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생명의 피가 곳곳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주님의 피가 흘러야 합니다. 그 피는 그리스도인다운 가치입니다. 만약 우리 삶의 어떤 영역에서는 그리스도인다운 가치와 원칙이 전혀 적용되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은 온전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어떤 곳에는 피가 가지 못해 썩을 수 있습니다. 혈관이 파열되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듯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어떤 영역 역시 말씀대로, 신앙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꼬이고 부수어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곧 생명입니다. 주님의 피가 없다면, 그분의 피를 믿지 않는다면 죽음입니다.
우리는 성경적 사고로 바로 서야 합니다. 우리의 피에 불순물이 섞여선 안 됩니다. 세속적 사고에 물들지 마십시오. 성경으로 걸러 내야 합니다. 성경은 신장과 같습니다. 말씀은 신장의 역할, 특히 신장의 사구체에 있는 네프론 역할을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으로 걸러 내야만 영적 피가 깨끗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만을 삶의 기준, 사고의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김관선 - 내 몸이 성전입니다
현대인은 음식도 맵고 짜고 더 자극적인 화끈한 맛을 선호하는 것처럼 신앙도 성경에 근거한 정상적인 신앙의 모습은 미지근한 것 같고 양이 차지 않아 한다. 미혹의 영에 이끌리는 것이겠지만 이미 주신 말씀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이단에 빠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상태에까지 가지는 않았을지라도 혹자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무언가 색다른 것을 듣고 보여 주시기를 바라는 이들도 있다.
필자도 이렇게 주님께 아뢴 일이 있었다. “성경에 나오는 그 많은 주의 종들이 생명과 구원의 근원이신 주님을 보았고 만났으며 말씀을 들었고 이상을 보았습니다. 저도 주님의 생명 받아 거듭난 주의 자녀이니 주님께서 저에게도 무언가 보여 주시며 어떤 말씀을 들려주십시오”라고 말씀드렸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언젠가 새벽 기도 시간에 환상처럼 보게 된 내용과 마음속에 들려지는 무언의 음성을 들은 적이 있다. 보게 된 내용과 들려진 무언의 음성은 이렇다. 예전 뒷간 큰항아리의 모습과 그 안에 있는 무수한 구더기들을 보여 주셨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문화나 문명이 발달하기 반세기 전인 1970년대까지도 시골은 물론이요 지방 소도시 단독 주택에서는 수세식 화장실이 널리 보급되지 않았었다. 예전 시골에서 사용했던 뒷간의 배설물을 담는 큰항아리가 묻혀 있고 그 안에 있는 배설물과 그 위에 있는 구더기들의 우글거리는 모습의 영상이었다.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고 싫고 좋지 않은 모습이 한참 떠올라 머리를 흔들며 지우려 하는 그때에 내면의 음성이 들려졌다. 이 모습의 실상이 인간의 내면의 모습이며 상태라는 마음의 소리였다. 이렇게 보이고 들려지는 영상과 음성 때문에 한참 동안 마음이 먹먹하고 낯이 뜨뜻해지며 혼란스러웠었다.
마귀가 왕 노릇 하는 어둡고 더러운 뒷간 같은 이 세상에서 구더기 같은 내가 넝마를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으로도 보였다. 실상을 보고 나니 주변의 것에 매달려야 할 필요가 없음을 잊고 살아왔음을 새삼 깨우쳐 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통 안에서 구더기들끼리 누가 더 통통하고 누가 더 잘 기어오르며 잘 구른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으며 가치가 있는가 하는 등의 큰 울림을 주신 것으로 받아들였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아름다운 창조물인 사람이 영혼을 거스르며 싸우는 육체의 정욕은 배설물이니 다 내어 버리고 내면을 하나님의 말씀과 생명과 마음으로 채우고 단장하라는 말씀으로도 받았다.
김원상, 성령 장아찌
야수를 미녀 되게 하시려 그분은 친히 야수가 되신다. 예수님이 우리와 자리를 바꾸신 것이다. 아담처럼 우리는 저주 아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우리 자리를 대신하여] 저주를 받은 바”(갈라디아서 3:13) 되셨다.
그분이 주먹을 움켜쥐지 않으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분은 목록을 보셨다! 무엇이 그분의 저항을 막았는가? 당신의 실패가 적힌 이 증서, 바로 이 목록이다. 예수님은 죄의 값이 사망임을 아셨다. 이 죄가 비롯된 곳이 당신임을 그분은 아셨다. 당신 없는 영원을 생각하실 수 없기에 그분은 못을 택하셨다.
맥스 루케이도, 예수가 선택한 십자가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