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1.5단계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세를 통제하겠다고 나섰지만, 전문가들은 목전으로 다가온 겨울철 대유행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해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그러면서 거리두기 단계를 2단계로 선제 격상하거나 1.5단계에서 방역수칙을 지킬 수 있도록 감시를 강화하는 등 다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인플루엔자(계절 독감) 유행이 예년보다 늦어지고 있는 것도 긍정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코로나19와 독감이 동시 유행하는 트윈데믹 상황을 막을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18일 "방역과 경제를 동시에 잡겠다면서 다중이용시설 이용 인원을 제한하고 유흥시설에서 춤추기, 좌석 이동 금지 등을 제시했지만, 방역 실효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매일 발표되는 일일 신규 확진자 수는 앞서 열흘 전에 감염된 사람들이 잠복기를 거친 뒤 전날 확진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미 지역사회에 감염이 퍼진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질병관리청 전신인 질병관리본부 본부장을 지낸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도 이날 "원칙에 따라 수도권과 강원도는 진작에 1.5단계 조치에 들어갔어야 했다"며 "다른 요건을 고려하면서 지금과 같은 방역 조치를 한다면 자연적으로 2단계 요건을 곧 충족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 교수는 "정부가 머뭇거리고, 기준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동안 감염이 더 확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오는 19일 오전 0시부터 2주간 서울·경기 지역에서 거리두기 1.5단계가 실시한다.
그러면 수도권 소재 클럽 등 중점관리시설 9종의 이용 인원은 4㎡(약 1.2평)당 1명으로 제한되고 음식물 섭취, 춤추기, 좌석 이동 등이 금지된다. 50㎡ 이상의 식당과 카페 등에서는 테이블 간 1m 거리두기 등 방역수칙을 지켜야 한다. 결혼식장, PC방 등 일반관리시설 14종, 종교시설, 스포츠 경기장 등에서도 인원 제한과 좌석 간 거리두기 조치가 적용된다.
수도권은 최근 1주(11월11~17일)간 하루 평균 확진자 수가 111.3명으로, 1.5단계 격상 기준인 100명에 도달했다. 60대 이상 확진자 수는 39.7명으로 격상 기준인 40명에 근접한다. 다만, 정부는 서울·경기 확진자 수가 수도권 전체 확진자의 96%라는 점을 들어 서울·경기는 19일부터, 인천은 23일부터 1.5단계를 실시하기로 했다.
강원도의 1주간 하루 평균 확진자는 15.3명, 60대 이상 확진자 수는 4.6명으로 각각 1.5단계 격상 기준을 초과했다. 16일 기준 가용할 수 있는 중증환자 병상도 1개에 불과하다. 그러나 정부는 영서 지역에만 감염이 집중되고 있어 강원도 전체 격상은 힘들다는 입장이다.
기모란 국립암센터대학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1.5~2단계 격상 결정 권한은 지자체에 있다. 단계를 올린 후 지자체가 관할 지역에서 방역수칙이 잘 지켜지는지 관리해야 한다"면서도 "행정력이 충분하지 않은 지자체는 위반 사례를 발견해도 제재할 방법이 없어 단계 격상에 고민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 교수는 서울·경기 지역이 먼저 격상된 이유에 대해 "인천은 서울보다 발생이 적다. 경기도도 확진자가 다수 발생하고 있지만 시·군별로 차이가 크다"며 "다 같이 격상하기에는 많은 고민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독감 유행 속도가 느린 것도 사실은 매우 불안한 요소다. 본격적으로 겨울철이 시작된 이후 뒤늦게 코로나19와 함께 유행할 경우 방역이 어려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의료체계에도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7일까지 의원급 의료기관 199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독감 의심환자(ILI) 분율은 외래환자 1000명당 3.1명이다. 전년 같은 기간 7.0명, 독감 유행주의보 발령 기준인 5.8명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러다 이번주 들어 독감 유행 속도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부터 이달 초까지 독감 의사환자 분율은 주별로 1.2명→1.7명→1.9명→3.1명으로 늘어났다. 0.2~0.5명 수준에 불과하던 증가량이 1.2명으로 늘어나면서 독감 유행이 곧 진행되고, 병상 부족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란 진단이 나왔다.
정기석 교수는 "이번주 들어서 급격하게 올랐다. 예년보다 적지만, 곧 독감 유행이 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라며 "독감 바이러스가 퍼진다는 건 결국 사회에서 왕래가 잦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김우주 교수도 "독감으로 고령자의 폐렴이나 기저질환이 악화되면 중환자 병상으로 가야 하는데, 코로나19 중환자가 많아지면 병상 부족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겨울 전까지 거리두기 단계를 강화해서라도 확진자를 줄이고,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계 격상이 어렵다면, 방역수칙 준수 여부를 철저하게 감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우주 교수는 "선제적으로 통제를 하면 더 빠르게 확진자를 줄일 수 있고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며 "1.5단계도 과감하게 방역을 올린 게 아니다. 확산세 증가 속도에 브레이크를 걸기에 1.5단계는 부족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천은미 이화여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다중이용시설 운영 시간과 이용 인원을 제한하는 1.5단계에서 방역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며 "단계를 선제적으로 올리기 힘들다면 다중이용시설에서 방역수칙을 준수하는지 정부와 지자체가 꼼꼼하게 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기석 교수는 "역학조사 역량을 늘려 감염경로를 추적하고 숨은 접촉자, 확진자를 찾아야 한다"며 "환자가 증가할 것을 미리 대비해야 한다. 전국 병실을 하나로 묶어서 통제하고 지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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