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모건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모건 그림 성경(The Morgan Picture Bible)'의 원래 명칭은 '라틴어 페르시아어와 유대계 페르시아인의 명문이 있는 구약성경 채식화'이다.
이 그림 성경은 프랑스 카페왕조의 루이 9세의 주문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1240년대에 제작되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루이 9세가 1248년 첫 번째 십자군 전쟁에 떠나가기 전 대관식장인 생트 샤팰( Sainte Chapelle) 교회를 건설할 때쯤으로 보고 있다.
전체적인 삽화의 내용은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왕 대신 새로운 왕으로 다윗을 세우기 위해 이새의 집으로 찾아간 구약성경 사무엘서(사무엘상 15- 16장) 내용을 그린 것이다.
위쪽 삽화의 왼쪽에는 사울왕의 불순종으로 인해 사무엘 선지자의 후회와 슬픔을 그렸다. 이새의 집으로 가서 새로운 왕에게 기름 부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자 일어나 어린양을 안고 길을 떠난다. 오른쪽에는 사무엘이 이새가 살고있는 베들레헴 성문 앞에서 여섯 명의 장로의 영접을 받으며 하나님께 드릴 제사 때에 이새와 아들들을 초청하라고 이른다.
아래쪽의 왼쪽 삽화에서 사무엘은 제사에 참석한 이새와 아들들을 보고도 왕으로 택하지 못하고 막내인 다윗을 데려오라고 이새에게 요구한다.
오른쪽에 보면 다윗은 가까운 작은 언덕에서 양을 치고 있다. 다윗은 한손에는 종을 흔들면서 파이프를 불고 있으며 그의 주위에는 개 한 마리 , 양 일곱 마리와 염소 세 마리가 있다.
다윗이 가장 좋아하는 악기인 하프는 나무에 기대어 세워두었다.
이 그림 성경의 둘레 여백에는 그림내용을 설명하는 해설문이 쓰여져 있는데 라틴어와 페르시아어와 유대인 명문인 세 가지 필체가 보인다. 이렇게 복잡한 명문이 있는것은 이 구약 사본의 고달픈 역사와 관계가 있다.
당초 프랑스 국왕의 이 구약사본은 크라코우 추기경에게 인계되었으나 그는 1608년경 페르시아 무슬림인 아바스 대왕(1571-1629)에게 외교 선물로 이 성경을 제공하였다.이 필사본은 그 후 1722년경 페르시아와 아프간의 전쟁 시에 아프간 군인에게 넘어갔다가 그 후 이란의 유대인에게 다시 넘어간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따라서 가장 먼저 쓰여진 라틴어 명문은 그림성경 위쪽 여백에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간 사연이 좌우 나란히 쓰여 있다. 아래쪽 가운데에는 다윗을 데려오라는 내용이 기재되어있다. 두 번째 주인인 페르시아의 아바스 대왕은 페르시아로 좌우 여백과 아래쪽 라틴어 상하에 명문을 추가하였고 마지막 주인인 유대인도 페르시아 글씨 밑에 짧은 명문을 기록하였다.
이 성경의 그림들은 함빡 스며드는 물감으로 정교한 세부 묘사를 하였으며 성과 건물은 13세기 프랑스 타운 풍경이며 병사들의 투구와 무기 휘장도 13세기 풍이어서 성 루이 바이블을 비롯한 아름다운 성경을 제작한 프랑스 왕실 성경의 품위를 느끼게 한다.
■ 강정훈 교수는…
강정훈 교수는 1969년 제7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해 뉴욕 총영사관 영사(1985~1989)를 거쳐 조달청 외자국장, 시설국장(1989~1994), 조달청 차장(1994~1997) 등을 지내고 1997~1999년까지 조달청장으로 일했다.
행정학박사(연세대·서울대 행정대학원·성균관대학원)로 성균관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2004~2005), 2003년부터 현재까지는 신성대학교 초빙교수를 맡고 있다. 또 (사)세계기업경영개발원 회장(2003~2008)을 역임하기도 했다.
미암교회(예장 통합) 장로이기도 한 강 교수는 1992년 성서화전시회를 개최했으며 1994년에는 기독교잡지 '새가정'에 1년 2개월간 성서화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했다.
그는 35년간 중세의 성서화 자료와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의 저서를 모으고 있다. 그 중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 저서 및 자료 675점은 숭실대 학국기독교박물관에 2011년 기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