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대면 예배는 교회를 정부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비대면 예배’만 허용한다는 말처럼 교회를 모독하는 말이 또 있을까? ‘비대면 예배’라는 말을 들으니, 일제 강점기 때 우리 민족이 당한 치욕 중에 하나인 ‘창씨개명’이 생각났다. 스스로 이름을 짓는 것은 일어든, 중국어든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강요에 의한 것은 치욕이다. 언제부터 교회가 우리나라의 국교가 되었다고 정부의 허락을 받아서 예배를 드리고 또 교회 용어까지 정부에게 받아서 사용해야 하는가?
‘비대면 예배’란 말은 교회가 만든 용어가 아니고 성경에도 없는 용어이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만들어서 하달한 것이다. 이것은 교회를 종속시키고 본격적으로 통제하겠다는 의도는 아닐까? 그런데 교회가 깊이 통찰하지도 않고 ‘비대면 예배’, ‘대면 예배’라는 용어를 받아서 사용하니 답답하다. 앞으로 모든 교회용어를 정부가 지정해주는 대로 사용할 셈인가? 어떤 종교에게 이런 조치를 했는가? 이건 모독이다. 이 용어는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2. 예배 금지는 교회를 어린애 취급하는 것이다.
예배를 중단하는 것은 교회가 판단할 일이다. 위험하면 교회가 자체적으로 모임을 중단한다. 그런데 우한 코로나19가 정부의 주장대로 예배당에 모이면 안 될 만큼 위험할까? 정부의 주장이 객관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일이 너무 많다. 세계의 수많은 나라가 중국발 입국을 금지하고 중국에 사과와 배상을 요구할 때, 우리나라는 입국을 허용하고 사과도 배상도 요구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중국 주석의 방한을 마치 영광이라고 생각하는 듯이 노력을 한다. 반면에 국민에게는 너무 야박하다. 강제 검사, 구상권청구… 정말 우리나라 정부가 맞는지, 정말 위험한 것인지 의심이 생기고, 조선의 중국 사대주의가 생각날 정도다. 이건 나만의 생각일까?
대통령이 직접 찾아가서 정은경 청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초유의 사건이라고 자랑스럽게 보도한 뉴스를 보니, 공무원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박수를 치고 사진을 찍었다. 위험하다고 방역수칙을 강요하면서 왜 자신들은 지키지 않을까? 특권의식일까? 자신들은 절대 안 걸리는 전능한 존재라고 착각한 걸까? 아니면 우한 코로나19가 별로 위험하지 않은 것일까? 또한 민노총이 정부의 집회불허명령에 굴복하지 않고 시위하고 경찰까지 폭행했다. 광화문 집회 참석자에게 했듯이 강제 검사하고, 벌금 부과하고 관련시설 폐쇄할까? 양치기 소년 생각나게 하는 행동을 하면 어느 국민이 믿고 따르겠는가? 안전거리 미확보하고 행사나 업무할 때는 방역복을 입으라. 정말 위험하다는 것을 몸소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보여주면 전 국민이 적극 협조할 것이다.
교회는 마스크 쓰고, 식사 하지 않아서 타 장소에 비해 가장 안전한데도 예배를 금지하면서, 다수가 밀접촉하는 진짜 위험한 전철과 버스 등에 대해서는 안전거리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전철과 버스에서는 확진자가 1명도 발생 안 하고, 인구의 20% 밖에 안 되는 교회에서는 절반(50%)이나 나왔다니, 이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기적이라고 해야 할까? 혹시, 확진자가 교회 성도이면 ‘교회발 감염’으로 분류하고, 교회 안 다니면 ‘깜깜이 감염’으로 분류하는 것일까? 그런데 통계 근거는 왜 안 밝힐까? 책임을 교회에 떠넘기려고 교회에 나쁜 이미지를 씌우고 모독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투명해야 한다. 그래야 불필요한 오해를 막을 수 있다. 그리고 교회를 판단력 없는 어린애 취급하고 복종을 강요하는 것은 모독이다.
3. 예배 방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다.
하나님은 인간을 예배자로 창조하시고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명령하셨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을 예배할 때 존재의 이유와 가치가 있다. 예배란 하나님을 온 우주만물의 창조주와 최고의 존재로, 그리고 자신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경배하는 것이다. 예배하지 않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하고, 자신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상실하는 것이며, 하나님과 단절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으로서 심판을 자초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을 예배하러 가는 것을 가로 막았던 애굽은 10가지 재앙을 받았고,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주신 땅에서 백성들을 우상숭배하게 했던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왕국은 멸망당했다.
그래서 믿음의 위인들은 예배금지에 굴복하지 않았다. 다니엘은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는 악법이 시행되었을 때 굴복하지 않고 기도로 예배했다. 다니엘의 친구들인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는 느부갓네살 왕에게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으면 불속에 넣겠다는 악한 위협을 받았으나 굴복하지 않고 불속에 던져지는 것을 선택했다. 다니엘과 친구들은 자신들의 주인은 피조물이 아닌, 창조주 하나님이신 것과 자신들은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존재임을 분명히 알고 믿었기 때문에 악법에 굴복하지 않은 것이다.
