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아름다운 보석으로 꾸며져 있단다. 길도 황금길이구. 그곳은 도무지 슬퍼할 일이 하나도 없는 곳이란다. 모든 사람들은 그저 기뻐하고 좋아하기만 하지. 그뿐만이 아니야. 어린아이가 사자와 놀아도 사자가 사람을 물지 않는 곳이야. 독이 가득 오른 뱀도 물론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말이야.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하고…….”
할머니의 말씀을 듣는 승훈이의 눈빛이 초롱초롱하게 빛나더니, 그 얼굴에 감격의 빛을 가득 담고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머니! 빨리 천국 가세요.”
이것은 할머니의 말씀에 감동된 승훈이가 할머니에게 표현할 수 있는 최대의 사랑의 고백이었습니다. 그처럼 좋은 곳에는 당연히 할머니께서 먼저 가셔야 한다는 어린아이의 꾸밈없는 표현이었습니다. 물론 어머님께서도 승훈이의 그런 뜻을 잘 알고 계실 터이지만, 그 순간 어머님의 얼굴에는 역력하게 서운한 표정이 서렸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저는 저 자신에게 이렇게 반문해 보았습니다. 재철아! 넌 천국에 빨리 가고 싶어 할 정도로 천국을 확신하고 있니?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어떤 일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 믿음의 과정이다. 여호와의 도를 지킨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동의하고 순전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공감하며 그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을 의로 여기신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 그 말씀을 사랑하는 삶, 그것이 하나님의 의로 덧입혀진 삶이다.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는 거룩한 삶을 위해 세상적인 것과 일정한 거리두기가 필수적이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므로 성도들 역시도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당연하다. 성도가 이 세상에 살면서 무엇과 거리두기를 해야 할까? 세상에 속한 것들이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원수로 여기는 것들과는 무조건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모든 것과는 무조건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 회복이 이루어지려면 또 다른 한 쌍의 선지자가 나타나야만 했다. 그중 첫 번째 선지자는 모세나 엘리야와 마찬가지로 광야의 사람으로서,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그 나라의 사악한 통치자와 대결했다. 그리고 두 번째 선지자는 여호수아나 엘리사와 마찬가지로 요단 강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을 받았으며, 이 적을 행하고 창녀들과 적국에 속한 군인들을 환대해 주셨다. 그분은 나환자들을 고치고 백성들에게 기적적으로 음식을 공급해 주셨으며,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도시들을 향해 심판을 선포하며 죽은 자들을 소생시키셨다. 그리고 여호수아나 엘리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분의 이름 자체에 구원의 의미가 있었다. 그 이름은 예수Yeshua, 곧 ‘주님이 구원하신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호수아나 엘리사의 경우와는 다르게, 그분은 이스라엘 백성이 필요로 하는 그 위대한 구원을 실제로 가져올 능력이 있었다. 그러므로 천사는 앞서 요셉에게 이렇게 선포했던 것이다. “[그분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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