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당국과 전문가들은 최근에 발생한 일련의 '묻지마'식 범죄나 성폭력 등 강력범죄에 대해 우리 사회가 함께 대응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경쟁지향적인 사회에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들, 이 중에서 현 상황에서 잃을 것이 없는 '은둔형 외톨이'들이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아 주변의 관심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 어려운 환경에 스트레스…'소외'도 문제 = 전문가들은 26일 최근 묻지마 범죄가 잇따라 발생한 배경 중 하나로 경쟁 지향적인 사회, 그 속에서 '소외'를 꼽고 있다.
이 같은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통상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란 경우가 많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기 침체나 양극화로 경제적으로 매우 열악한 사례가 많고, 이에 따라 주변 사람들과 아예 연락을 끊고 지내는 경우도 있다.
즉 타의에 의한 왕따 혹은 외톨이가 돼 정상적인 사고방식과 점차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불만족스러운 여건을 스스로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도 있다. 이 과정에서 우울증을 앓거나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많다.
여의도 칼부림 사건 피의자 김모(29)씨는 전과는 없었지만 연이은 퇴직에 이어 신용불량자로까지 전락한 뒤 직업을 구하지 못해 홀로 고시원에서 경제적으로 매우 어렵게 생활하고 있었다.
의정부역 흉기 상해 사건의 피의자 유모(39)씨도 전과는 없었지만 주거가 분명치 않고 일용직 노동으로 생계를 간신히 이어가고 있었다.
광진구 부녀자 강간 살인 사건의 피의자 서모(43)씨나 수원 가정집 살인사건의 강모(39)씨 역시 주거가 불분명하고 제대로 된 직업을 갖고 있지 않았다.
경찰은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학대받거나 무관심 속에 자란 아이들이 정서적인 의지 대상이 없는 가운데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이혼이나 가정불화, 해고나 실직 등 갑작스러운 사건을 겪으면서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하고 있다.
표창원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 같은 강력범죄의 원인은 피의자가 살아오면서 느낀 좌절이고 분노의 대상은 사회 전체, 모든 사람"이라면서 "우리 사회가 대단히 갈등적, 경쟁적, 적대적이 되면서 2000년대 이후 기물 파손, 연쇄방화 등 불특정 다수를 향해 분노를 드러내는 사건이 크게 늘었다"고 지적했다.
◇ "소통이 중요"…범정부 장기대책 필요 = 경찰은 전의경 부대나 기동대 등을 민생 현장에 최대한 투입해 범죄 의지를 사전 차단한다는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할 때에는 경찰 장구나 테이저건(전기총) 등 장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현장에서 범인을 제압한다는 원칙도 내놨다.
성폭력 및 강력범죄 우범자에 대한 일제 점검에 나섬과 동시에 중기적으로는 800여명 규모의 성폭력·강력범죄 우범자 감시·감독팀을 신설해 3만7천여명에 달하는 우범자를 전담 감시하는 대책도 추진 중이다.
하지만 경찰의 이 같은 대책이 임시방편이 될 수 있을 뿐 날로 흉포해지는 강력 범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전망이 많다. 범정부적인 장기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범죄 원인이 사회 계층의 양극화에서 출발하는 만큼 생활고에 시달리는 극빈층이나 실업자에 대한 갱생 프로그램이 강화돼야 할 필요성이 우선 제기된다.
가정 불화나 경제적 어려움에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고 외톨이로 전락하는 계층이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각종 상담·지원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묻지마 식 범죄를 막으려면 정신질환과 관련된 주기적인 검진 체계를 구축할 필요성도 있다. 교정 당국의 교화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고위험 우범자에 대한 관리 체계도 좀 더 촘촘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리 사회가 함께 나서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서울대병원 정신과 강도형 교수는 "내가 원하는 게 이뤄지지 않아도 과정의 중요성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 사회가 이런 과정의 중요성을 등한시한다"면서 "소통을 위해 과정의 중요성을 인식하도록 해야 하고 살아야 할 가치도 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표창원 교수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분명 이상징후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문제를 안은 사람이 상담이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경제적인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고 해법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