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사건과 신학>에 NCCK 국제협력국장으로 있는 신승민 목사가 '미얀마 민주화 운동'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이달 <사건과 신학>의 주제는 '미얀마, 광주, 5월 그리고 민주주의; 의식과 무의식의 흐름'이었다.
신 목사는 해당글에서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걸림돌을 짚어보는 한편 미얀마 민주화를 위한 그리스도인의 연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신 목사는 먼저 "미얀마 민주주의 실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물론 군사주위에 뿌리를 둔 군부독재"라면서도 "그러나 영국 식민주의 지배를 거쳐 심화된 민족 간의 갈등이 민주주의 정착에 또 다른 걸림돌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다"고 했다.
신 목사에 따르면 미얀마에는 약 135의 소수 민족들이 거주하고 있다. 100년 이상 미얀마를 지배한 영국 식민주의자들은 미얀마의 다양한 민족을 서로 견제, 감시하는 "분리정책" (Divide and Rule)을 실시하여 민족들이 연합해 식민정부에 대항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신 목사는 "특히 영국 식민정부는 약 70% 이상을 차지하며 미얀마를 지배해 왔던 다수족인 버마족을 정부와 군대, 경찰 등 주요 요직에서 배제하고 대신 샨(Shan)족, 커친(Kachin)족, 친(Chin)족 그리고 카렌 (Karen)족 등의 소수민족들을 기용하여 그들을 통제했다"고 전했다.
이로 인해 버마족과 다른 민족들의 사이의 갈등이 더욱 심화되었고, 결국 해방 후 버마연방(현 미얀마 연방)의 건국의 과정에서 민족들 간의 통합이 연방의 성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신 목사는 이어 "그래서 미얀마 건국의 아버지인 아웅산 장군은 1947년, 소수 민족들의 온전한 자치를 보장하는 판룽조약을 성사시켰다. 그러나 이 조약은 그의 암살과 함께 사장되었고 잠깐 동안의 민정은 1962년 군부 쿠데타로 막을 내리며 장기간의 군부통치의 서막이 열린다. 아웅산 수지 고문도 부친을 따라 2016년 제2 판룽조약을 선포했지만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했다.
신 목사는 그러면서 "2015년 선거에서 대부분의 소수민족들은 군부독재종식과 민족자치의 열망으로 수지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지지했다. 그러나 NLD 정부는 이러한 소수민족들의 열망에 응답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로힝야족 대학살과 같은 인권유린사태를 방치하면서 소수민족들의 신망을 잃고 결국 정권 또한 잃고 말았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미얀부 군부는 영국 식민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위기 때마다 이러한 민족 갈등을 적절히 이용하여 다양한 민족들 사이를 이간질하고 심지어는 같은 민족들 사이도 이간질함으로써 민중들이 연합해 군부에 저항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신 목사는 "소수민족의 자치권 보장을 통한 민족들 간의 화해와 통합 없이는 결코 미얀마에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을 다시 강조한다"면서 제도혁명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최악의 인권유린을 저질러 온 버마족의 "영혼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참회 없이"는 소수민족의 한이 치유될 수 없다고 했다.
아울러 신 목사는 미얀마 민주주의 투쟁에 NCCK를 비롯한 종단들이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있음도 알렸다. 그는 "NCCK는 사순절기간 동안 미얀마 시위 희생자 유족들과 구속자들, 난민과 어린이들을 위한 한 끼 금식 헌금을 호소하여 많은 교회들이 참여했고, 기독교 사회선교단체로 구성된 기독교행동은 매주 기도회와 일인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이 밖에도 "현재는 긴급식량 지원, 부상자 치료, 은신처마련, 법률지원 등을 조직하는 미얀마 주민 그룹들과 연대하고 있다. 미얀마 민주주의 투쟁에 대한 한국의 기독교의 이러한 깊은 연대와 지원은 그들의 투쟁이 70,80년대 군부독재에 항거한 우리의 역사적 경험들과 겹치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미얀마 민주주의 연대를 통해 한국교회가 다시 한 번 예언자적 상상력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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