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첫날의 창조: 지구의 밤과 낮(흑암과 빛)
1) 첫날의 밤과 낮의 시간적 길이
한글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는 사람들은 1:3에서 하나님이 ‘예히 오르’(יְהִי אֹור : 빛이 있으라)라고 명령하신 말씀을 읽고, 낮에 빛을 비추는 태양이 처음 창조된 것으로 이해하거나, 그때부터 창조가 시작되었다고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1:4에서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וַיַּבְדֵּל אֱלֹהִים בֵּין הָאֹור וּבֵין הַחֹשֶׁךְ׃)라는 구절과 1:5에서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וַיִּקְרָא אֱלֹהִים לָאֹור יֹום וְלַחֹשֶׁךְ קָרָא לָיְלָה)는 구절을 연속적으로 읽고, 또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וַיְהִי־עֶרֶב וַיְהִי־בֹקֶר יֹום אֶחָד׃)는 서술을 바로 이어서 읽기 때문이다.
한글성경에는 그런 오해를 사실로 믿게 만드는 심각한 번역의 오류가 두 가지 있다. 첫 번째의 번역 오류는 1:4와 1:5에서 나오는 히브리어 ‘호쉐크’(חֹשֶׁךְ)를 ‘어둠’으로 번역한 것이다. 창조 톨레도트에서 ‘호셰크’는 1:2에서 처음 나오며, “흑암”으로 번역했다. 그러나, 1:4와 1:5에서는 ‘호쉐크’를 다른 의미를 가진 것처럼, “어둠”으로 번역하여 오해를 초래하고 있다. 한글성경의 번역대본으로 알려진 KJV는 darkness로 일관되게 번역하고 있고, 다른 영어성경도 이를 따르고 있다. 사실이 그러함에도 한글성경이 1:2의 ‘호셰크’를 “흑암”으로 번역해놓고, 이를 1:4와 1:5에서는 “어둠”으로 번역하여, 심각한 오해를 초래하는 것은 고의적 왜곡 또는 오역이라고 하지 아니할 수 없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한글성경만 읽으면, 밤의 시작점을 제대로 알 수 없다. 모세는 땅의 첫날 밤이 1:2의 ‘호세크’(흑암)에서 시작되었다고 분명히 서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글성경은 ‘호셰크’를 “흑암”과 “어둠”으로 다르게 번역하면서 밤이 1:4 어둠에서 시작한 것처럼 오해하게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밤의 시간은 1:2의 흑암에서 1:3에서 빛이 나올 때까지 계속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게 이해하면 그 시간이 첫날 밤의 길이는 결코 짧게 느껴지지 않는다.
두 번째의 번역 오류는 ‘욤 에하드’(יֹום אֶחָד)를 “첫째 날”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히브리어 ‘에하드’는 하나(one)를 가리키는 기수(基數)이지 첫째를 가리키는 서수(序數)가 아니다. 히브리어에서 첫째를 가리키는 서수는 바로 1:1에서 “태초에” 라고 번역된 ‘뻬레쉬트’에서 전치사 ‘뻬’(בּ)를 뺀 ‘레쉬트’(ְרֵאשִׁית)라는 사실은 이미 앞에서 말했다. KJV는 ‘에하드’를 the first day로 번역했다. 그러나 그것보다 뒤에 나온 ASV 등에서는 one day로 수정했다. ‘욤 에하드’를 한글성경에서 히브리어 본래 의미를 따라 ‘어느 날’(one day) 또는 이 글에서처럼 ‘첫날’이라는 말로 번역했다면, 한글성경 문자주의자들에게 괜한 오해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욤 에하드’는 옛날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날자를 모를 때 하는 말처럼, ‘어느 날’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모세에 의하면 하나님이 최초에 창조(뻬레쉬트 빠라)하신 것은 빛이 아니라, 분명히 천(하늘)과 지(땅)였다. 그렇다면 1:1의 “태초”와 1:2의 사이에는 현대인들이 알고 있듯이, 하나님이 모세에게 보여주지 않으신, 우주창조의 긴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이 암시된다. 한글성경 또는 KJV에처럼 기왕에 ‘첫째 날’(the first day)로 쓴 것이라면, 어떤 사건의 첫째 날로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태초’와 ‘밤’과 ‘낮’을 연결하여 이해하면, 저절로 알게 되는 문제이다.
올바른 이해를 위해 한마디 덧붙인다면, “태초”에 하나님의 창조를 실제 본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진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은 모세에게도 창조의 시간이 언제인지를 알려 주지 아니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지만물의 법칙을 연구하는 물리학에 의하면, 우주와 지구가 하룻밤이라는 짧은 시간에 같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이 영원히 현재의 시간에 존재하시는 분으로 믿는다. 따라서 하나님이 창조에 사용하신 시간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시간인 ‘카이로스’에 속하는 것으로 인정하고, ‘인간이 알 수 없는 문제’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굳이 말하지 않는 ‘태초’의 시간 문제는 과학의 연구에 맡겨두는 편이 더 낫다.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믿음이 ‘태초’의 시간에 달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적 교양을 가진 현대인들이라면, 일부 근본주의자처럼 오류가 많은 번역성경의 문자적 해석을 근거로 우주와 지구가 약 6,000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을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다.
