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갈라디아서』
©도서『갈라디아서』

일단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그분과 연합되면, 우리의 옛 삶은 끝난다. 우리가 다시 그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게다가 우리는 새로운 삶으로 부활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이 새로운 삶을 산다. 다른 의미에서 그 삶을 사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시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 안에 사시면서 거룩함에 대한, 하나님에 대한, 하늘나라에 대한 새로운 열망을 우리에게 주신다. 우리가 다시는 죄를 지을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죄를 지을 수 있다. 하지만 죄를 짓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우리 삶의 전체 방향은 바뀌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다르다. 우리 자신이 다르기 때문이다.

품어주심
©도서『품어주심』

‘품다’라는 말이 참 좋다. 중의적 표현이라, 그 말에는 품에 ‘감싸안는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고 ‘보호’의 의미가 있을 것이며, ‘사랑’의 의미도 있을 것이다.
‘품다’라는 말을 생각할 때면 나는 노아의 방주가 떠오른다. 방주는 히브리말로 ‘테바’라고 한다. ‘상자’로 번역된 히브리어 ‘테바’는 방주를 비롯해 구약성경에서 두 번 나오는데, 나머지 한 곳은 출애굽기의 모세의 갈대상자를 말할 때 나온다. 테바는 구원과 연결된다. 홍수 심판 가운데 방주(테바)를 통해 노아의 가족과 동물들을 구하셨듯이(히 11:7), 남자아이들의 죽음 가운데서 갈대 상자(테바)를 통해 아기 모세를 구원하셨듯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구원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롬 8:1). 그래서 ‘테바’는 하나님이 인간을 품으신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창세기에 나온 방주는 나에게도 ‘품다’와 같은 의미로 다가온다. 단순히 하나님의 분노와 처벌의 홍수에 집중하기보다, 방주를 끌어안은 하나님의 절박함에 집중해야 한다. 마치 배를 감싸 안고 매질을 견딘 정은이처럼, 그리고 모세만큼은, 이 아이들만큼은 더 껴안으려 더 낮게 웅크리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한다.

도서『찰스 스윈돌의 신약 인사이트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도서『찰스 스윈돌의 신약 인사이트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나는 빌레몬서로 인해 내가 받은 용서, 자유,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누리는 친교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감사를 느낀다. 이 편지는 우리 모두가 믿을 수 없는 도망자였음을 상기시켜준다. 그러나 오네시모처럼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출되었다. 그로 인해 내 도주는 막을 내렸고, 빚을 다 탕감받았으며,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되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두 종류의 노예가 있다. 첫째는 도망을 멈추고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과 회복과 새 삶을 찾은 자들이다. 둘째는 아직도 도망치고 있는 자들이다. 하나님에게서 도망치고, 죄의 참담한 결과에서 도망치며, 지금 당장 가능한 용서와 자유에서 도망치고 있다.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도망친 노예를 해방시켜주시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자유를 얻은 자들에게는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나는 당신이 당신을 구속하시려고 대가를 지불하신 주님께 유익한 자가 되기를, 그분께 매인 종으로 기꺼이 순복하는 자가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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