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의 좌절과 전 세계적으로 공산주의 사상과 진화론 및 무신론주의는 그동안 견고하게 부흥되어 온 조선의 모든 교회에 큰 위기와 분란을 초래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격동기 가운데서도 대체적으로 부흥과 성장으로 이어갔다. 시대적으로 가장 암울한 시기에 영적으로 큰 부흥운동을 주도한 인물은 길선주 목사에 이은 김익두 목사 였다... 사회주의 확산과 교회의 혼돈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은 1918년 1월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 자결주의를 온 세계에 선포함으로 그 당시 조선을 비롯한 식민지하에 있었던 수십여 개의 나라들에게 독립 사상과 민족주의에 대한 의식을 불러일으켰다... 3.1운동 이후 사회주의 침투와 교회의 혼란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을 전후하여 일제강점기 중에 조선에 새로운 사조인 공산주의 및 사회주의가 지식층과 기독교인들 중에도 새로운 사상에 탐익하며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졌다... 3.1만세 운동이 교회에 미친 영향
1919년 그 당시의 일제 압제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전국적으로 온 민족이 대동단결하다 시피하여 태극기를 흔들며 거리로 나와 만세운동을 하였다. 이때에 가장 거국적으로 또 가장 조직적으로 만세 운동을 벌인 조직이 교회였으며 이 운동의 지도자들이 대부분 기독교인이었다... 평양 최초의 감리교 남녀 성경학교 설립
한국 교회사에서 이북 지역의 신학교에 대해서는 "평양 장로교신학교"만이 있었던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나 감리교에서도 서울의 '협성신학교'(1907) 뿐만 아니라 평양에 남녀신학교를 설립하였고 특히 여성 사역자들을 양성하기 위한 신학교도 설립함으로 이북지역의 복음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최초의 목사 평양 남산현 감리교회 김창식
한국 교회사에서 최초로 목사가 된 사람은 평양 남산현교회를 홀 선교사와 함께 개척한 김창식(金昌植, 1857~1929)이다. 그는 황해도 수안군 성동면에서 태어났다. 서당에서 한문 공부를 하며 성장한 김창식은 농사일을 하다가 21살에 세상을 알기 위해 전국을 다니며 방랑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서양 사람들이 아이들의 눈을 빼어 만든게 사진기라는 괴 소문이 파다하였다. 이는 반개화파인.. 평양 장대현 장로교회와 쌍벽 이뤘던 남산현 감리교회의 역사
평양 도성에는 미 북장로교에서 파송 받은 사무엘 마펫이 1894년 1월 7일에 대동문 안의 널다리골에 교회를 개척하였다. 그 후 1901년에는 교회가 크게 부흥되어 평양의 중앙인 장대재로 이전하여 ㄱ자 형의 큰 교회당을 건축하였고 부흥을 거듭하여 2천여 명의 성도들이 모였다. 그 후에도 계속 부흥되자 교회를 분립 개척하여 서문밖교회와 산정현교회, 창광교회 등으로 성 밖까지 부흥 개척되었다... 홀의 아내 로제타와 아들 셔워드의 대를 이은 의료사역
로제타 홀은 그의 남편 의사 선교사인 윌리엄 제임스 홀이 평양에서 청일전쟁에서 부상당한 환자들을 돌보다 과로와 전염병으로 쓰러져 서울로 옮겨져서 그의 아내와 아기가 지켜보는 가운데 1894년 11월 19일에 숨을 거두었다... 평양 최초 의료·교육 선교사 윌리월 제임스 홀(1)
서울 마포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양화진 묘원에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약 450여 명의 외국인 선교사들이 그곳이 본향인양 묻혀있다. 그 중에 3대에 걸쳐 여섯 명이 묻혀있는 가족이 있다. 그가 바로 미 감리교 해외 선교부에서 파송된 의사 윌리엄 제임스 홀(William James Hall, 1860~1894) 선교사이다... 미국 하와이와 본토로 진출한 조선인 교회
1900년대 초에 조선에서는 1860년대처럼 혹독한 흉년이 다시 확산되어 농민들과 백성들의 굶주림이 극해지어 많은 희생자들이 발생되었다. 그 즈음에 알렌 선교사가 조선에 최초로 미국공사관에 의사로 입국하여 갑신정변으로 인해 최초의 서양식 제중원을 1885년에 세웠고 그로인해 선교사들이 입경할 수 있는 발판을 구축한 그는 1887년에 주미전권 공사의 고문인 참찬관에 임명되어 미국에 가서 청나라.. 일본에 선교사를 파송한 평양 독노회
일본은 조선을 1910년에 강제 합방함으로 그 당시 조선인들은 국적상으로는 일본인이 되어 일본에서 학업과 생업과 이주가 자유스러운 관계로 수십만 명의 조선인들이 1945년 해방되기 전까지 일본에 건너와 거류하였다. 그러한 역사적 관계로 조선인들이 일본에서의 신앙생활에는 신사참배의 강요가 있기 전까지는 신앙생활과 교회 사역 활동에는 지장이 없었다... 러시아 연해주와 시베리아로 북방선교의 지경을 넓히다
두만강과 약 18킬로를 접하고 있는 러시아의 연해주 지역은 조선 말기인 1863년에 함경도의 주민들이 극심한 기근과 정부의 수탈로 인해 고통 받았던 13가구가 국경을 넘어 광활한 대륙이며 무주공산 같은 토지를 개간하였으며 특히 벼농사를 성공시킴으로 조선인들에게는 신천지와도 같은 곳이었다. 이들의 성공적인 경작과 정착이 소문이 나면서 이에 함경도 지역을 비롯한 여러 지방의 빈농들이 연해주로 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