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이 한반도의 평화를 다짐한 4·27 판문점 선언이 2주년을 맞았다. 판문점 선언을 계기로 군사적 긴장은 완화되고 평화 분위기가 고조되는 듯했지만 북미 비핵화 협상이 답보 상태에 놓이면서 남북 관계 역시 경색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판문점 선언은 2018년 4월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후 발표됐다. 3개장 13개 조항으로 이뤄진 판문점 선언 주요 내용은 핵 없는 한반도 실현, 연내 종전 선언,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성 설치, 이산가족 상봉 등이었다.
분단 이래 2번 밖에 열리지 않았던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 선언' 이후 2차례나 더 열렸다. 이후 같은 해 6월과 이듬해 2월 싱가포르와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것 역시 판문점 선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아울러 북한은 군사 도발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핵 실험과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판문점 선언 이후부터 현재까지 자제하고 있다. 남북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안팎에서의 군사적 긴장 역시 판문점 선언을 기점으로 상당히 완화됐다는 게 군 당국의 설명이다.
하지만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역사적인 이정표가 될 것으로 전망됐던 판문점 선언은 2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는 많은 부문에서 본래 취지가 퇴색했다는 평이 많다.
판문점 선언에 따라 쌍방 당국자가 상주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개성에 설치되긴 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지난 1월 폐쇄됐다. 남북 정상은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 적십자회담을 자주 개최하기로 했으나 2018년 8월 금강산 행사 후 이산가족 상봉은 재개되지 않고 있다.
같은 해 9·19 평양 정상회담에서 상설면회소 개소, 화상 상봉, 영상 편지 교환 등이 합의됐지만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노딜 여파로 실행이 되지 않고 있다. 나아가 북한은 지난해 연말부터 금강산에 있는 시설을 철거하라고 우리 측에 요구하는 등 이산가족 상봉에 더이상 관심이 없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판문점 선언에 담겼던 체육 분야 남북 협력 역시 지금은 중단되다시피 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당시 개회식과 폐회식 모두 남북한 선수단이 공동 입장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됐으나 이후 흐름이 끊겼다. 게다가 북한의 비협조적 태도 탓에 남북한 월드컵 축구 예선 생중계가 불발되는 등 불협화음이 지속되고 있다.
판문점 선언에 포함됐던 동해선·경의선 철도·도로 연결 사업은 진척이 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최근 동해북부선 강릉∼제진 철도건설사업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북한이 이에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군사 분야 협력의 경우 북한의 잦은 도발 탓에 본래 취지가 퇴색하고 있다. 비무장지대 안의 감시초소(GP) 철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등 성과가 있었지만 그 외에는 진척이 매우 더디거나 아예 중단됐다.
판문점 선언에는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담겼으나 북한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신형 전술 지대지 미사일인 북한판 에이태큼스(ATACMS), 초대형 방사포, 순항미사일 등을 잇따라 발사하며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고 있다.
북한은 2017년 9월 이후 핵실험을 하지는 않고 있지만 남북간 합의 사항이었던 동창리 엔진시험장 폐기 약속을 어겼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동창리 시험장에서 엔진 시험을 재개하면서 남북간 합의를 사실상 파기했다.
아울러 북한은 연평도 포격전 9주기인 지난해 11월23일 서해 창린도에서 포 사격 훈련을 실시하면서 9·19 군사합의를 위반했다. 북한은 비무장지대 유해 공동 발굴 사업에도 동참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판문점 선언 후 2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남북관계 진전을 확인하기 어렵다며 안타까운 반응을 보였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2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보면 진전된 게 별로 없다. 북한 핵 문제도 전혀 진전이 없고 오히려 북한의 핵·미사일 역량이 더 강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며 "외교적으로 핵 문제를 푸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고 평했다.
문 센터장은 "남북관계가 제자리걸음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핵문제"라며 "북핵 문제에 진전이 없으니 대북 제재가 안 풀리고, 제재가 살아있으니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 교류 협력을 합의해도 실천이 어렵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조건부 비핵화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본다. 북한은 판문점 선언 등 여러 계기를 통해 비핵화 조건으로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정 보장 등 2가지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 체제를 위협하는 한미 동맹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체제 안정을 위협하는 대북 제재 역시 유지 내지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결국 2가지 조건 모두 충족되지 않자 북한이 판문점 선언 등 그간의 합의를 이행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가 나서서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거나 국제사회가 추진하는 대북 제재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이 때문에 판문점 선언의 성과를 되살리고 남북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선 대북 압박을 통해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게 일부 전문가의 진단이다.
문 센터장은 "남북관계는 남북정상회담 몇 번으로 발전되는 게 아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생각하는 남북 관계 발전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는 게 입증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남북관계 발전은 쉽지 않다. 북한의 잘못된 인식과 태도를 바꾸기 위한 한미 공조와 국제사회의 공조가 중요하다. 우리 국민의 의지 역시 일치가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북한을 비핵화로 이끌어내려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지금처럼 북한이 제재의 허점을 활용해 불법 거래를 하고 중국이 뒷문을 열어주고 이러면 안 된다"며 "김정은 위원장이 핵을 내려놓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을 느껴야하는데 미국도 중국도 지금은 그럴 여력 없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박대로 기자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