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신학회가 15일 오후 2시 제34차 정기학술세미나를 온라인으로 개최했다. 이날 이상은 교수(서울장신대 조직신학)가 ‘복음이 과학과 만날 때’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이 교수는 “21세기 들어 기독교 신앙과 과학과의 대화는 여전히 가장 활발한 논의 중 하나의 주제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진화’라는 말은 오늘날도 여전히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어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상대성이론을 비롯한 지난 세기의 많은 물리학적 관점이 과학과 종교 사이의 치열한 논쟁을 야기하지 않았던 역사에 비추어볼 때, ‘진화’라는 용어가 두세기를 넘어 여전히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은 이 어휘가 기독교적 관점에서 여전히 쉽게 다룰 수 없는 세계관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고 했다.
이어 “그렇다면 과연 기독교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진화’라고 하는 개념은 터부시되거나 이단시되어야 할 용어인가, 아니면 세계의 전개의 기제를 설명해주는 기술적 용어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일까”라며 “이른바 ‘유신론적 진화’라고 하는 어휘를 중심으로 오늘날 기독교 신학계에서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어 가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신학계 일각에서는 이 어휘에 대한 거부감으로 인해 가까이 다가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러한 관점에 직면해서 우리는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진화란 개념은 여전히 신앙의 본질과 양심을 걸고 싸워야 할 개념인가, 아니면 보다 열린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개념인가”라며 “한 가지 참고할만한 사실은, 이러한 논쟁은 우리보다 앞서 창조과학 논쟁을 거쳤던 구미신학계에서 심도 있게 다루어진 바 있는 사안이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논의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관점을 제공해 줄 것”이라고 했다.
그는 “19세기, 그리고 20세기 초반까지 이어지던 다윈주의에 대한 다양한 수용양상이 미국을 중심으로 단절된 이유를 리빙스턴(아일랜드 지리학자)은 양 진영의 형이상학적 방향으로의 경도에서 찾고 있다”며 “이러한 갈등이 첨예화된 스코프스 사건 이후 이른바 ‘복음주의’권의 진화에 대한 관점 역시 단절을 지향하게 된다. 진화론 역시 한편에서 종교적, 형이상학적 관점에서의 대화를 추구하기보다 극단적인 ‘진화주의’의 길을 걸어갔던 것도 사실이다. 리빙스턴은 한편으로 이러한 대화의 단절이 반드시 불편한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위안을 찾기도 한다”고 했다.
이어 “ 실비아 바커(S. Barker)와 더불어 리빙스턴은 창조과학이 그 나름대로 문화적 함의들을 미국 사회에서 행사한 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도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이른바 ‘창조주의자’들의 운동이 근본주의적 세계관을 확립하기 위한 자기정당화의 역할을 수행했던 것도 존중해줄 필요는 있다는 관점을 피력하기도 한다”며 “다만, 이러한 관점의 추구가 기독교의 세계관적 고립을 초래함으로써 보다 현대 지성사의 활발한 논의에 기여할 수 있는 스스로의 기회를 상실하게 되었다는 것은 아쉬운 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 리빙스턴은 20세기 진화론의 진영 내에서 나름대로 형성되어 온 진화론적 윤리의 형성을 주목하며 기독교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대화를 추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며 “실제로 과학적 측면에서 진화론의 진영은 건전한 윤리적 체계를 형성해 나가기 위해 추구해 온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리빙스턴에 따르면 진화론의 진영에서 인식된 윤리적 관점을 적극적으로 공유하고자 하는 시도는 이미 19세기 후반 ‘과학과 종교의 화해’(Reconciliation of Science and Religion)의 출판을 통해 기획했던 알렉산더 윈첼(A.Winchell)과 같은 이에 의해 시도된 바 있다”며 “그는 그 당시 이미 형성되어 있던 상호간의 적대감을 명백히 인지하는 가운데, 그리스도교 신학을 과학적 기반 위에서 어떻게 인지해야 할 것인가를 다루는 작업을 형성했던 것”이라고 했다.
이어 “결론적으로 과학으로서의 설명모델로서의 ‘진화’에 대한 관점에 대한 열린 자세를 견지한 가운데 기독교 신앙과 과학이 적극적 대화를 수행해 나가는 것은 21세기에 대단히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리빙스턴은 주장하고 있다”며 “이러한 관점에서, 리빙스턴이 제안한 역사적 관점 및 지리학적 관점에 따른 공시적, 통시적 접근의 적용은 ‘진화’를 둘러싼 기독교와 과학의 대화를 추구함에 있어서 이안 바버(I.Barber)와는 다른 또 하나의 관점을 제공해준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방법론적으로 볼 때, 리빙스턴은 진화론의 수용이 하나의 층위, 하나의 관점에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 다면적 관점을 제안하고 있다”며 “그는 하나의 주체가 어떤 특정 이론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해 집중하기보다 다양한 주장들이 만나는 가운데 불꽃이 일어나는 ‘플래쉬 포인트’(flash point)라고 부르는 지역적 초점을 중심으로 다양한 창발적 모습이 일어나는 양상에 대해 주목하도록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고 했다.
