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내려놓기 힘든 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이다. 특히 나는 선교사와 교수로 사역하며 명예욕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았다. 마치 양파 껍질 같아서 계속 벗겨내도 다른 껍질이 발견되었다. …
“하나님, 제 안의 고질적인 문제를 보았습니다. 이것이 제 안에서 자라기를 원치 않습니다. 이것을 내려놓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 뜻대로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마 오래 싸워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 싸움을 시작할 용기를 주세요.”
기도로 준비하고 나서야 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콘퍼런스를 평안 가운데 마칠 수 있었다.
이용규 - 내려놓음
가인과 베드로의 이야기는 거북하게도 오늘날 미국 신자들의 아픈 데를 찌른다. 이 나라는 아직도 인종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인종차별 퇴치에서 그동안 미국에 진보가 있었는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구체적 사안별로 변론이 있을 수 있으나, 누구보다도 그리스도인들은 인종차별이 인류의 죄성에 얼마나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현대 철학과 인류학에 '타자화'를 통한 정체감 형성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집단이나 민족을 타자화한다는 말은 상대를 이상한 이질적 존재로 취급하고 우리의 기준에서 그들의 약점과 악을 부각시켜, 상대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우월한지를 자신과 남에게 입증하려 한다는 뜻이다. 성경의 대표적인 예로,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한 바리새인은 성전에서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라고 기도한다(눅 18:11).
그는 말 그대로 타자화에 바빴다. 다만 분야가 인종이 아니라 도덕과 정치였을 뿐이다. 세리들은 식민지 나라의 로마 부역자였다. 그 인물은 자신을 타인과 대비해 상대를 경멸함으로써 자신이 고매하고 선하고 참되다는 긍정적 정체감을 형성했다. 현대의 많은 사상가가 지적했듯이, 다른 집단을 멸시함으로써 정체감을 형성하면 당신은 여러모로 그들에게 의존하게 된다. 역설적으로 그 '타인'이 당신이라는 정체의 일부가 된다. 당신의 고정관념에 맞게 그들이 그 모습으로 남아 있어야만 한다. 그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당신의 일차원적 시각이 무슨 이유로든 위태로워지면, 당신의 기초 자체가 흔들린다. 그래서 가인은 아벨을 죽였고 베드로도 폭력으로 반응했다. 거짓된 정체감이 흔들리자 그들은 기초를 바꾸어 정체감을 고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위태롭게 한 사람을 공격했다.
팀 켈러 - 팀 켈러의 부활을 입다
“구원에 관하여 분명하게 전제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는 무력하여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을 확보할 수 없기에 구원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것을 ‘받는 것’이고 ‘얻는 것’이다. 이것을 ‘선물’이라고 한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그렇다! 구원은 은혜로 마련하신 것을 믿음을 통하여 선물로 ‘받는 것’이다. 구원의 근거는 절대 우리에게서 난 것이 될 수 없다. 구원의 출처는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께만 있다. 혹여나 내가 열심히 무엇을 이루어 그것이 구원의 근거가 된다면 이것은 철저한 착각이고 오해이다. 구원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고 태초부터 작정하시고 이루시며 각 개인에게 적용되도록 역사하신 신적 선물이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우리에게 주기 위하여 삼위 하나님은 함께 역사하셨다.”
양형주 - 정말 구원받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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