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묵시록은 늙은 사도요한이 지중해의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을 때 환상 속에서 계시를 받아 기록한 성경이다.
종말의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재림과 최후심판, 새 하늘과 새땅의 영광을 기록하였으나 너무나 어려운 내용들이기 때문에 누구나 이해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중세 때에 성경을 알지 못하는 일반 신자들에게 성경내용을 그림으로 그려서 신앙지도를 한 그림성경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묵시록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성서화이다.
중세 필사본 중에서 요한묵시록에 관한 내용을 가장 소상하고 성경내용대로 표현하여 가장 표준이 된 도상학 싸이클을 보여준 것이 바로 이 '1313년 명 요한묵시록 (The Apocalypse of 1313)' 이다.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있는 이 묵시록은 채식화가인 Colin Chadelve가 1313년이라고 날짜를 쓰고 서명한 금빛 삽화로 가득한 필사본이다.
이 묵시록의 특징은 최후의 심판이 끝난후 죄인들이 떨어질 지옥의 장면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표현하였다는 점이다.
죄인의 가죽을 벗기고 매질하며, 물이나 기름이 펄펄 끓는 가마에 저주받은 죄인을 내 던지고 집게로 두 눈을 뽑아내는 무자비한 고문과 형벌이 너무나 섬뜩해진다.
그러나 신학적 관점에서 보면 참으로 중요한 사실을 그림에 표현하고 있다.
구약성경의 창세기에 있는 금단의 열매가 달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신약성경 묵시록의 새하늘과 새땅에서 보이는 생명나무를 상호 연결시킨 독특한 구도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담과 이브가 범죄한 원죄 때문에 인간들은 영원한 형벌을 면할 수 없지만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음으로서 그리스도 자신이 생명나무가 되었다는 모티브이다. 따라서 이 그림 중앙에 서 있는 나무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임과 동시에 생명나무이다.
우선 옷을 입지 않은 아담과 이브는 뱀의 유혹을 받아 금단의 열매를 받아들고 있다. 아담과 이브의 좌우에 메시지를 들고 나무를 가리키며 앉아있는 사람은 왼쪽에는 머리에 뿔이 돋는 모세이고 오른쪽에는 묵시록을 쓴 사도요한인데 서로 대화하고 있다.
구약을 대표하는 율법의 전수자인 모세는 "낙원의 중앙에 있는 생명나무"라는 창세기기록(창2:4)을 들고 있으며 신약을 대변하는 요한은 '열두 가지 실과가 있는 생명나무'라는 구절(계22:2)의 메시지를 들고 있다.
요한이 보았던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 언덕에는 생명나무가 자라는데 이 강은 그림의 사각둘레에 푸른색으로 그려져 있다.
이 강은 또한 창세기에서는 에덴동산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던 비손강, 기혼강 그리고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이기도하다. 그림에서 이 네 개의 강줄기를 표현하기 위하여 그림 네 귀퉁이의 원형그림 속의 네 생물이 항아리에 찬 물을 쏟아 붓고 있다.
신구약성경 양쪽에 모두 등장하는 이 네 생물은 도상학에서는 사복음서 기자의 심볼로 해석하고 있다.
뱀이 휘감고 있는 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큰 줄기가 올라가면서 잎이 무성하다. 금단의 열매 대신에 중앙에 예수 그리스도를 배치하고, 좌우에 제자들을 과실처럼 그려 넣어서 생명나무로 변화된 모습이다. 생명나무에는 열두 가지 과실이 매 달 열리는데 열두 사도가 이를 대신하고 있다. 오른쪽 상단에는 이방인에게 전도한 사도 바울을 추가하여 13인의 제자가 예수를 둘러싸고 있다.
그리스도는 이새의 나무를 연상시키는 구도의 정점에서 면사포를 두르고 반신상으로 그렸는데 십자가 모양의 후광이 빛나고 있다.
이 묵시록은 14세기 초반 프랑스 필사본 가운데 다른 책에 비해 파리의 토박이 스타일이 적으며 오히려 당시 인기 있던 영국의 고딕양식이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 때까지 일반화 되어있던 전례용 고딕 묵시록에서 내면적인 깊은 명상을 위해 사용된 후대의 개인기도서로 옮겨가는 전환기적 성격을 가진 필사본이라 하겠다.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이 사본은 2006년 스페인의 Moleiro사에서 팩시밀리판으로 출판하므로 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필자는 이때에 전면도판 삽화 5종을 구입하여 이번에 이 성서화를 소개하게 된 것이다.
■ 강정훈 교수는…
미암교회(예장 통합) 장로이기도 한 강 교수는 1992년 성서화전시회를 개최했으며 1994년에는 기독교잡지 '새가정'에 1년 2개월간 성서화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했다.
그는 35년간 중세의 성서화 자료와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의 저서를 모으고 있다. 그 중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 저서 및 자료 675점은 숭실대 학국기독교박물관에 2011년 기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