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간절히 복음을 전하려는 곳은 어디인가? 바로 당신에게 주어진 삶의 모든 현장이다. 가정, 직장, 학교, 각종 모임, 그리고 마트까지도 복음 전도의 현장이 된다. 예수님과 같이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며, 영혼 구원에 대한 갈급함으로 모든 현장에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하지만 늘 현실이 녹록치 않다. 오랜 시간 전도하다 보면 처음의 열정과 초심을 잃고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매너리즘에 빠지면 전도활동을 간소하고 단순하게 하려는 잔꾀가 생기는데, 그때부터 서서히 전도현장에서 멀어지게 된다. 그래서 동역자가 필요하고, 중보기도자가 필요하며, 동기 부여할 수 있는 환경도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복음 전도자의 뚝심 있는 열정이 필요하다. 복음을 전하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지 말고, 전도현장을 끝까지 사수하며, 매주 일정한 시간에 전도현장으로 향해야 한다. 전도현장을 벗어나려고 해선 안 된다. 복음 전도자가 현장을 피한다면 하나님의 간곡한 부탁을 외면하는 것과 같다.”
박선규 - 말하는 법만 바꿔도 전도의 달인이 된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의 핵심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 전달하고자 하신 것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많은 경우에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으로 비유를 시작하셨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양 무리가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거룩하고 안전한 장소가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영원한 평화와 보호가 있는, 예수님 자신이 백성들의 견고한 성읍이 되어 주시는 곳이다. 그 요새는 양 우리와 같은 문이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임재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우리를 단지 그곳으로 이끄실 뿐 아니라 그 안에서 안전하게 거하도록 지키신다.
R. C. 스프로울 - 예수를 만나다
그런데 우리는 반드시 육체적으로 죽어야만 죽음을 겪을 수 있는 것일까? 사실 우리는 살아가면서도 작은 죽음을 숱하게 겪는다. 작은 죽음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건강을 잃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앞세우는 것, 젊음을 잃는 것 등이 있다.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없고 끊임없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상황도 작은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다, 병들거나 늙어서 유용성(쓸모)이 떨어지는 상태도 그렇다. 젊었을 때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별로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 상태도 그러하다. 삶에서 이런 심리적 변곡점들을 겪었다면, 이미 작은 죽음을 겪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죽음은 결코 우리의 친구가 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죽음을 낭만적으로 말하지만, 성경은 죽음이 친구인 양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작은 죽음뿐 아니라 실제의 죽음에 직면하면 신앙적으로 무엇을 붙들고 있어야 할까?
박남규 - 환자 심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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