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박용국 기자] 헬렌켈러는 시각과 청각을 잃었음에도 작가로, 사회활동가로 활동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한 위대한 인물 중 하나다. 그러나 헬렌켈러가 그러한 삶을 살기까지는 일평생 그녀의 눈과 귀와 입이 되어준 설리반이 있었다. 한국에도 1만여 명의 헬렌켈러가 있다. 한국의 시청각장애인들은 그들에게 설리반이 되어 줄 일명 ‘헬렌켈러법’ 통과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밀알복지재단(이사장 홍정길)이 16일(월)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시청각장애인지원법(이하 헬렌켈러법) 제정’ 촉구선언을 발표하고 1만8천여 명의 시민서명을 국회에 전달했다.
이날 시청각장애인당사자와 장애계 인사 등 10여명은 지난 2월 이명수 의원(전 보건복지위원장)이 대표발의한 ‘헬렌켈러법’의 연내 제정 촉구를 주장했다.
’헬렌켈러법’은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중복으로 겪는 시청각장애인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사회통합을 지원하기 위한 법률안이다. 단일장애(시각, 청각)보다 일상에서 더 많은 제약을 겪기 때문에 별도의 법 제정이 필요하지만 국내에는 관련 제도나 지원이 전무한 상태다.
2017년 한국장애인개발원 연구자료에 따르면 시청각장애인 3명 중 1명이 정규교육조차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최근 2년 내 건강검진을 받지 못한 이들도 절반이 넘었다. 10명 중 7명은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국내 첫 시청각장애인지원센터인 ‘헬렌켈러센터’를 설립하고 시청각장애인 권리 옹호 활동을 펼쳐온 밀알복지재단은 장애인의 날이 있는 지난 4월부터 헬렌켈러법 제정 촉구 시민서명 운동을 진행해왔다.
밀알복지재단 정형석 상임대표는 “시청각장애인은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과는 다른 생활실태와 특성을 가지고 있어 일반 장애인에 비해 일상생활에서 도움의 필요 정도가 매우 높다”며 “무엇보다도 의사소통에 큰 어려움이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위한 제도 마련과 지원은 시청각장애인의 권리보장 차원에서 시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시청각장애인 당사자 손창환(49)씨는 “시청각장애는 단순히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문제를 떠나 세상과의 소통 자체가 단절돼 버리는 장애”라며 “적절한 지원제도가 마련된다면 우리도 충분히 사회에서 자신의 몫을 다하며 살 수 있다. 홀로 어둠 속을 헤매고 있을 전국의 시청각장애인들을 위해 속히 관련 법을 제정해 달라”고 주장했다.
이날 시민서명을 전달받은 김세연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은 “시청각장애인의 장애특성을 고려하면 현행 장애인복지법만으로는 제대로 된 지원이 어렵다는 주장에 깊이 공감한다”며 “당사자분들에겐 생존이 달린 문제인만큼 헬렌켈러법이 조속히 입법될 수 있도록 노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밀알복지재단은 헬렌켈러법이 통과될 때까지 온라인(helen.miral.org)과 오프라인을 통해 제정촉구 서명운동을 지속할 예정이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