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은 그를 무시한다는 뚜렷한 표시다. 만일 우리가 누군가에게 귀 기울이기를 거부한다면 우리는 그를 귀 기울일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으로 여긴다고 말하는 셈이다. 하지만 귀 기울일 가치가 없는 자라는 측면에서 우리가 귀 기울이기를 거부해야 하는 유일한 존재가 있다. 바로 마귀와 그의 추종자들이다. 분별력과 판단력을 가지고 귀 기울이며, 누구의 말을 들을지 주의 깊게 선택하는 것이 지혜의 본질이다. 그렇게 하지 않아서 우리의 첫 조상이 에덴동산에서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만 것이다.…하나님과 우리 동료 인간들에게 귀 기울이고자 시간을 내는 것은 예의와 존중의 표시로 시작해, 상호 이해를 돕고 관계를 깊게 만드는 수단으로 이어지며,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의 겸손과 사랑의 진정한 표시다.
존 스토트,팀 체스터 -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시리즈 세트 - 전5권
“반면 회심과 구별되는 회개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계속 머물기 위하여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서먹하거나 어그러져 있는 것들을 회개하며 날마다 삶을 돌이켜 그리스도를 향해 더욱 가까이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회개는 반복적이다. 이는 성도가 아직 싸워야 할 싸움이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성도는 날마다 죄의 유혹에서 벗어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도록 반복적으로 회개해야 한다. 성도는 예수 이름으로 회개할 때 언제든지 사함받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갈 수 있으며(요일 1:9), 이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이들이 누리는 특권이며 구원의 삶을 사는 증거이다. 마치 자녀가 부모의 사랑 안에 거하려면 부모와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것으로부터 돌이켜 끊임없이 부모에게 가까이해야 하는 것과 같다. 회심 이후의 회개에도 성도에게는 반복적 믿음이 필요하다. 이는 신자의 삶이 죄로부터 돌이켜 그리스도께로 향한 이후에도 크고 작게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약화시키는 유혹에서 돌이켜 반복적으로 그리스도를 붙드는 것이다.”
양형주 - 정말 구원받았습니까
우리 삶에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단 우리가 아는 한 가지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의 계획보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일을 계획하고 계신다는 거다. 어마어마한 축제를 준비하고 우리를 기다리신다. 그리고 물으신다.
‘내가 너도 진심으로 끼워주고 싶단다. 함께 가지 않을래?’
하나님은 그 축제가 무엇인지는 당장 말씀하지 않으신다. 언제나 서프라이즈 파티처럼 오직 믿음을 가진 자만이 그 축제를 조금이나마 상상할 수 있다. … 물론 오랜 헌신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주어지는 게 없을 수도 있다. 그 경우에도 하나님나라의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하지만 대가를 바라는 헌신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헌신을 통해 그리스도와의 합일을 경험하는 게 가장 큰 보상이다. 우리의 헌신 그 자체가 보상이다.
이용규 - 내려놓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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