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조직신학회(정홍열 회장)가 지난 26일 오후 8시 온라인 줌으로 월례신학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이오갑 교수(케이씨대, 학회부회장)는 ‘칼뱅과 자본주의 논쟁사 개관’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이 교수는 “1905년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발표한 이후 서양 학계에서 치열한 논쟁이 100년 이상 지속되었다”며 “사회학, 경제학, 역사학, 철학, 신학 등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많이 참여했고, 논지들도 매우 다양하고 풍부하다. 아마 인문사회과학계에서 일어난 20세기 최대의 논쟁이 아닐까 한다”고 했다.
이어 “이 논쟁은 프로테스탄티즘 중에서도 주로 칼뱅주의가 문제되었다는 점에서 ‘칼뱅과 (또는 칼뱅주의와) 자본주의’ 논쟁이라고 불릴 수 있다. 이 논쟁에 참여한 학자들의 쟁점은 주로 칼뱅과 칼뱅주의가 이른바 ‘자본주의 정신’에 영향을 미쳤는지, 그래서 결과적으로 근대 자본주의 발달에 공헌했는지에 맞춰진다”며 “학자들에 따라서는 칼뱅주의가 자본주의와 전혀 관계가 없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 프랑스 경제학자)는 ‘대학들에서 한 세기 이상 가르쳐왔던 막스 베버의 테제들을 쓰레기통에 넣어야 한다’고 했다. 물론, 논쟁의 과정을 섭렵하고 나면, 미셸 조너의 말처럼 ‘오늘날 베버의 논지를 수호하려는 대학인은 한 명도 없다’는 것이 사실이겠지만, 베버가 ‘그루터기’였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즉 그의 연구가 많은 비판을 받았어도 이후 수많은 연구들의 토대가 되었고, 일반 사회학자들이나 역사가들이 ‘세계의 탈주술화(désenchantement du monde)’나 ‘세계내적 금욕(ascétismeintramondain)’ 같은 그의 개념들을 ‘빌려오기를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베버는 그의 주장들의 적절성 여부로써만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그는 “베버를 전체적으로 평가하자면, 그는 문명과 역사발전의 동인을 경제와 물적인 관계로 파악했던 마르크스의 관점과 반대되는 관점을 세움으로써, 인류의 자기전기(autobiography)를 전체적으로, 보다 실체적으로 성찰할 길을 열어주었다”며 “뿐만 아니라 경제와 역사를 다루고, 종교와 영성을 탐구하는 수많은 학자들의 영감과 분노심(?)을 자극해서,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주요 분야의 주제들에서 매우 다양하고 풍성한 지적 생산이 이뤄지게 했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곳곳에서의 자본주의 기원과 발달에 대한 역사적·실증적 연구들과 칼뱅과 칼뱅주의에 대한 사상적·역사적 연구들이 획기적으로 발전했던 것도 그 덕분”이라고 했다.
이어 “아날학파의 페르낭 브로델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를 통해 근대 서양의 자본주의 발전을 아주 풍부하고 다양하게, 사실적으로 보여준 것도 베버가 동기를 제공해주었기 때문이고, 비엘레가 칼뱅의 경제사상을 철저하고도 깊이 있게 파헤친 것도 역시 마찬가지”라며 “베버는 그런 식으로 인류 정신사의 진보에 크게 공헌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물론 아탈리가 과격하게 표현했지만, 베버의 논지들은 성립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논쟁 과정에서 경제사적이고 신학사적인 ‘사실’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 사실들이 베버의 출발점이었던 가설들을 무너뜨렸다”며 “그렇기는 해도 그런 비판들과 별도로, 나는 그가 세운 논지의 중심은 여전히 유효하고 앞으로도 변함없다고 본다. 그것은 역사적 유물론과 더불어서, 또한 그것이 갖지 못하는 접근을 통해 인류역사의 기원과 동력을 보는 또 하나의 관점이라는 이유에서이다. 또한 근대 자본주의 발전의 주류였다 할 네덜란드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그리고 미합중국의 사회경제적 주체들과 그들의 종교인 칼뱅주의와의 관련성을 파헤치고, 그들의 인간성이나 심리, 사회문화적 특성까지 설명하는 방법론(methodology)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 접근은 단지 앵글로 색슨만이 아니라 게르만이나 라틴, 또는 슬라브 문명권에서도, 또는 아시아의 다양한 민족과 문화들 속에서도 각각의 종교나 철학으로써 자신의 사회경제적 특성과 구조를 보는 하나의 문화사적 방법을 시작할 수 있게 해준다”며 “베버가 일으킨 논쟁이 역사가들의 지평을 넓혀주고 젊은 학자들에게 새로운 문화사(Kulturgeschichte)의 길들을 열어주는 데 공헌했다는 베르지에의 평가도 그런 의미일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베버가 불러일으킨 논쟁은 우리가 살펴본 대로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양상을 가지고 있다. 그 논쟁과정에 파묻히다 보면 길을 잃을 정도라고 할 수 있지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몇 가지 주요한 논점들로 구분되고 정리될 수 있다”며 “먼저,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요인으로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하며, 작용했느냐는 점”이라고 했다.
