때 비로소 가능한 사건이다"라고 했다.
이어 ""환난을 희망으로 바꾸어내는 일이야말로 믿음의 신비이다. 이스라엘의 지혜자는 "고난받는 사람에게는 모든 날이 다 불행한 날이지만, 마음이 즐거운 사람에게는 모든 날이 잔칫날"(잠15:15)이라고 말한다"며 "객관적으로 보면 그런 대로 살만한 데도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불평의 렌즈, 선망의 렌즈를 끼고 세상을 바라본다. 렌즈를 바꾸지 않는 한 그들의 불행 의식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반면 아주 어렵게 살면서도 유쾌하고 즐겁게 사는 이들이 있다"며 "그들은 일상의 모든 순간이 그에게 주는 선물에 집중한다. 힘든 일을 만나도 거기에 온통 사로잡히지 않는다. '이건 좀 쓰군' 하고는 즉각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한다"고 했다.
김 목사는 "인생을 즐겁게 사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작은 일에도 함께 기뻐하고 경축하는 이들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면서 잃어버렸던 드라크마를 다시 찾은 여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여인은 불을 밝히고, 온 집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찾다가 마침내 찾으면 벗과 이웃들을 불러 모아서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눅15:9)라고 말한다"고 했다.
또 "사람은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눔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축제는 사람들을 연결시킨다. 원로 장로님 한 분의 가정과 목회실이 은밀하게 즐기는 축제가 있다"며 "장로님 집에서 키우는 댄드롱이라는 화초에 꽃이 피면 장로님은 언제나 꽃 사진과 함께 '올해도 꽃이 피었네요'라는 메시지를 보내신다. 그것은 함께 기쁨을 나누자는 초대다. 그러면 우리는 함께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며 즐거워한다. 벌써 여러 해 이어온 나름의 전통이다. 사소해 보일지 몰라도 그런 의례는 무료할 수도 있는 시간을 건너는 징검다리 구실을 하기도 한다.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벗들과 이웃들을 우리 삶에 맞아들여야 한다. 바로 그런 환대와 환대받음의 경험이야말로 사람을 고립시키는 이 세상에 대한 강력한 저항이다"라고 했다.
김 목사는 사람들이 자기 일상을 잔칫날로 경험하지 못하는 까닭을 "욕망이 상향평준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자본주의 체제는 끝없는 불만족을 만들어낸다"며 "자족하며 살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말이다. 자본주의의 적은 자족하는 사람이다. 소비사회에서 만족은 급진적 태도란다? 일찍이 성 어거스틴은 속세의 희망을 끊고, 오로지 하나님을 찾는 삶을 추구한다 하면서도 세상 재미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자신의 삶을, 진정한 행복을 '피하면서 찾는 것'이라는 말로 요약했다.(성아구스띤, <고백록>, 최민순 옮김, 성바오로출판사, 제 6권 11장, p.156)"고 했다.
아울러 "사람들은 다른 이들의 평가나 시선에 예민하다. 사람들은 자기를 겉꾸미는 일에 시간과 돈을 많이 들인다. 무시당하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적 바람 때문인지 모르겠다"며 "그런 일에 치중할수록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자기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다. 그 무한경쟁의 굴레에 갇히는 순간 만족감은 자취를 감추고 결핍감이 확고하게 우리 의식을 사로잡는다. 이전에 비해서 많은 것을 누리고 살면서도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까닭은 다른 이들과의 그런 비교의식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인정 욕구가 강하고, 다른 이들의 애정에 지나치게 집착한다"고 했으며 "반면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상처도 잘 받고, 시기심에 사로잡힐 때가 많다. 자기가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어느 경우든 그들의 영혼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허세만 내려놓아도 삶이 조금은 가벼워진다"고 했다.
김 목사는 특히 "재산은 적지만 주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산다는 그는 빈곤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반면 재산은 많은데 이기적이고 오만하다면 그는 진짜 가난뱅이이다. 원하는 것을 즉각 누리며 살지 못한다 하여 불행하다고 말할 수 없다. 반대로 원하는 것을 다 누리며 산다 하여 행복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누릴 걸 다 누리면서도 얼굴에 독살이 박힌 이들도 있다. 그들은 사람들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합니다. 가련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서 생명의 향기를 맡을 수 없다. 재산이 많거나 적으나 '하나님 경외'와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의 길이다. 사람의 사람됨은 자기 삶이 사랑의 빚임을 알아차리는 데 있다"고 했다.
김 목사는 "사람이 함께 산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면서도 동시에 힘든 일이다. 누군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이 어떤 때는 든든하게 느껴지지만, 짐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며 "사람은 누구나 감정의 기복을 겪습니다. 가족 간이라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보통 때는 너그럽게 받아주던 일도, 어떤 때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다툼이 빚어지기도 한다. 어쩌면 가족 간의 관계가 제일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집에서는 바깥에서 쓰고 있던 가면 즉 사회적 자아를 벗어던지고 편히 쉬고 싶은데 그 마음을 몰라주면 원망의 말이 터져 나온다"고 했다.
이어 "사는 동안 참 많은 사람을 만났다. 사사건건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고 분쟁을 그치게 하는 사람도 있다. 속에 화가 많은 사람일수록 분쟁을 일으킬 소지가 많다. 그들은 자기들의 말이 경청되지 않는다고 속상해 한다. 자기들의 상처와 아픔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고 했다.
그러면서 "믿음의 사람들은 품이 넓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어둠에 이끌리는 우리 마음을 자꾸만 하나님께 가져가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이 맑아지고 넓어지고 깊어진다. 우리라고 왜 아픔이 없겠으며 상처가 없겠는가? 하지만 그것을 노래로 바꾸는 것이 믿음이다. 슬픔과 고통을 노래로 바꾸는 사람이라야 평화를 만들 수 있다"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김 목사는 "어려운 시절이다. 그렇기에 더욱 하늘빛으로 조율된 영혼들이 필요한 때다.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말아달라. 우리가 마음의 돛을 성령을 향해 펼칠 때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갈5:22-23)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라며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이들과 더불어 그 열매를 누려라. 인생의 어려움 없기를 기대하지 말라. 차라리 어려움 속에서도 삶을 경축하는 연습을 하라. 이 세상 어딘가에 있어 사람들의 마음을 밝게 만드는 사람, 무거워진 마음을 씻어주는 사람, 세상은 여전히 살만한 곳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이 세상 어딘가에 있는 그 사람'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어야 한다"며 설교를 맺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