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의 미래 선교를 준비하기 위한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미션 콜로키움이 21일 유튜브에서 생방송 됐다.
KWMA가 처음 준비한 이번 미션 콜로키움에서는 프론티어 벤처스(Frontier Ventures, 전 USCWM) 대표를 역임하고 현재 아시아선교 활성화를 위한 밴드바나바스(Band Barnabas)의 설립자 및 대표로 사역하는 종 김 선교사(Chong H. Kim)가 한국교회와 선교계에 ‘코로나 시대의 하나님 나라와 선교사의 정체성’에 대한 통찰력 있는 질문들을 던졌다.
종 김 선교사는 14세 때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1982년 UCLA 캠퍼스에서 예수님을 영접한 후 선교사로 헌신했다. 선교 관련 책을 구입하고자 집에서 멀지 않은 패서디나의 USCWM을 방문했고, 그때 처음 출간된 퍼스펙티브스 책을 접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1987년 봄학기 퍼스펙티브스 클래스를 수강하면서 선교학의 대가 도널드 맥가브란 박사, 랄프 윈터 박사 등 당시 기라성 같은 강사들의 강의를 접했다. 그는 1987년 12월부터 USCWM에 간사로 일하기 시작해 33년간 활동하고, 2012년부터 2019년까지는 대표로 섬겼다. 또 1991년 한미세계선교센터(KACWM, Korean American Center for World Mission)를 설립하여 2003년까지 대표로 활동했다.
콜로키움은 KWMA 미래한국선교개발센터장 정용구 선교사의 사회로 KWMA 사무총장 강대흥 선교사의 인사, 종 김 선교사의 사역 소개와 강의, 현장 참여자인 감리교 본부 선교국 세계선교사역부 부장 남수현 목사, 비전선교단 대표 조다윗 선교사, 예장합신세계선교회 총무 김충만 선교사, CCC 해외선교팀장 김장생 선교사, 한국SIM국제선교회 대표 김경술 선교사, CCC 스틴트(STINT) 책임 간사 심재종 선교사의 질의와 응답 등으로 진행됐다. 강대흥 선교사는 “종 김 선교사님이 안식년 기간 잠시 한국에 오셨는데, 한국교회에 도움이 되고 선교계에 신선한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첫 번째 강사로 모셨다”며 “오늘 강의와 토의를 통해 한국선교의 진전된 모습이 나타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은 문답 형식으로 정리한 내용.
ㅡ대학 졸업 후 바로 랄프 윈터 박사와 동역했다. 그곳에서 어떻게 일하게 되었고, 어떤 사역을 했나.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들은 PSP 클래스에서 랄프 윈터 박사님이 예를 든 것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새벽 2시에 자다가 일어났는데, 뒷산에 산불이 났다고 가정해 보라. 버킷으로 수돗물을 끌어 올릴 것인가, 911에 전화해 잠자는 소방대원을 깨워 불을 끌 것인가.’ 패서디나는 산 중턱에 있고, 겨울이 되면 너무 건조해 불이 한 번 붙으면 싹 다 타버린다. 그런데 새벽 2시에 산불이 일어난 것을 상상해 보라고 하셨다. 생각 있는 사람은 당연히 911에 전화해 잠자는 소방대원을 깨우쳐 불 끄는 일을 하게 할 것이다. 이전에는 인도네시아 선교지로 나갈 생각이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선교동원에 꽂혔다. 이 강의를 들으면서 저의 선교 방향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선교동원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다음, 윈터 박사님 선교단체에서 선교동원을 해봐야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가진 것, 배운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자원해서 간사로 들어갔다. 그때가 PSP 강의를 듣고 몇 달 후인 1987년 12월이었다.
결국 윈터 박사님이 USCWM을 창립한 가장 큰 이유는 공동체였다. 윈터 박사님의 영성은 수도원 영성에서 흘러나온다. PSP에서도 모달리티와 소달리티를 이야기하면서, 수도원의 영성과 수도원이 역사적으로 가지고 있던 잠재력을 가지고 복음화의 촉매 역할을 하는 공동체를 만들기 원하셨다. 개신교판 수도원을 만드는 것이 윈터 박사님의 비전 중 하나였다. 또 다른 하나는 미전도종족 선교의 비전으로 USCWM을 설립했다.”
ㅡUSCWM이 프론티어벤처스로 바뀐 이유는?
