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표현의 자유’를 다룬 미 하원 내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 청문회가 지난 15일(현지 시간) 전 세계에 생중계된 가운데 이른바 ‘김여정 하명법’이라 불리는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쏟아졌다. 이번 청문회는 북한의 인권 탄압 실상과 이를 사실상 묵인 동조해 온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번 청문회가 미국과 동맹관계인 한국 정부의 인권 문제를 다뤘다는 점에서, 또 미일 정상회담에 이어 바로 다음 달 한미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는 미묘한 시점에 개최되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번 청문회는 증인으로 참석한 인사들뿐 아니라 주최한 의원들까지 ‘대북전단금지법’을 제정한 한국 정부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쏟아내 죽목을 받았다. 특히 공동 위원장인 공화당 크리스 스미스 의원은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고 한국 대중음악의 북한 유입을 막는 ‘반 성경·BTS 풍선법’”이라고 규정했다. 전도와 문화 등 비정치적인 영역까지 정부가 강제로 막고 있는 현실을 ‘돌려까기’ 한 것이다.
미국 내 동북아 전문가인 고든 창 변호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공격하고 있다”며 그 사례로 역사 교과서의 ‘자유민주주의’ 표현에서 ‘자유’를 삭제하려 한 시도를 거론했다. 인권운동가 수잔 숄티 대표는 “북한에서 김정은 정권에 의해 반인도적 범죄와 엄청난 인권침해가 자행됐고, 진행 중인데, 이런 비극에 한국 정부는 침묵해 왔고, 훨씬 더 심각한 것은 그 폭정에 시달리는 주민보다는 김정일 정권을 돕는 데 더 신경을 쓰는 것 같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청문회에는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인사뿐 아니라 이런 비판에 맞서 한국 정부를 옹호해 온 인사들도 증인으로 나왔다. 진보 성향의 싱크탱크인 퀸시연구소의 제시카 리 선임연구관은 “한국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유튜브나 SNS 등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가고 이 중에는 문 대통령을 ‘북한 간첩’으로 부르는 극단적인 표현도 있다”며 “이것이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는 증거”라고 했다. 또 전수미 변호사는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비방하는 내용이 담긴 대북전단이 북한 인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하면서 “한국 정부의 정책에 대해 미국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는 그동안 중국·아이티·나이지리아 등의 인권 문제를 다뤄왔다. 인권 탄압으로 국제적인 문제를 야기한 사회주의, 독재국가들이 주 대상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이 미 의회 인권 청문회에서 이런 나라들과 나란히 도마 위에 올랐다는 자체만으로도 그 충격파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번 청문회를 “일부 의원들의 정책 연구 모임 수준”이라고 애써 평가절하하는 모습이다. 통일부는 “청문회가 한미동맹에 악영향을 줄 만한 사안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한 여권 인사는 “일종의 내정간섭”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지난해 말 180석의 거여가 국회에서 힘으로 ‘대북전단금지법’을 밀어붙일 때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정부와 여당은 이를 ‘접경지 주민의 안전’ 문제를 억지로 가져다 꿰맞춰 가며 합리화하려 하고 있으나 그럴수록 북한 김정은 정권 비위 맞추기라는 본색이 더 선명히 드러날 뿐이다.
정부가 접경지역에서 대북 확성기, 전광판 등 북한의 정보 유입을 막는 여러 조치들을 시행하고 있는 이유는 접경지역 주민들의 안전이라는 보호 법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단지 살포는 접경지역이 아닌 대한민국 전역에서 금지되고 있다. 접경지뿐 아니라 전국 어디서든 법으로 막으면서 접경지 주민의 안전을 내세우고 있으니 속이 뻔히 들여다보인다는 것이다.
인권단체들은 “‘대북전단금지법’이 대한민국의 국격을 독재국가, 인권 후진국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될 것”이라며 조속히 폐기되거나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통일부는 이런 여론에 개의치 않고 16일 ‘대북전단금지법’을 “이행할 것”이라며 분명한 의지를 밝혔다.
‘대북전단금지법’은 알다시피 북한 김여정의 말 한 마디에서 시작되었다. 그 말에 즉각 반응한 것이 북한의 통일선전부가 아닌 대한민국 통일부였다는 것, 그리고 여당이 국민의 기본권을 무시하고 힘으로 밀어붙여 이 사단을 만들었다는 것이 정확한 팩트다.
정부와 여당으로서는 미국 의회 내 기구가 나서서 이런 청문회를 개최했다는 자체에 심기가 불편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직접적인 불만을 토로할 때가 아니다. 한·미 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 내에서 터져 나오는 ‘내정간섭’ 운운하는 불만의 목소리를 미국이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반응으로 받아들이게 될 경우, 그 파장이 한미 정상회담에까지 연결될 수 있음을 냉정하게 판단해야 할 때다.
그런 점에서 이번 미 청문회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한국 정부가 이런 국제사회의 경고를 무시하고 ‘마이웨이’를 고집해 반 인권국가의 낙인이 찍히느냐, 아니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는 정상국가로 회귀하느냐 하는 중요한 숙제를 안겨줬다.
정부 여당이 정말 접경지 주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면 이제라도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얼마든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다고 본다. 튼튼한 안보의식으로 국민과 정부, 군이 똘똘 뭉치면 북의 오판에 의한 도발을 얼마든지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그 전에 위헌적이고 반 인권적인 ‘대북전단금지법’부터 폐기하는 게 순서고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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