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서의 시편과 욥기는 죄와 무관한 성도의 고난을 소개한다. 신실한 성도들도 때로는 사탄과 그의 추종 세력들악한 세상 권력, 악인들에 의해 까닭 없는 고난을 경험할 수 있다. 시편과 욥기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결코 낙심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반드시 올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신뢰하며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가야 한다(시1~2편). 하나님께서 사탄과 악한 자들을 심판하시고, 우리를 신원/위로하여 주시는 영광스러운 날이 곧 도래할 것이다.
한국동남성경연구원, 고난과 선교,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거두는 역사가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투정하지 않길 바란다. 하나님이 기억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뿌린 작은 선의 씨앗, 우리가 뿌린 복음의 밀알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믿어야한다.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거두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온실에서 자라난 꽃처럼 자라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해 넘어져서 쓰러지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바다로 보내신다. 험악한 파도와 싸우는 훈련을 시키신다. 그 훈련 가운데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정성진, 전진
어찌 보면 비통함과 쓰디씀을 의미하는 ‘마라’라는 말 자체가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는 답 없는 삶을 잘 표현해 주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딱 떨어지는 답을 가지고 사는 것도 아니고, 신앙 공식만 적용하면 답이 나오는 삶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설명이 안 되는 고난이 찾아옵니다. 그것이 마라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인생 여정에서 엘림이 아닌 마라를 지날 때에도 기뻐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마라에서도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십시오. 당신의 인생에도 쓰디쓴 마라가 있었을 것입니다. 거기서 당신은 믿음 때문에 기뻐할 수 있었습니까?
그리스도인은 마라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기뻐할 수 있을까요? 엘림에서 경험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은 아닙니다. 물을 마시지 못하면 갈증을 느끼고, 음식을 먹지 못하면 허기를 느끼고, 통증을 느끼면 괴로워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이기에 외로움도 느낍니다. 그래서 당장은 웃음이 사라지고 가슴의 벅찬 감격도 식어 버리고 말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은 마라에서도 믿음과 기쁨의 실재를 경험하고 누릴 수 있습니다. 괴롭고 힘든 마라에서 그리스도인이 기쁨을 얻는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즉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하나님의 약속 안에 담겨 있는 그분의 풍성한 선하심과 자비하심과 은혜를 붙잡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마라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기쁨을 누리는 방식입니다.
김형익, 답 없이 살아가기, 답 없이 사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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