“제가 대표를 할 때 그 이름으로 바뀌었다. USCWM의 이름 자체에서 풍기는 것이 있는데 ‘센터’(center), 곧 우리가 중앙, 전통이라는 것이 있다. 윈터 박사님이 뜻하신 것은 아니었다. 원래 ACWM(A Center for World Mission), 곧 센터 중 하나로 이름을 지으려 했는데 여러 과정을 거쳐 USCWM이 됐다. 센터라는 용어 자체가 어떻게 보면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이 정답이고 우리가 정통성이 있음을 내포한다. 그것이 21세기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월드 미션’(world mission)이라는 용어 자체도 80~90년대 용어라고 생각했다. 세상이 다 얽혀진 상황에서 모든 족속이 모든 족속에게 가고 모든 족속이 모든 족속에게 오는 가운데 ‘월드 미션’과 ‘홈 미션’을 구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상황이 온 것이다. USCWM의 정신을 살리는데, 그 정신이 개척자의 정신이므로 프론티어벤처스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ㅡ단체 이름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또 미국에서 일하면서 아시아계 입장에서 힘든 일은 없었나.
“단체 이름을 바꾸는 과정을 다들 동의할 줄 알았고, 쉽게 생각했다. 그런데 과정 자체가 시간도 많이 걸렸지만, 그 과정을 통해 그동안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우리의 세계관에서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고 쥐고 있는 것을 많이 경험하고 그것에서 오는 힘든 점도 있었다. 제가 맞는다는 것이 아니다.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이 프로세스(process)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리더십은 어디에 도달하는 것만으로 진가를 측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리더십은 프로세스라는 것을 그때 절실히 경험했다.
윈터 박사님의 정신이 제3세계 선교를 거의 처음으로 품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단체에 계신 분들은 거의 백인이다. 그 상황에 들어가 저도 백인인 것처럼 착각하며 살았던 부분이 많다. 그 안에서 인종차별을 경험한 적은 전혀 없었는데, 세심한 문화적 부분에서는 이중문화권의 뉘앙스를 백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조금씩 발견했다. 그것에서 오는 미세한 차이점을 나름대로 경험하고, 굉장히 큰 교훈을 얻었다. 그전에는 미주 한인들을 향한 선교동원 훈련 사역을 했는데, 백인들의 선교단체에서 리더십을 하면서 저 자신을 굉장히 적나라하게 볼 기회가 열린 것이다. 조금씩 부딪히면서 ‘내가 갖고 있는 세계관이 이런 것이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는, 내가 나를 더 깊이 알게 되는 굉장히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됐다.”
ㅡ통찰력과 사고가 깊어진 배경은?
“윈터 박사님을 통해 인생에 있어서도, 또 선교학, 역사학, 신학, 인류학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는데, 굉장히 큰 임팩트는 답을 많이 안 주신 것이다. 배우는 과정에서 질문을 통해 가르치셨다. 질문을 계속 던지다 보면 표면적인 질문에서 더 본질적인 질문으로 흘러가게 돼 있다. 처음에는 표면적 질문을 했다가도, 그분 밑에서 배우다 보면 생각하지 못했던 세계관이 깔려 있는 질문들을 하시는 것이다.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뒤집어놓는 작업이 처음에는 굉장히 불편했는데 몇 십 년 하다 보니 굉장히 자연스럽게 됐다. 시간이 지나다 보니 저도 어떤 상황과 사건을 볼 때 표면적인 고민이 아닌, 본질적인 고민들을 하게 되는 통찰력과 여유를 갖게 됐다.
여유도 굉장히 중요하다. 팬데믹이 주는 멈춤이 우리에게 커다란 선물인 것은, 여유가 없고 멈출 수 없는 상황 가운데서는 깊은 질문, 본질적인 질문을 하려야 할 수 없다. 바쁘게 돌아다녀야 하고, 빨리 성공사례를 만들고 열매를 만들어야 하고, 특별히 선교계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ㅡ밴드바나바스는 어떤 사역을 하나
“제가 1989년 처음 설립한 선교단체는 한미세계선교센터로 선교동원, 훈련, 전략 선교단체였다. 2002년 그 단체를 내려놓고 2004년 어떤 생각을 했냐면, 북미주 한인 1.5세, 2세의 이중문화권 사람들이 거의 미국 선교단체를 통해 선교지로 나가는데 이중문화권 사람들의 정체성을 격려하고 더 살릴 수 있는 단체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중문화권은 엄청난 재산이고 잠재력이다. 그래서 사이프러스 출신이고 헬라어도 하고 유대인 배경도 가진 ‘바나바’의 이름을 붙였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로 이중문화권을 가졌다. 이중문화권을 가진 사람은 성경의 구약부터 흘러나오는데 아브라함, 요셉, 다니엘, 사도 바울, 바나바, 그리고 예수님도 이중문화권이었다. ‘밴드’는 20년 전 미국 TV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즈’의 전우애에 푹 꽂혀서, 선교에서도 전우애적 생각과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보고 붙인 것이다.”
