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하는 주님, 저를 주의 종으로 삼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연약하고 미련한 제가 사명의 길을 끝까지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붙들어 주소서. 내 사랑하는 자야, 종의 길은 결코 저속하지 않다.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 그러니 너는 할 수 있는 한 온전하라! 네 삶이 십자가를 드러낼 수 있도록 항상 고난을 묵상하라. 내 고난의 발자취를 따르라. 십자가를 품고 살아가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는 자는 자신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죄를 애통해하며 그들을 불쌍히 여긴다. 사랑하는 자야, 나와 죄인들 사이에서 중보 기도자가 되어 그들이 나의 은총을 얻을 때까지 네 기도를 멈추지 말라. (12월 27일)
처음에는 도덕과 의무와 규율과 죄와 덕이 기독교의 관건인 것 같지만, 기독교는 우리를 이 모두에서 이끌어 내 그 너머의 세계로 데려간다. 여기까지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어렴풋이 내다보이는 그 나라에서는 혹시 농담으로라면 몰라도 이런 것들이 전혀 화젯거리가 못 된다. 거울이 빛으로 가득하듯이 거기서는 모두가 선(善)으로 충만하다. 그런데 그들은 이를 선은커녕 그 무엇이라고도 부르지 않고 부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그것의 근원이신 그분을 바라보느라 여념이 없다. 그나마 이는 현세를 떠나 내세로 들어서는 길목의 근처일 뿐이다. 그 너머까지 아주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은 각자에 맞는 다양한 개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특징은 설교에도 그대로 반영됩니다. 음성, 말투, 제스처, 발음, 문장, 표정 등이 완벽히 똑같은 설교자를 찾아볼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개성은 설교자의 본문 연구와 설교 준비, 설교 작성 과정에도 큰 영향을 끼칩니다. 중요한 신학적인 노선에서 벗어나서는 안 되지만 설교자에 따라 한 본문을 놓고도 다양한 시각의 주제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설교에 정답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 특히 유명한 설교자의 해석이나 설교 스타일을 카피할 필요가 없습니다. 배우려는 의지는 좋지만 답을 정해 놓고 나 자신을 끼워 맞추는 것은 좋은 자세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각 설교자에게 허락하신 개성과 특징에 맞추어 장점을 잘 살려 설교를 구성하고 전한다면 충분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설교를 잘할 수 있을까요? 그 첫 매듭은 설교 준비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 들어가려면 몇 가지 단계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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