2) 첫날의 낮과 오르(빛): 창조주의 지구 임재
창조 톨레도트에서 첫날의 낮은 모세가 흑암에서 “빛이 있으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때 시작되었다. 이에 대해서 가장 많이 연구한 사람은 영국국교회 제임스 어셔(James Ussher, 1581-1656) 주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영국국교회의 설립과 KJV 영어성경 번역에 깊이 관여했던 인물이다. 그는 『연대기』에서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는 말씀에 의해서 생겨난 빛이 BC. 4004년 10월 23일 일요일 아침 해가 뜨면서 비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어셔 주교에 의하면 그날은 24시간 하루의 시작이었으며,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추분이었다.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신 것이 빛이고, 그 빛에 의하여 24시간 하루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는 근본주의자들의 관점은 잘못 번역된 한글성경을 문자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른다면 첫날은 밤이 없었거나, 또는 첫날 낮 이전에 있었던 시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시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그것은 하나님을 매우 불완전한 창조자로 만드는 해석이다. 하나님의 창조 톨레도트를 제대로 해석하려면, 지구에 빛이 있기 전의 모든 우주적 사건들이 첫날의 밤 즉 ‘호셰크’의 시간 또는 그 이전에 일어났었다고 이해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기독교가 어셔 주교와 같은 주장을 되풀이한다면, 그것은 천동설을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보다 더 큰 거짓말이 된다.
곧 알게 되겠지만, 모세는 하나님이 창조 넷째 날에 광명체를 만드시고, 땅에 빛을 비추게 하시고, 주야를 주관하게 하셨다고 명확하게 서술하고 있다(1:14-18). 그렇다면 창조의 첫날에 비친 빛은 넷째 날의 빛과 다르게 해석되어야 한다. 사실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근본주의자들은 아직 지구에 비치지도 않은 해의 빛이 첫날의 낮이 되었고, 그때부터 24시간 하루가 시작되었으며, 그래서 성경적 지구의 나이는 6,000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히브리어의 문자적 의미는 물론, 현대인들의 과학적 상식까지 깡그리 무시하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과 그의 창조를 제대로 믿는 기독교인이라면, 그런 무지한 주장을 지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첫날의 빛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그 빛에 대해서는 이미 사도 요한이 잘 해석해놓았다. 요한에 의하면 빛은 주 하나님이다(요1:1-5).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신 분이시다. 요한은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계4:11)고 썼다. 따라서 첫째 날의 빛은 지구에 인간을 창조하시기 위해 주 하나님이 땅에 임재하셨던 사실을 의미한다. 요한의 해석은 지구의 생명이 물질에서 화학작용으로 저절로 생겨났다는 과학적 무신론을 부정하는 관점이다. 요한에 의하면 태초부터 성부 하나님과 함께 계시는 성자 하나님의 빛은 태양이 빛을 비추기 전에도 있었고, 현재도 있고, 미래에 태양이 필요 없는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에도 있을 것이다. 그때는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계22:5). 사도 요한은 모세가 서술한 창조 톨레도트의 빛을 약 1,500년이 지난 뒤에 ‘창조주 하나님의 지구 임재’라고 새로 해석했다.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기독교인이라면 요한의 관점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모세는 이 땅에 빛으로 임재하신 주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가 진행되는 장면들을 환상으로 보았다. 그때 모세는 하나님의 빛을 보았지만, 출애굽 때에는 ‘스스로 있는 자’(출3:14)이신 하나님을 직접 보았다. 요한에 의하면 모세가 첫날에 본 빛은 햇빛이 아니다. 그 빛은 이 땅에 창조주로 임재하신 주 하나님이다. 그 빛에 의하여 모세는 하나님의 창조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빛을 해석하는 요한의 관점을 따르는 것이 가장 기독교적인 성경 이해라는 사실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요한의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창조 이후에 하나님이 지구에 임재하여 인간과 대화하신 성경의 기록이 모두 믿을 수 없는 것이 된다.
창조주 하나님이 지구에 임재하셨다는 요한의 해석을 부정하는 반기독교적 세계관들이 있다. 하나님의 창조를 사실로 믿는 기독교 창조론자들은 그런 세계관들이 사실이 아님을 입증하고 반박하는 데 주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는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와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가 1848년에 발표한 『공산당 선언』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적 세계관은 이전의 모든 관념론적 철학과 종교와 진리를 배척하고, 물질주의적 관점에서 우주 및 인류의 역사를 해석한 것이다. 둘째는 찰스 다윈(Chartles Darwin, 1809-1882)이 1859년에 『종의 기원』에서 발표한 생물학적 다윈주의 진화론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다윈이 발표한 세계관에 그들의 역사적 유물론을 접목했다. 이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장은 유물론적 진화론 또는 진화론적 유물사관으로 평가될 수 있다.
셋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상을 바탕으로 레닌(Vladimir Lenin, 1870-1924)이 러시아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 혁명에 성공한 이후 오파린(Aleksandr Ivanovich Oparin, 1894-1980)이 『생명의 기원』에서 발표한 화학적 진화론이다. 이는 지구 생명이 물질의 화학작용으로 생겨났다는 무신론적 과학주의 세계관이다. 러시아과학아카데미는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이런 것들을 모두 종합해서 만들어진 것이며,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과학적 무신론이라고 주장했다.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종교를 아편으로 취급하면서 인민을 미신으로 취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배척한다. 과학적 무신론은 특히 기독교를 가장 적대시(敵對視)하는 세계관이다.
넷째로는 우주가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나 신의 개입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무(無)에서 양자요동과 중력의 법칙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서술하는 『위대한 설계』의 저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1942-2018)의 세계관도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창조를 부정한다. 호킹은 우리우주가 무에서 양자 거품으로 생겨난 많은 우주 중에서 하나라고 주장했다. 호킹에 의하면 창조자 없이 우주가 수없이 많이 생겨났으며, 우주만물은 결국 아무 곳에서나 ‘자발적 창조’에 의하여 생겨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런 주장들에 대해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기독교인들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창조주 하나님과 그의 창조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그런 기독교인들이 아무리 열심히 예배와 기도와 제물을 바칠지라도 용납하지 아니하실 것이다. (계속)
허정윤 박사(알파창조론연구소, 창조론오픈포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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