또 “이러한 그의 관점은 ‘진화’ 자체의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촉구에 있어서도 반영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진화는 단순히 하나의 개체가 환경적 변화에 적응하는 기제를 설명하거나 ‘자연선택’이라고 하는 형이상학적 개념에 따라 설명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며 “고생태학자 베네트(K. Bennett)의 주장에 따라 진화는 사실 비선형적이면서 유전형(genotype)과 표현형(phenotype) 사이의 카오스적 역동성에 따라 이루어지는 창발성 속에 형성되어가는 패턴을 담고 있는 개념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적어도 19세기 초 칼빈주의에 입각했던 유럽과 미국의 장로교는 이러한 창발성을 주목하는 관점을 갖추고 있었다고 보고 있다”며 “이후의 시기 기독교와 과학이 각자 형이상학화의 길을 걸으면서 상실했던 이러한 관점을 회복시킴으로써 기독교와 과학사이의 역동적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관점을 그는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영미권 복음주의 권역에서 다윈주의에 대한 수용양상은 하나의 단순한 형태 속에서 윤곽이 그려졌던 것이 아니라, 지역과 장소에 따라, 사회문화적 여건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며 “그러한 모습과 더불어 19세기 장로교 전통들이 서 있던 철학적 관점과 배경에 따라 차이가 나타나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베이컨의 경험론적 측면, 그리고 스코틀랜드 상식실재학파의 학문적 기반 위에 서 있는 전통에서 다위니즘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수용과 대화의 대상이었다고 리빙스턴은 관찰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20세기 초반 이후 신학 및 과학계가 ‘갈등’의 양상으로 달려가게 된 것은 사실 형이상학적 전제와 기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진화라고 하는 주제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과 반성 속에서 나타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사실 오늘날 치열하게 서로의 진영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양상을 볼 때, 이러한 논쟁 가운데에서 과학적 개념 자체에 대한 진지한 탐구보다 그들의 철학이 기반하고 있는 토대주의적 사유구조의 패러다임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을 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기반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지난 세기 ‘진화’에 대한 담론이 형성해 온 인문학적 산출을 흡수하고 대화하며 신학이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고 덧붙였다.
또 “한편으로 한국사회에서 ‘진화’의 개념에 대한 논의를 진행시키는 가운데 20세기 초 이후 단절되었던 미국의 예를 따라가면서 보다 역동적인 논의의 장으로 끌고 가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며 “진화에 대한 한국 신학계와 과학계의 담론이 보다 적극적으로 19세기의 유산을 살펴보았더라면 조금은 다른 방향이 전개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도 남는다”고 했다.
그는 “물론 리빙스턴의 관점을 볼 때 질문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지리학자로서 리빙스턴이 작업을 수행하는 가운데 진화를 비롯한 여러 개념에 대해 이론적 차원에서 깊이 다루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부분은 아쉬운 점이라고 볼 수 있다”며 “또한 리빙스턴이 기본적으로 유신론적 설계논증의 기반 위에서 전체적인 논의를 끌어가면서, 맥코쉬와 워필드의 대변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이어 “전반적으로 페일리의 설계 논증을 뒷받침하는 관점을 가지고 논의를 전개해 나가고 있는 한편, 이러한 관점에 대한 반성과 분석을 수행하는 시도는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 역시 고려해야 할 부분”이라며 “다시 말해서 그의 분석이 전체적으로 공시적 및 통시적 차원에서 머물러 버리는 측면이 있으며, 각각의 논증과 관점 자체에 대해 세밀한 분석을 다루지 않는 것 또한 한계라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여전히 진화의 개념을 둘러싸고 이 문제에 대해 해묵은 갈등을 지속하고 있는 21세기의 현장에서 지난 세기 활발했던 논의의 현장을 반추함을 통해 미래를 위한 과거의 분석을 수행하고 있는 것은 이 분야의 논의를 위한 큰 기여라고 할 수 있겠다”며 “이러한 관점을 기반으로 기독교 신앙과 과학 사이의 적극적인 논의의 장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 이 주제를 다룸에 있어서 차후의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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