이어 “이것은 논쟁의 배경이 되는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과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논쟁과정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된 문제이다. 좀바르트와 베버, 트뢸치, 포스터, 토니 등은 그런 자본주의 정신이 있다고 보았다”며 “그러나 로버트슨은 자본주의 정신을 순전히 ‘문명의 물질적인 조건’에서 기인되는 것으로 여김으로써 그 실재를 부인했다. 세유도 제네바의 근대 자본주의 역시 사업가들이나 상인, 시민들의 경제적 욕망을 추구하는 자체의 동력으로써 발전해나갔다고 봄으로써 그것의 실재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또 “이 점에 대해서는 라쿠-라바르트의 견해를 참조할 수 있다. 그는 로마 가톨릭과 유대교, 칼뱅주의 공동체들이 자본주의 경제 발전에 미친 영향을 소극적으로 보았지만, 그 둘 사이의 상호관계를 인정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대 산업자본가들, 은행가들 중에서 (그리고 또한 경제학자들 중에도) 개신교도들이나 청교도들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이런 저런 종교 교리를 단순한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로 치부해버리는 것도 그렇지만, 그 종교 교리로써 자본주의와 정치 경제학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거의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확실히 상호적인 영향들은 존재하지만, 한쪽 방향이나 또 다른 방향의 어떤 결정론도 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둘째, 자본주의 정신이 있다면, 어디서 유래하며, 또한 무엇이냐는 점이다. 베버와 트뢸치, 포스터, 토니 등은 자본주의 정신의 기원을 개신교, 특히 칼뱅주의나 청교도에서 찾았고, 좀바르트는 유대교와 중세 이후 가톨릭에서 찾았다”며 “판파니(Amintore Fanfani, 1908~1999 이탈리아 정치인)는 그 정신이 종교나 도덕에서가 아니라 14세기 이탈리아 상인들의 사업과정에서 발생했다고 보았다”고 했다.
또한 “그 자본주의 ‘정신’이 무엇이냐에 대해서, 베버는 합리성, 근면성, 직업의식, 부와 성공에 대한 욕망 같은 것으로 보았으며, 좀바르트도 합리성 또는 합리주의에서 찾았다”며 “헤르베르트 뤼티도 베버와 좀바르트가 본 합리성을 자본주의 정신으로 인정했으며, 그것은 자본주의만이 아니라 서구문명 전체의 독특한 성격으로서 종교개혁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논지를 폈다”고 했다.
이어 “반면에 판파니는 자본주의 정신을 종교나 도덕 같은 상부구조가 아니라 사람들의 물질이나 이윤에 대한 욕망에서 찾았다”며 “자본주의적 인간의 고유한 특징은 교회가 부과하는 교리나 도덕과 무관하게 자신의 영리나 이윤을 추구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정신이란 경제를 종교나 도덕과 분리시켜 그 자체의 논리와 목적으로써만 추구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1985 프랑스 역사학자)은 자본주의 정신이란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는 게 아니라, 이윤의 추구나 경제발전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것, 이윤창출과 확대에 효과적이라면 모방이나 답습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하는 것일 뿐이라는 의미로 평가했다”고 했다.
그는 “셋째, 칼뱅주의가 자본주의 정신과 정말 관계가 있느냐, 그리고 더 기본적으로 칼뱅주의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점”이라며 “거기에 대해서 베버나 트뢸치, 토니, 허드슨은 칼뱅주의와 자본주의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고 했다.
그러나 “오제르나 비엘레는 칼뱅에게 자본주의적인 것과 함께 반자본주의적인 요인이 함께 있다고 보았으며, 판파니도 칼뱅주의가 자본주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지만, 칼뱅주의 본래의 의도와는 다르게였음을 전제했다”고 했다.
아울러 “두메르그는 칼뱅과 칼뱅의 칼뱅주의는 자본주의와 관계가 없다고 했다. 로버트슨이나 여러 학자들도 같은 입장이었고, 세유는 제네바 발전과정에서 오히려 자본주의가 칼뱅주의를 변형시켰음을 보여주었다. 하이머도 자본주의의 발달이 칼뱅주의나 청교도의 매먼숭배에 대한 적대감 같은 반자본주의적 성향을 버리게 만들고, 자본주의화했다는 입장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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