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긴장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삼위로 존재하는 하나님 한 분을 예배한다. 우리는 온전한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온전한 인간이신 예수님을 섬긴다. 우리는 선하고 동시에 타락한 세상 가운데 살아간다. 예수님이 소개한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이곳에 왔으며 동시에 아직 오지 않았다. 이러한 긴장감은 우리가 믿거나 경험하는 것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에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우리는 죄인인 동시에 성자다.
하지만 여기에 어려움이 있다. 거센 바람은 우리를 줄타기에서 넘어뜨리려 항상 위협한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둘-다Both-And의 긴장 가운데 살려고 할 때, 우리는 그 긴장을 풀어 예전의 둘 중 하나Either- Or를 선택했던 '평범'한 과거로 돌아가게 만드는 세력과 부딪힌다. 하지만 그 긴장이 사라진 순간 더 이상 어떤 힘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는 마치 바이올린과 같다. 그 악기가 얼마나 멋지고 값비싼 것일지라도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그 줄에 있는 팽팽한 장력 때문이다. 우리는 둘-다의 그리스도인으로 부름받은 사실을 붙들어야만 한다. 둘-다의 하나님을 섬기고 둘-다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둘-다, 이는 한쪽으로 치우친 분열을 끝내는 길이다. 이것이 우리의 부르심이다.
리치 네이슨,김인수 - 둘다
내 인생의 의미를 바로 알려면 내 인생의 한 부분을 거느리고 있는 큰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 그 큰 이야기를 알아야만 내 삶에 부여되는 진짜 이야기의 진정한 의미 역시 바르게 해석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 때까지 영원토록 이끄시는 우리 하나님의 이야기”(시편 48:14, 메시지), 역사(History)인 그분(His)의 이야기(Story) 속에서만 나의 이야기도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행 17:28).
조은아 - 은혜 입은 자의 삶
때를 기다리라
사람들이 여러분을 알아주지 않습니까? 거기에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기억하는 것으로 우쭐해 하지도 마십시오. 사람들의 알려짐과 숨겨짐, 높아짐과 낮아짐 모두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필요할 경우에만 그것들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알려지기를 사모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진실한 소명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어차피 우리는 빛이 아닙니다. 그 빛을 증거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우리가 천사의 말을 하고 기적을 일으킨다 해도 우리는 결코 빛이 아닙니다.
세례 요한, 그는 빛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빛으로 인정받기를 거절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이름이 기억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되기를 원하였습니다. 우리의 소명도 빛이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증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김남준 -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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