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대홍수가 다가오고 있음을 보지 못했다”(23쪽). ‘베네딕트 옵션’이라는 책의 첫 문장이다. 이 책은 가까운 미래에서 온 책이다. 이미 대홍수가 휩쓸고 간 미국, 서구의 교회의 잔재들을 바라보며, 황량하고 낯선 벌판에서 서서 쓴 책이다. 이제 서구 교회는 어디로 어떻게 가야하는가?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과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하다고 믿는 저자가 느끼는 당혹감은 다음의 문장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성적(性的) 사안들에 대해 정통적이고 성경적인 기독교적 입장을 표방하는 일은 이제 참을 수 없는 편견의 증거로 간주된다.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은 완패했다. 우리는 새로운 나라에 살게 되었다.”(18쪽).
그래서 이 책의 부제는, ‘탈기독교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선택’이다. 서구는 ‘크리스텐뎀’(Christendom), 곧, 기독교세계였다. 그리고 지금은 ‘재(再)이교도화’된 사회이다. 이제 교회는, 탈기독교화된, 다시 이교도화된 사회 속에서 ‘소수’로 살아간다. 역전된 것이다. 그들은 성경의 가르침과 반대되는 정치, 문화, 사회적 힘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다. 이런 일은 어떻게 일어났을까?
저자 로드 드레허(Rod Dreher)는, 오늘 날 서구 기독교 사회를 붕괴시킨 그 ‘대홍수’의 근원지를 찾아간다. 중세 이후로 서구 사회 속에서 기독교가 붕괴되기 시작한 결정적인 사상적, 사회, 문화, 정치적 기점들을 정리한다. 지난 700여년에 걸쳐 ‘서구 문명을 흔들고 선조들의 신앙을 빼앗아 버린’ 다섯 개의 획기적 사건들이다.
14세기의 ‘초월적 세계와 물질적 세계의 분리’, 16세기의 ‘종교개혁으로 인한 종교적 권위의 붕괴’, 18세기의 ‘이성(reason)의 종교, 신앙의 사적(private) 영역으로의 후퇴, 계몽주의’, 19-20세기, ‘자본주의의 성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흔들리는 서구 기독교를 강타한 쓰나미로, 1960년 이후 현재까지 세계를 휩쓸고 있는 ‘성 혁명’(gender revolution)을 지목한다:
“이제 우리는 기독교에 재앙이나 다름없는 ‘성 혁명’의 고개를 넘었다. 그것은 성(性)과 인간 인격에 대한 기독교 교리의 핵심에 근접한 부분을 강타했고, 사회와 가정과 인간 본성에 대한 기독교의 근본 이해를 뒤집었다. 기독교와 성 혁명 사이에는 절대로 평화가 있을 수 없다. 그 둘은 철저하게 반대되기 때문이다. 성 혁명이 진전함에 따라 기독교는 후퇴해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이 가능하리라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그래 왔다”(305쪽).
‘훨씬 빠른 속도로’ 그리고 ‘절대로 평화가 있을 수 없다’는 표현에 눈길이 간다. 정말이지 그렇게 빨랐으면 좋겠지도 않고, 평화가 없다고 믿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저자와 저자의 서구 교회는 이미 그 대홍수가 지난 폐허 위에 서 있다. 그는 거기서 남아 있는 교회들, 기독교 전통에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성 베네딕트’의 수도원적 가르침과 영성, 그 삶을 대중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소수로서, 변방에서, 이미 이교도화된 사회를 바꿀 수 없다는 자각을 받아들이며, 그 이전의 ‘크리스텐뎀’으로 돌아가려는 불가능한 환상보다는, 이 거대한 물결을 타고 가는 '작은 방주'를 만들어보겠다는 것이다.
확실히, 이 책이 한국교회에 던지는 바의 경고가 있다. 만일, ‘성 혁명’이 서구 기독교를 붕괴시킨 또 다른 세속주의 혁명이라면, 한국교회는 이를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지만, 일부 보수 교회는 그 동안 ‘동성애, 성정체성, 성적지향’의 문제를 그 배후에 ‘맑시즘(marxism), 공산주의가 서 있다고 지목함으로써, 한 동안 ‘성정체성’ 문제를 ‘좌-우의 이념대립’의 구도 속에서 다루었다. 그것은 대체로 패착이었다. 이미 철 지난 ‘이념 논쟁’ 속에서 ‘성정체성’의 문제를 다루면, 한국 사회 일반의 지지와 동의를 얻기 어려운 것이 거의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정체성’의 문제가 단지 성도덕에 관련된 문제가 아님을 알렸다는 점에서, 그리고 보수교회를 각성시켰다는 점에서는 일부 성과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성정체성’을 앞세운 ‘성 혁명’의 대홍수는, 차별, 평등, 인권의 문제와 결부되어 다시 거세게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차별, 평등, 인권의 문제가 ‘성 혁명’의 본질은 아니다. 저자의 말이 맞는다면, ‘성 혁명’의 문제는 그 본질 상, ‘세계관’의 문제이고, ‘실재(Reality)를 보는 관점’, 곧 ‘형이상학적’ 도전이다. 성과 육체, 결혼과 가정, 공동체와 세계에 관해 성경이 제시하는 '성경적 세계관', '성경적 실재관'에 대한 '형이상학적' 도전인 셈이다.
