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 모세오경(Sana Pentateuch)은 1469년에 예멘의 옛 도시 사나에서 유대교 경전인 모세오경을 채색필사본으로 제작한 유명한 마소라(Masorah) 사본이다.
오늘날 예멘의 수도인 사나는 해발 2200m의 산악에 위치한 글자 그대로 '요새화 된 장소'이며 구시가지는 1986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고대 도시 중의 하나이다.
예멘의 구전에 의하면 사나는 노아의 아들인 셈(Shem)이 세운 도시라고도 한다. 그래서인지 632년에 이슬람화 되기 이전까지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유대교와 기독교의 중심지였다.
중세 성서화의 보고인 각종 펜타튜크(Pentateuch)는 구약성서 첫 머리의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등 모세에 의해 쓰여진 율법서 5권을 말하는데 유대교의 경전인 토라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사나 모세오경은 이슬람이 번창하던 15세기에 사나의 유대인들이 유대교 신앙 기초 위에 이슬람적 디자인으로 제작한 성경으로 유명하다.
이 오경의 특징은 우선 히브리어로 쓰여진 마소라 사본이라는 점이다.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서 원본은 자음으로만 표기됐기 때문에 올바른 발음을 낼 수 있도록 모음표시를 해 넣은 것이 마소라 사본이다.
특히 이 오경은 '난외 마소라'인데 이는 철자가 일정하지 않거나 발음이 다르게 들리는 것에 대해서는 성서 본문 여백에 주를 단 것이다.
그리고 이 모세오경은 종이에 쓴 구약사본(Codex)으로 예멘 스퀘어(사각) 서체로 오경을 쓰고 아름다운 채색의 카펫 페이지(Carpet Pages)를 포함한 여러 장의 성서화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 성서화는 특히 아름다운 아라베스크(arabesque)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슬람 예술에는 우상숭배 금지 교리에 따라 작품에 사람이나 동물을 그리거나 조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통상 아라비아풍이라고 불리는 아라베스크는 꽃과 나무, 물고기 등 자연현상에다 독특한 서체를 더하여 철저한 반복과 대칭을 이루는 기하학적인 디자인을 통해 신앙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점이 특이하다.
우리나라에도 인동초 문양이나 당초문, 단청, 그리고 전통가옥의 문살 등 아라베스크를 모티브로 한 디자인이 많은데 이는 당나라를 통해서 이슬람 문화권에서 들어온 것이다.
그림에서 보는 이 아름다운 카펫페이지는 창세기의 천지창조와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을 주제로 한 것이다. 큰 원형의 내부에는 여섯 개의 별을 그린 작은 원형이 있고 여백의 삼각형 부분에는 아라베스크 문양이 차 있는데 작은 원은 전체적으로 보면 붉은 해를 상징한 것이기도 하다.
두 원형 사이에는 다섯 쌍의 물고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거나 등을 맞대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바다가 있다. 그리고 바다 바깥에는 산 모양의 땅이 아래위로 맞물려 있으며 땅의 옆 공간에도 아라베스크 문양으로 가득 차 있다. 아라베스크 문양의 색깔을 장밋빛, 분홍 그리고 어두운 초록과 청색을 사용하여 꽃과 잎과 줄기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아래쪽 바닥에는 밧줄 문양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이 그림에서 중요한 점은 별과 산과 물고기 그림의 모든 디자인은 시편 119편과 121편의 구절들을 히브리어로 작게 쓴 글씨로 형상화하였다는 점이다.
창세기 메뉴스크립트에 시편을 쓴 것은 그 내용이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편 121:1~2)에서 보는 바와 같이 천지창조를 주제로 한 시편이기 때문이다.
카펫페이지는 메디발시대에 성서의 첫 장이나 중요위치에 성서 내용을 함축하는 그림 페이지를 말하는데 이슬람의 양탄자같이 현란한 색채와 힘차게 뻗어가는 선, 복합적이면서도 기하학적인 서체와 문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Universe, 만유)을 주제로 한 이 그림에 대해 <히브리채색화>의 저자인 요셉 구트만(Joshep Gutmann)은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다음과 같은 시편의 한 구절을 읽는 것 같다고 하였다.
"땅의 기초를 두사 영원히 요동치 않게 하셨나이다. 옷으로 덮음같이 땅을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시104:5~6)
■ 강정훈 교수는…
강정훈 교수는 1969년 제7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해 뉴욕 총영사관 영사(1985~1989)를 지냈다. 이후 조달청 외자국장, 시설국장(1989~1994), 조달청 차장(1994~1997) 등을 지내고 1997~1999년까지 조달청장을 역임했다.
행정학박사(연세대·서울대 행정대학원·성균관대학원)로 성균관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2004~2005), 2003년부터 현재까지는 신성대학교 초빙교수를 맡고 있다. 또 (사)세계기업경영개발원 회장(2003~2008)을 역임하기도 했다.
미암교회(예장 통합) 장로이기도 한 강 교수는 1992년 성서화전시회를 개최했으며 1994년에는 기독교잡지 '새가정'에 1년 2개월간 성서화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했다.
그는 35년간 중세의 성서화 자료와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의 저서를 모으고 있다. 그 중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 저서 및 자료 675점은 숭실대 학국기독교박물관에 2011년 기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