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법만 바꿔도 전도의 달인이 된다
 ©도서『말하는 법만 바꿔도 전도의 달인이 된다』

“당신이 간절히 복음을 전하려는 곳은 어디인가? 바로 당신에게 주어진 삶의 모든 현장이다. 가정, 직장, 학교, 각종 모임, 그리고 마트까지도 복음 전도의 현장이 된다. 예수님과 같이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며, 영혼 구원에 대한 갈급함으로 모든 현장에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하지만 늘 현실이 녹록치 않다. 오랜 시간 전도하다 보면 처음의 열정과 초심을 잃고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매너리즘에 빠지면 전도활동을 간소하고 단순하게 하려는 잔꾀가 생기는데, 그때부터 서서히 전도현장에서 멀어지게 된다. 그래서 동역자가 필요하고, 중보기도자가 필요하며, 동기 부여할 수 있는 환경도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복음 전도자의 뚝심 있는 열정이 필요하다. 복음을 전하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지 말고, 전도현장을 끝까지 사수하며, 매주 일정한 시간에 전도현장으로 향해야 한다. 전도현장을 벗어나려고 해선 안 된다. 복음 전도자가 현장을 피한다면 하나님의 간곡한 부탁을 외면하는 것과 같다.”

박선규 - 말하는 법만 바꿔도 전도의 달인이 된다

도서『예수를 만나다』
 ©도서『예수를 만나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의 핵심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 전달하고자 하신 것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많은 경우에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으로 비유를 시작하셨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양 무리가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거룩하고 안전한 장소가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영원한 평화와 보호가 있는, 예수님 자신이 백성들의 견고한 성읍이 되어 주시는 곳이다. 그 요새는 양 우리와 같은 문이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임재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우리를 단지 그곳으로 이끄실 뿐 아니라 그 안에서 안전하게 거하도록 지키신다.

R. C. 스프로울 - 예수를 만나다

환자 심방
 ©도서『환자 심방』

그런데 우리는 반드시 육체적으로 죽어야만 죽음을 겪을 수 있는 것일까? 사실 우리는 살아가면서도 작은 죽음을 숱하게 겪는다. 작은 죽음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건강을 잃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앞세우는 것, 젊음을 잃는 것 등이 있다.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없고 끊임없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상황도 작은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다, 병들거나 늙어서 유용성(쓸모)이 떨어지는 상태도 그렇다. 젊었을 때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별로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 상태도 그러하다. 삶에서 이런 심리적 변곡점들을 겪었다면, 이미 작은 죽음을 겪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죽음은 결코 우리의 친구가 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죽음을 낭만적으로 말하지만, 성경은 죽음이 친구인 양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작은 죽음뿐 아니라 실제의 죽음에 직면하면 신앙적으로 무엇을 붙들고 있어야 할까?

박남규 - 환자 심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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