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알파 창조론
1. 태초에 창조된 천지
모세는 창세기 1:1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고 선포했다. 이 구절에서 첫 글자로 나오는 “태초에”는 히브리어 원어 ‘뻬레쉬트’(רבְּרֵאשִׁית)를 번역한 말이다. 그러나 ‘뻬레쉬트’는 전치사 ‘뻬’와 최초 또는 첫째라는 서수(序數) ‘레쉬트’가 결합한 부사구이다. 이 구절은 ‘최초에 하나님이 천지(天地)를 창조하심으로써 우리우주의 시간과 공간(空間)이 생겨났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한글성경이 “태초에”라는 말보다 ‘최초에’ 또는 ‘처음에’라는 말로 번역했더라면, 이해하기에 더 쉬웠을 것이다. 창세기는 1:1에서 “천지”의 “천(하늘 天)”에 해당하는 ‘하샤마임’(הַשָּׁמַיִם)에 대해서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바로 “지(땅 地)”에 해당하는 ‘하아레츠’(הָאָרֶץ)를 설명하면서 2절로 넘어간다. 여기서 천지는 현대적 우주와 지구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하늘의 아래까지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모세는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하늘은 태초 이전부터 있었고, 태초에 창조된 천지와는 시공간적으로 다른 차원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하늘이 지구보다 훨씬 먼저 만들어졌다고 해야 납득할 수가 있는데, 모세는 그렇게 서술하지 않았다. 따라서 창조 톨레도트를 읽는 현대인들은 하늘과 땅 사이에 공간과 시간의 이중적 공백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창세기 1:1과 1:2를 독립절로 해석하느냐, 종속절로 해석하느냐의 문제가 등장하게 된다. 두 가지를 비교해보면. 독립절로 해석하는 것이 종속절로 해석하는 것보다 합리적이다. 그렇게 해석해야 할 이유는 창조 톨레도트 곳곳에서 드러난다.
1:2에서 모세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וְהָאָרֶץ הָיְתָה תֹהוּ וָבֹהוּ וְחֹשֶׁךְ עַל־פְּנֵי תְהֹום וְרוּחַ אֱלֹהִים מְרַחֶפֶת עַל־פְּנֵי הַמָּיִם׃)고 서술했다. 여기에서 “깊음”으로 번역된 ‘테홈’은 깊은 물을 의미한다. 모세에 의하면 땅은 ‘토후’(혼돈)하고, ‘보후’(공허)한 상태로 깊은 물 밑에 있었다. 그리고 ‘호쉐크’(흑암)가 깊은 물 위를 덮고 있었다. 물론 흑암은 깊은 물 밑의 땅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모세는 또 ‘루아흐’(하나님의 신)가 깊은 물 위의 흑암 속에서 계속 ‘메라헤페트’(מְרַחֶפֶת: 운행한다의 분사)하시는 모습을 본 것처럼 서술했다. 그렇다면 흑암 속에서 모세는 1:2의 상황을 어떻게 동시에 한 눈으로 본 것처럼 서술할 수 있었을까? 일반 독자들은 모세가 상상해서 묘사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잠시 흑암 속에서 환상을 보고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고 인정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그런 능력을 주실 수 있는 초월적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1:2에서 모세가 사용한 하예타‘(הָיְתָה) 동사의 시제는 1절에서 ‘뻬레쉬트’에 의해 제한받는 완료형 동사 ‘빠라’(בָּרָא)와 같은 것이다. 완료형 동사는 과거에 완료된 사건을 서술한다. 그러므로 문맥상으로만 보면, “천지”인 우주와 지구가 동시에 만들어졌다고 볼 수도 있고, 또는 별개의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볼 수도 있다. 과학적 상식을 가진 현대인들은 대개 빅뱅 우주론을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우주의 “태초”는 약 138억 년 전 빅뱅의 때이고, 우리우주의 물질은 그때 처음 만들어졌다. 그리고 지구는 약 46억 년 전에 태양계에서 다른 행성들과 함께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창조 톨레도트를 문자적으로 해석하기를 고집하는 근본주의자들은 빅뱅과 우주와 지구의 연대에 관련하여 과학적 상식을 부정함으로써 현대인들과 교회 사이에 고의적으로 갈등을 만들고 있다. 그것이 현대교회에서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창세기 1:1을 1:2의 종속절로 보고, “태초”를 약 6,000년 전이라고 계산하여 우주와 지구의 나이를 주장한다. 우주와 지구가 동시에 만들어졌다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1은 모세가 창조 톨레도트의 시작과 전체적 구조를 알려주는 뜻으로 서술한 것이다. 그러므로 1:1이 1:2의 종속절로 서술되었다고 이해하고, 천지가 약 6,000년 전에 동시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큰 오해이다. 현대 과학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살아가는 현대 기독교인이라면, 우주와 지구가 동시에 만들어졌다는 주장을 함으로써 하나님이 “태초”에 말씀 한마디로 우리우주의 모든 별들을 순식간에 만들어낸 마술사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모세는 캄캄한 흑암 속에서 하나님의 신이 어미 닭이 병아리를 품듯이 깊은 물 위를 ‘메라헤페트’(운행)하고 있었다고 서술하지 않았는가? 창조 톨레도트를 제대로 읽으면, 하나님이 그의 창조목적인 인간을 땅에서 창조하기 위해 사전에 어떻게 창조 계획을 세우시고 실행하셨는지를 느낄 수 있다.
현대 기독교인들은 우주 나이 138억이라고 주장하는 빅뱅우주론과 지구 나이 46억 년이라고 인정하는 오랜 지구론을 믿는 일반인들과 갈등할 이유가 없다. 기독교의 전통적 해석 방법은이하나님이 그런 방법으로 창조하셨을 수도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초기 기독교에서 사도들은 당시 헬레니즘 사회에서 그리스 신화를 믿는 사람들에게 그리스 신화를 인정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를 선교했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가 그에게 사망과 ‘하데스’(ᾍδης)의 열쇠를 그리스도가 가졌다고 계시했다(계1:18)고 증언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 범죄한 천사들이 갇혀있는 지옥이 ‘하데스’가 다스리는 ‘타르타로사스’(ταρταρωσας)라고 설명했다(벧후2:4). 그들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사실이 아닌 이방 민족의 신화를 인용하면서 기독교 세계관을 가르쳤다. 사실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근본주의자들은 현대사회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설명하기 위하여 과학적 사실을 인용하는 것을 ‘타협’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들은 성경적 사실에는 무지하면서 불완전하게 번역된 성경의 문자를 믿고 신앙의 형제들을 비난하는 자들이다.
어쨌든 사람들이 “태초”에서 현재까지 얼마나 오래된 시간이 흘렀는지 궁금해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창세기에서 “태초”의 시기를 알려면, 히브리인의 날자 계산법에 따라, 모세가 첫 하루의 시작을 어떻게 서술했는지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히브리인들은 하루가 해지는 시각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창조 톨레도트에서도 하루는 밤에서 시작한다. 따라서 첫 하루의 시작은 첫 밤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찾아야 알 수 있다. (계속)
허정윤 박사(알파창조론연구소, 창조론오픈포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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