한국 사회에서, 남녀 간의 성평등은 분명히 시급히 다루어져야하는 문제이다. 성차별이나, 특히, 여성이 겪어야 하는 차별과 위험은 지속적으로 제거되어야 한다. 아동이나 청소년의 성착취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성인처럼 자신을 보호하거나 제대로 대변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들은, ‘성적지향’의 문제처럼 난해하지 않다. 성경의 가르침은 차치하고, 상식과 양심의 판단이 명확하게 내려진다. 교회는 이런 문제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지지를 보내왔고, 보내야 한다. 한국교회의 역사에서, 특별히, 일제강점기 시대와 해방 이후 근대사에서, 한국교회만큼 남녀평등과 여성의 인권, 아동의 인권 신장에 기여한 집단도 찾기 어렵지 않은가.
다시 말해서, ‘성정체성’의 문제가 ‘성 혁명’이라는 차원을 배경으로 갖고 있는 것이 맞는다면, 교회는 이 문제를, 공산주의나 이념뿐 아니라, 차별, 인권, 평등의 문제와도 분리해서 다룰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문제는, ‘차별, 평등,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종교, 사상, 언론의 자유’의 문제라는 점을 명확히 할 수 있다. ‘성정체성, 성적지향에 대한 자기결정권에 대해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자유’에 속한다면, ‘그것에 대한 종교, 사상, 교육, 언론의 자유’ 역시 ‘자유’에 속한다. 그래서 ‘자유’라는 헌법적 권리 안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지 고민해볼 수 있다.
정말, 우리에게 밀려오는 ‘동성애, 성정체성’의 문제는, 서구 교회를 붕괴시킨 대홍수일까? 어떤 사람들은, 이미 그 대홍수는 밀려왔고 오고 있고 한국교회는 그 홍수에 곧 삼키고 말 것이라고 내다본다. 다른 사람들은, 세계에서 오직 한국교회만이 살아남았고, 우리는 특별히 선택받은 백성이므로,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 맞을까?
한 가지, 한국사회는 서구사회와 그 체질과 구성에 있어 다르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동양적 집단주의 문화 전통과 서구 근대화, 현대화, 후기현대화 전통이 짬뽕처럼, 혹은 겹겹이 쌓인 지층(地層)처럼 뒤섞이고 겹쳐있다. 그래서 서구 사회 속에 놓인 서구 교회와 한국 사회 속에 놓인 한국 교회를 단순 비교할 수가 없다. 이것이 서구에서 무작정 수입해다 쓰는 신학과 설교와 교회론이 한국교회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이, 최근의 코로나19가 한국사회에서는 파괴력을 발휘하지 못한 이유일 수도 있다. 개인주의와 집단주의가 적당히(?)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서구의 마스크를 잘 쓰지 않는 개인주의적 취향이나, 코로나19 확진자를 추적하기 위한 개인정보를 거부하는 개인주의적 사회, 문화적 특징과도 맞물리는 현상이다. 마찬가지로, 개인주의가 강한 서구 사회에서 ‘성적지향’은 개인의 권리로 인식되기 쉽다. 그것이 공동체, 가정, 사회, 우주론의 차원에서 생각되기 이전에, 개인이 자기 몸에 대해 갖는 권리로 인식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공동체적인 반발이 더 크게 일어날 소지가 많은 집단문화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 그러니, 잘 모른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성 혁명’은 한국에서도 성공할까? 그것은 어쩌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세대’를 위해 ‘교회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새로운 세대는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도 변할 것이다. 교회가 어떻게 하느냐, 그것이 우리에게 맡겨진 책임일 것이다. 한 때 황금기를 누리며 은혜와 축복을 누리던 한국교회는, 수많은 과오와 함께 상처받은 한국교회는, 우리는, 다가오는 세대에게, 이 사회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개인적으로, 나는 이 책, ‘베네딕트 옵션’(‘Benedict Option)이 한국에서 팔리지 않는 책이 되기를 기도한다(이종인 옮김/배덕만 해설, IVP, 2017). 그런 사회, 그런 교회의 시대로 들어가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한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더구나 이 책이 권하는 내용들은, 지금도 얼마든지 탐구하고 묵상하고 실천해야 하는, ‘세상 속의 교회’를 위한 급진적이지만 전통적인, 절실한 제안이기 때문이다.
채영삼 교수(백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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