ㅡ코로나 시대 철학, 본질에 대한 성찰도 중요하고 우리의 선교운동에 대한 연속성도 중요한데 그 사이 균형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두 가지 드는 생각은, 전통에서 붙들어야 될 것이 있고 버려야 될 것이 있다. 이것이 꼭 선교계뿐 아니라 모든 인생에도 적용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단계는 건립(construction) 단계가 있고, 해체(deconstruction) 단계가 있고, 재건(reconstruction) 단계가 있다. 해체 작업을 안 하고 재건 작업을 할 수가 없다. 재건은 건립 때 내가 쌓아놨던 것 중에서 남아야 할 것을 재건까지 끌고 가는 것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 공들여 쌓아놓은 탑을 해체하는 작업에서는 본질적 질문을 하면서 버릴 것을 버리고 놓을 것을 놓아야 한다. 그 중에서도 모퉁잇돌이라든지, 이 기둥은 남아 있어야 될 것 같다고 분별하는 작업이 해체 작업에서 일어나는데, 그 해체 작업을 잘 겪고 나면 재건할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긴다고 본다.
특별히 어떤 것은 보존하고 어떤 것은 버려야 될지 질문할 때, SVM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뿐 아니라 더 거슬러 올라가서 캠브리지 7인(Cambridge Seven)이라든지, 헤이스택 운동(Haystack Movement), 모라비안 선교(Moravians) 등을 보면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패턴들이 있다. 그 패턴들을 발견해나가면 우리에게 방향성을 주는 통찰력을 얻는다. 그렇기 때문에 윈터 박사님은 항상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너의 머리맡에는 성경과 역사책을 같이 둬야 된다’라고 하실 정도였다. 선견지명은 뒤로 되돌아보면서, 그것을 제대로 봤을 때 나오는 통찰력이라는 영어 표현(Foresight is insight in hinsight)이 있다. 그것이 저에게도 굉장히 공감 가는 이야기다.”
ㅡ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라는 관점에서 선교를 다시 한번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윈터 박사님이 1974년 로잔대회 때 미전도종족 선교에 대해 깃발을 들고나와 미전도종족 선교의 장이 열렸다. 그 후 윈터 박사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굉장히 광범위한 말씀을 많이 하셨다. 그때 아까 이야기한 해체 작업을 많이 하게 됐다. 마태복음 안에 ‘하나님 나라’라는 ‘킹덤’이 54번 등장한다.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상대로 쓴 복음이므로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이라는 표현을 썼고, 누가와 마가는 ‘킹덤 오브 갓’(kingdom of God)을 말한다. 예수님이 처음 사역을 시작하시며 선포한 이야기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이고, 십자가 부활 후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도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다고 누가는 기록한다. 책장에 보면 시작부터 끝날 때 북엔드가 있다면, 대위임령은 하나님 나라의 틀에서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책장의 북엔드는 사도행전 1장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 선포를 가르치시는데, 사도행전 28장에 사도 바울이 로마에서 이방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가르치는 것으로 끝난다. 하나님 나라가 처음부터 끝까지 줄거리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다. 이것도 하나님 나라와 연결고리가 있다. 우리가 선교지로 나갈 때 더 이상 선교사, 목사의 정체성을 가지고 나갈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닫혀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선교지로 나갈 때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나가야 하는지 근본적인 고민이 안 나올 수 없다. 오히려 이것을 기회로 삼아 선교사이기 전에 하나님의 자녀이고, 더 본질적으로 나아가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창세기 1장의 창조물이라는 정체성을 깨달아야 한다. 제가 몇 년 전 발제한 글에 ‘이마고 데이 비포 미시오 데이’(Imago Dei before Missio Dei, 하나님의 선교 이전에 하나님의 형상)라는 주제가 있다. 하나님의 선교를 이야기하기 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았음을 받아들이고 거기서부터 흘러나오는 정체성을 깨달을 때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단순히 선교사의 정체성을 갖고 복음을 전해서 예수님을 알게 한다는 접근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내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당신은 죄인’이라고 하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굿뉴스일까라는 질문을 안 할 수 없다. 그런데 ‘당신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면, 하나님이 주신 DNA가 있다는 것은 엄청난 굿뉴스로 들릴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한다. 우리의 정체성을 전략적인 선교사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모습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것에서 출발하고, 선교지에 나가서도 그 장소에서 출발한다고 할 때 더 깊은 본질적인 대화가 나올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ㅡ선교사와 선교 일꾼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보다 잘 인식하고, 선교지에서 사람들과 대하는 과정에서 이를 실현해낼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있나.