4. 초대교회는 핍박 때도 모여서 예배드렸다.
네로 황제는 로마시의 화재로 인한 비난을 피하기 위해 기독교인들이 불을 질렀다고 거짓말을 하고 핍박했다. 이후에도 로마제국은 교회 예배의 성찬식을 사람의 살과 피를 먹는 식인 행위라고 악의적인 루머를 퍼트려서 사회의 비난의 대상을 만들고 죽였다. 초대교회는 이와 같은 핍박으로 좋은 직장과 편안한 집 그리고 생명을 빼앗길지언정 예배를 포기하지 않았다. 가정 예배당을 빼앗겼을 때는 카타콤 예배당에 모여서 예배드렸다.
초대교회가 예배에 집착한다는 오해를 받을 정도로 예배드린 이유는 무엇일까? 예수님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전도하러 오셨다(막1:38). 또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러오셨다(요4:23-24). 즉 전도는 죄인을 구원하고 영원히 하나님께 예배드릴 참된 예배자를 찾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구원받은 자들의 공동체임과 교회가 탄생 초기부터 열심히 예배드린 이유를 알게 해준다. 그래서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매일 성전에 모였다(행2:46). 한국교회도 부흥시기에는 성도들이 새벽예배와 금요철야예배에 열심히 모였는데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런 점을 종합해 볼 때, 교회당에 모여서 예배드려야 마땅하다. 또한 예배를 금지하는 것은 성도와 교회의 존재 가치를 상실하게 만드는 것이며,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예배 명령을 거역하라는 악법이자, 창조주 하나님께 대항하는 신성모독이다. 그리고 교회가 하나님이 아닌 피조물의 예배금지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배도이다. 박해시기에는 초대교회처럼 핍박을 피해서 가정, 광야, 카타콤(지하 도시) 등에 모여서라도 예배드려야 한다.
5. 성경을 왜곡하면 성도들이 죽는다.
온라인 예배의 현실은 예상했던 대로 절망적이다. 점점 예배 참여율이 떨어지고, 참여자의 경우도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 없이 설교만 시청하고, 이교회 저교회 서핑하는 성도도 있다. 신앙을 버리는 자도 증가하고 있다. 즉 온라인 예배는 처벌과 세상의 비난을 피할 수는 있지만 성도의 영혼이 죽게 방치하는 죄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주님은 뭐라고 하실까?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요 10:11-13)
각자의 자유가 있고 예배를 안 드리는 것보다는 드리는 것이 나으므로 원하는 성도에겐 온라인 예배를 지원하면 된다. 그러나 성경적 근거도 없는 비성경적인 비대면(온라인) 예배를 성경적이라고 하거나,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왜곡하면 안 된다. 성도들의 영혼이 죽는데 그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비대면 예배가 정당하다면 초대교회의 사도와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드리다가 발각되어 순교당할 일도 없었고, 앞으로 환난이 찾아와도 순교당할 일이 없다. 혼자 숨어서 드리면 무슨 위험이 있겠는가? 비대면 예배 예찬론자들은 혹시 초대교회와 사도들이 무지했다는 주장이라도 하려는가? 그건 모독이다.
6. 교회가 비난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예배금지가 언제 해제될지 모르지만, 해제가 될 경우 비대면 예배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라고 주장한 분들은 그때 무슨 말로 교회당에 와서 예배드리라고 할 것인가? 지금 비난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좀 더 멀리 보시길 부탁드린다. 더불어, 온라인 예배 교회들은 정부에게 데이터 요금 지원 등 어떤 지원도 요구하지 말기를 부탁드린다. 하나님을 부자라고 말하는 교회가 세상을 도울지언정 세상에 손을 벌려서는 안 된다. 정말 민망스럽다.
비대면 예배 예찬론자들은 대통령님과 세상에서 칭찬을 받는다. 반대로 교회당에서 예배드리는 교회는 비난 받는다. 하지만, 비난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교회의 머리이신 우리 주 예수님도 비난받고 당시 사람들이 부끄럽게 여기던 십자가를 지셨으며 제자들도 다 그 길을 따라갔다. 따라서 예수님의 몸인 교회 역시 그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1:10)
한교연(대표 권태진 목사)이 예배당에서 예배드리다가 고발당한 교회와 공동대응하기로 한 것과, 감리회 서울연회(원성웅 감독)가 소속 교회들에게 주일 (공중)예배를 드리게 하고 문제 발생 시 교단이 공동 대처할 것을 천명하여, 한국교회가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예배당을 수호하는 교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 것에 감사드린다. 분명히 한국교회사에 의미 있게 기록될 것이다. 끝으로, 교회당에서 예배드리는 교회는 마스크 쓰고, 식사하지 말고 철저히 방역해서 본질이 아닌 문제로 비난받지 않도록 해주시길 부탁드린다.
김영태 목사(참빛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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