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일만큼 가르침과 훈련이 많이 필요한 일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 예수님을 위해 사는 것, 사랑과 소망과 믿음으로 사는 것, 인내와 온유함으로 사는 것, 희생적으로 그리고 접대하며 사는 것, 자녀 그리고 부모와 함께 사는 것, 존엄성과 기쁨을 가지고 사는 것. 이러한 삶에 대해 예수님보다 더 쉽게, 더 가까이에서, 더 탁월하게 가르쳐 줄 수 있는 분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요일마다 이 예배당으로 돌아와서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우리 삶의 모든 구체적인 것들을 살아 내는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 유진 피터슨, <사복음서 설교>
유월절 식사 자리에 모인 제자들은 예수님이 새로운 왕국을 이루면 그 왕국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우편에 앉을까? 좌편에 앉을까? 끝자리에 앉게 되면 어떻게 하나?’ 서로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식탁에서 내려와 겉옷을 벗고, 수건을 두르고, 무릎을 꿇고 제자들에게 안수를 시작했습니다. 그 안수는 머리가 아닌 제자들의 발에 한 안수였습니다. 구약의 모든 안수는 머리에 이루어졌습니다. 구약의 율법을 보면 왕, 선지자, 제사장을 세울 때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이것은 지도자에게 하나님의 권위를 부여한다는 일종의 인치심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본문에서 새로운 안수식을 보여주십니다. 머리에 안수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발에 안수하여 그들을 사도로 세우십니다.
- 김경환, <다시, 사랑의 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살아가실 때에는 우리와 동일하게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고난이 만약 악에 불과하기만 하다면 예수님이 그 고난에 무참히 밟히실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 1:2)와 같은 구절이 있어서도 안 되지요.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와 같이 도리어 고난이 유익할 때도 있는 것처럼 묘사하기도 합니다. 바울은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에 있던 그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행 14:22)이라고 했습니다.
- 전재훈, <오히려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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