“방법은 절대로 하나가 아니다. 소화하고 표출하는 것이 단체마다, 공동체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제 입장에서 사람을 세우고 자기 정체성을 발견하게 하는 과정에서 자신학화가 굉장히 중요한 원리라고 생각한다. 자립(self-supporting), 자치(self-governing), 자전(self-propagating)에 1980년대 폴 히버트 교수가 자신학화(self-theologizing)를 집어넣으셨다. 그 네 가지 원리를 이야기하기 전에 제 생각은 두 가지 ‘셀프’(self)가 있어야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내가 누구인지 아는 자기 인식(self-awareness)과 자아 발견(self-discovery)이다. 이 두 가지를 모르는 상황에서 셀프를 이야기해도 셀프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 사람 가운데서 우러나오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공감이 없으면 결국은 위에서 이야기하고 외부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따라가고, 그러면 자기가 배울 수 있는 능력과 기회가 없어지는 것이다.
자기 인식과 자기 사랑이 가장 효율적으로 이뤄지는 곳은 공동체다. 공동체에 들어가면 내가 가진 세계관, 성격, 경험이 다른 사람의 세계관, 성격, 경험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곳은 굉장히 풍요롭지만, 고통이 있다. 이 공동체가 자기를 발견하는 굉장히 큰 지름길 역할을 할 수 있다.
공동체가 공동체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안전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안전한 공간이 없으면 자신의 방법으로 배울 수 있는 여지와 여백이 없다. 왜냐하면 위에서 이야기하고 외부에서 이야기하는 답이 내 답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아 발견 과정 자체가 시간이 굉장히 걸리는 과정이어서 답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볼 때는 엄청나게 답답한 과정이다. 왜냐하면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기다려줘야 하고 동행해야 하고 같이 풀어가야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선교적 차원에서 보면, 내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것처럼 다른 사람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음을 전제로 하여 순례자의 입장에서 그들과 동행해주는 삶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한 본질적 고민이 필요하다.”
ㅡ서구선교, 한국선교의 문제가 있었고, 코로나까지 겹쳐 리빌딩해야 하는 가운데 결국은 신학적, 선교신학적 부분까지 연결되므로 상당히 어려움이 있다. 자기 발견도 성경의 기준 없이 자기 발견이 가능할지, 코로나 이후 선교사 정체성 부분도 어떻게 조정해야 할까.
“모든 사람이 가진 기준이 다르다. 그리고 해체 작업에서 우리가 생각한 근본적인 기준이 흔들리지 않으면 그건 해체 작업이 아니다. 그래서 이 작업이 엄청 고통스러운 것이다. 미국에서 눈이 좀 뜨인 신학자, 선교학자들은 미국 선교가 실패한 것은 선교지에 가서 들어주지 못한 것, 또 배우지 못한 것 때문이라고 했다. 들어주고 배우는 자세가 없이 자신들이 가진 정통 신앙, 정통 교리를 가르쳤다고 하는데, 그 정통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통 행위, 곧 사랑은 잃었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정통을 이야기할 때 미국의 모든 교단이 다 정통을 들고 나왔다. 그것은 정통이 없다는 이야기다. 제가 생각할 때 엄격하게 따져보면 정통이 있으려야 있을 수 없다. 개인 또는 교단이 ‘하나님을 정통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을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지금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모아도 하나님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정통성이 없는데 정통성을 강조한다는 것은 각개전투를 하는 것이다. 물론 정통이 아예 없다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이 못 박혀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정통 중의 정통이다. 그리고 만약 정통성이 있다면 아가페 사랑이 정통이다. 우리는 그것에 맞추는 작업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제가 그린, 저의 성화의 과정은 조건적인 사랑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고 알아갈 때, 우리가 계속 성장하면서 알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것은 고난과 고통, 바닥을 치면서 하나님을 알아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방향이 잡히고, 그럴 때 다른 사람과 다른 모든 미전도종족, 한국에 와 있는 다른 종족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사람과 사람을 대하는 본질적인 자세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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