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이후부터 영국의 국교회(the Church of England)인 성공회(Anglican Church)는 종교적 열광에 대해 의심스러운 시선을 가져 왔다. 영국 전역에 퍼져 있는 국교회주의(Anglicanism)는 사회적, 민족적 갈등을 불러 일으키는 종교적 광신에 대한 보호막 구실을 해 왔다. 하지만 영국 역사에서 열정적인 신앙심의 확산은 종종 국교회에 영향을 주기도 했는데, 현재의 영국이 바로 그러한 시점이다.
지금 영국 국교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수는 감소하고 있지만, 신앙심이 깊은 신도들의 비율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영국의 종교 통계 전문가 피터 브라이어리(Peter Brierley)는 영국 국교회 신도들 중 40%가 복음주의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데, 이 비율은 지난 1989년 26%에서 증가한 수치라고 밝혔다. 영국 국교회의 신도수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복음주의 신도들의 증가는 큰 흐름을 거스르는 현상인 듯하다. 10년 전 영국 국교회 예배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이는 1백만 명 정도였으며, 현재는 약 80만 명 정도이고, 2020년에는 68만 명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영국에서 미지근한 신앙인은 줄어들고 있고, 열정적인 신도들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영국 국교회에서 복음주의 성향을 가진 교구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영국 사회에서 자신들의 실제 규모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국의 수도 런던의 북동부에 있는 비숍스게이트(Bishopsgate) 지역에 위치한 성(聖) 헬렌(St. Helen) 교회는 런던의 금융가에서 일하는 이들을 위한 선교를 하고 있으며, 다른 지역에도 10개 넘는 교회들을 개척했다. 런던의 다른 지역인 브롬톤(Brompton)에 위치한 성삼위(Holy Trinity) 교회는 알파 코스(Alpha course)라는 은사주의적(charismatic) 기독교를 확산시켰다. 랭햄 플레이스(Langham Place)에 있는 모든 영혼(All Souls) 교회도 다양한 방법으로 복음주의를 확산시키고 있다. 전통적인 성공회 교회들이 명목상의 교인들에게 결혼식과 세례식 그리고 장례식을 집례하는 것과 달리 이들 교회들은 이러한 사역들을 잘하고 있지 않다.
영국 국교회는 주일 예배 출석 교인들의 감소는 주일이 아닌 주중에 교회에 오는 신도들의 수와 일터나 휴양지에서 벌어지는 신선한 방식의 사역에 참가하는 사람들로 상쇄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성공회 교단은 안수를 받는 이들이 매년 500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성공회에서 안수를 받은 이들은 515명이며, 이 중 108명이 30세 이하인데, 이는 2009년의 74명에서 증가한 수치이다. 지난 2010년 프랑스에서 천주교 사제 서품을 받은 이들이 불과 83명이라는 사실과 비교하면 500명은 상당히 큰 규모이다.
영국 국교회의 성직자들의 1/3이 복음주의자들이다. 옥스퍼드 대학교(Oxford University)에 있는 영국 국교회 신학교 위클리프 홀(Wycliffe Hall)의 신학생 수도 증가하고 있다. 이 신학교는 보수 복음주의 성향을 띠고 있으며 미국의 기독교와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영국 국교회의 수장인 로완 윌리암스(Rowan Williams) 대주교(Archbishop)가 있는 런던 북부의 오크 힐(Oak Hill) 신학교도 마찬가지이다.
영국 국교회의 수장으로서 윌리암스 대주교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국교회 내의 자유주의자들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윌리암스 대주교는 여성 안수 문제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으며, 영국 정부가 동성애자의 결혼을 허용한 것에 반대했는데, 이 2가지는 모두 자유주의자들이 찬성하는 사항이다. 하지만 영국 국교회가 여성 주교(bishop)을 갖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다만 동료 성직자들과 신도들이 여성 성직자에 대해 얼마나 자비로운 태도를 보일 것인가 하는 것이 관심 사항이다. 아마도 보수주의자들이 여성 성직자에게 어려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영국 국교회의 많은 젊은 성직자들은, 사회적 문제가 치열하게 부딪치는 도시 빈민가나, 성직자들을 존중하고 신학적인 문제를 부차적으로 치부하는 안락한 교구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대형 복음주의 교회에서 사역하기를 원하고 있다.
영국의 자유주의 성향이 많은 종교 연구소 에클레시아(Ekklesia)의 신학자 사이몬 바로우(Simon Barrow)는, 다른 기독교 교단은 물론 천주교인이나 정교회 신도들도 함께 하기를 바라는 알파 코스의 창시자로부터 교리적 방어벽을 높게 세우고 분파적인 성향을 띠는 기독교인들까지 포함시킨 영국 국교회의 복음주의 운동은 다양하다고 말했다. 성공회주의처럼 복음주의(Evangelicalism)도 아주 많은 다양성을 갖고 있다. 편협함을 강하게 거부하는 영국인들의 심성이 열정적인 종교인들의 마음에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인 듯하다.
The Economist, 한국선교연구원(krim.org) 파발마 80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