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 성착취 동영상을 텔레그램에 유포한 '박사방' 조주빈(25) 등 일명 'n번방 사건'에 대한 피해자 규모가 100명 대로 늘어난 가운데, 가해자 처벌에 대한 폭발적 관심에 비해 피해자 지원에 대한 논의는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4일일 경찰청에 따르면 성착취물 피해자는 지난 2일 기준으로 10대 26명, 20대 17명, 30대 8명, 40대 1명, 연령 미상 51명 등 103명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성폭력상담소 여성주의상담팀의 노선이 활동가는 "텔레그램 방의 피해 여성들은 오랜 기간 '신고하면 신상을 퍼뜨리겠다',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등의 협박을 받아왔다"며, "가해자에게 자신의 신상정보가 있음을 우려하는 피해자들에게는 가해자를 강하게 처벌하자는 여론이 강한 현재 상황에서도 신상 노출의 위협이 현재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가 신고를 적극적으로 할 수 없는 상황 같다"며 "실제로 텔레그램 피해자라고 신고한 이들이 많지 않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가해자를 처벌하자는 목소리만큼 피해자를 어떻게 보호할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실제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난달 23일 올라온 'N번방 피해자들을 보호해주세요'라는 청원 글에는 열흘째인 지난 3일 오후 4시30분 기준 9만2871명이 동의했다. 관심이 빈약한 수준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n번방 운영자나 가입자의 신상공개를 요구하는 청원 글 동의자 수가 200만명을 넘긴 것과 비교해서는 초라하다.
이 청원의 게시자는 "처벌에 대한 청원은 빠르게 올라오고 동의도 받고 있지만 피해자 보호에 대한 청원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글을 시작했다.
이어 "이번 사건의 피해자에는 미성년자가 아주 많다"며 "행복해야 할 나이에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갈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찢어진다"고 적었다.
게시자는 이에 피해자들을 위한 확실한 피해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n번방의 가입비 등으로 생겨난 수익을 압수하거나 세금의 일부로 상담치료와 일상 적응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것이다.
피해자 보호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경찰청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본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피해자 지원 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경찰은 수사·삭제 지원·심리 지원·법률 지원·경제적 지원 등으로 구분해 대책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피해 영상물은 담당 수사관 외 제3자에게 공개하지 않음 ▲조사과정에 가족·상담원 배석 가능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피해 영상물에 대한 삭제 지원 및 재유포 방지와 24시간 모니터링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서 피해 영상물 심의 후 접속 차단 등 조치 ▲경찰관서별 '피해자 전담요원' 지정 ▲여성긴급전화·성폭력상담소 등에서 심리상담 지원 등이 담겼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대책들이 실제 효과가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유승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사무국장 "지금 나오는 대책은 사실 새로운 게 별로 없다"면서 "방심위가 심의를 빨리 처리한다는 등의 내용은 이전부터 논의된 것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n번방 때문에 다시 보도가 돼 새로운 느낌이 드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선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상담이나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이들은 보다 실효성 높은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유 사무국장은 "사이버 성폭력 같은 경우 수사부터 재판까지 기간이 오래 걸린다"면서 "피해자 지원 대책도 단기적인 게 아니고 중장기적인 피해자 지원이 이뤄질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가능성은 예산이나 자원 확보 등 가시적인 성과로 나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활동가도 "신고하더라도 범죄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안전과 비밀보장, 이런 것들이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신고자로 특정돼 다시 한번 피해자 신상이 유포되는 2차 피해에 대한 대책 마련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지원을 담당하는 기관이나 단체가 대체로 서울 등 수도권에 몰려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유 사무국장은 "저희 기관도 피해자가 경찰 조사를 받을 때 상담자가 동행하도록 하는데, 지방에서 피해자가 조사받을 때 상담자를 보내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때가 있다"며 "전국 차원에서 피해 지원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기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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