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제 3회 방지일 선교신학 세미나가 6일 오후 4시 부터 장신대 세교협센터에서 개최됐다. 김영동 장신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세미나는 변창욱 장신대 교수, 설충수 숭실대 교수가 참여했다. 첫 번째로 변창욱 교수는 ‘천국대사(天國大使) 방지일 목사의 선교사상 연구’라는 제목으로 발제했다. 두 번째는 설충수 숭실대 교수가 '방지일 목사의 신앙동인, 이유택 목사의 신앙 연구'를 전했다.
먼저 변창욱 교수가 발제를 맡았다. 그는 “방지일 목사는(1911-2014) 한국장로교회 역사상 최초로 2대에 걸처 중국선교사로 사역했다”며 “1937년부터 추방당하는 1957년까지 방지일의 선교사역을 중심으로 그의 선교관을 조명하고자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방지일은 26세의 젊은 나이에 한국장로교의 첫 선교지인 산둥에 선교사로 파송됐다”며 “일본의 중국침탈,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의 전란 등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에 그는 사역을 묵묵히 감당했다”고 평가했다.
또 그는 “방지일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해야(딤후 4:2)’ 생명을 구원할 수 있다고 보았다”며 “그 때가 지나가면 그 생명은 구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하여, 그는 “하나님의 복음의 일꾼에게는 상대방이 복음을 수용하고 안 하고는 관계없이, 주신 말씀을 그대로 전할 책임만 있을 뿐”이라며 “방지일 선교사는 철저한 하나님 신앙과 환경에 상관하지 않는 충성된 자세, 기도와 성경묵상을 통한 영성 및 하나님 중심의 선교를 견고히 추진해 갔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방지일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눈물로 호소하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이루어 주신다고 믿었다”며 “그의 신앙은 하나님께 기도로 먼저 물어보고 그분의 동의를 얻고 지시를 받고 시키는 대로 순종하는 것”이라 밝혔다. 또 그는 “이런 영성이 뒷받침 되어 방지일은 선교지에서 대면한 영적 대결에서 선한 승리를 낳았다”고 전했다.
가령 그는 “방지일이 개척해 세운 중가와 교회를 3개월 비웠을 때가 있었는데, 교회 안에 ‘자유전도인’이라며 성령의 인도 운운하며 교인들을 미혹했던 이들이 들어왔다”며 “방지일은 ‘영의 불은 내리 붙은 것이므로 몽둥이질 한다면 불티는 튀어날 뿐이요, 영의 불로 세상 불을 꺼야 한다’고 만류하여 함께 기도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후 “교회는 3개월 후에 정상화 됐다”고 그는 전했다.
변창욱 교수에 의하면, 방지일은 그의 저서에서 “일본 패망 후 밀려드는 난민들을 돌보고, 중국 교인도 돌보고 한인 동포들 수백 수천 명을 돌보는데 감당할 수 없이 벅차고, 일은 수십 배로 늘어났지만 모든 일을 수행할 원동력은 바로 눈물의 기도의 힘”이라고 고백했다.
뿐만 아니라, 변창욱 교수는 “방지일 선교의 핵심은 말씀에서 힘을 공급받은 것”이라 설명했다. 그는 “방지일 선교사는 수많은 성경구절을 매일같이 외웠고, 그중 몇몇 성구는 매일 수십 번 수백 번씩 외우면서 살았다”며 방지일이 자주 외우던 성구 2구절을 소개했다. 하나는 고전 10:13로서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이다.
다른 하나는 출 14:13-14로서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이다. 이처럼 변 교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그의 삶은 선교에도 적용됐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방지일은 선교사들이 본국의 자원을 가지고 시혜(施惠)를 베풀 듯이 행하는 선교에서 벗어나, 현지인에게 받기도 하고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제안했다”며 “그는 중국에서 사역할 때 현지인들에게 많은 것을 물어보고 배우면서 선교했고, 그럴 때 선교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됐다고 증언했다”고 전했다. 다시 말해, 그는 “방지일 선교사는 ‘선교사가 현지인을 가르치려고만 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그들에게 배울 것은 배워야한다’”며 “그래야 현지인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상호 존중 한다”고 밝혔다.
이럴 때, 그는 “현지인들 가운데 예수를 구세주로 믿게 되는 복음역사가 일어나다”며 방지일 선교사의 조언을 전했다. 아울러 그는 “방지일은 현지인의 삶을 강압적으로 변화시키려는 태도는 지양돼야 하며, 그들의 문화와 습관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강조했다. 반면 그는 “방지일은 그 문화 가운데 잘못된 것을 죄로 인식시켜 속죄함을 받게 하는 것이 선교이므로 이 점에서는 결코 양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하여, 그는 “방지일 선교사는 종교 다원주의를 비판했다”고 밝혔다. 특히 변창욱 교수에 따르면, 방지일 선교사는 “모든 종교는 산꼭대기에서 만나면 같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절대로 사람은 스스로 올라갈 수 없고, 하나님이 우리를 산꼬대기로 데려가시기 위해 업으러 내려오신 것이다”고 전했다. 즉 변창욱 교수는 방지일 선교사의 말을 빌려, “일부 종교다원주의자들이 ‘정상(구원)에 이르는 길이 여럿 있다’는 주장은 전제부터 잘못됐다”며 “기독교는 인간들의 힘이나 노력으로 구원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종교가 아니며, 하나님이 직접 육신을 입고 이땅에 오셔서 범죄한 우리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우리를 등에 업고 올라가셨다는 것”이라 전했다.
한편, 그는 “방지일은 앞날이 탄탄히 보장된 젊은 목회자였지만, 총회의 부름에 주저하지 않고 모든 것을 내려놓아 선교지로 나간 ‘내려놓음’의 선교사”라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참 목자의 길을 걸어가셨다”고 소개했다. 또 그는 “방지일 선교사는 눈에 보이는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을 최선의 목표로 삼아, 현지인들의 영육간 필요를 채우는 선교정책을 펼쳤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그는 “1957년 방지일이 추방된 후에 20년 동안 중국 문화혁명의 혹독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지하교회와 신실한 사람들이 잔멸되지 않았다는 게 증거”라며 “방지일과 수많은 선교사들이 전파한 복음은 중국 땅에 거룩한 씨앗이 되고, 잘 심겨진 거룩한 그루터기였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방지일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 성과보다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살려고 애썼다”며 “그는 우리 모두에게 ‘일만 스승’이 아닌 ‘영적 아비’로 각인되어 있다”고 소개했다. 때문에 그는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히11:4)처럼, 방지일 선교사의 사역은 지금까지 교파를 넘어 한국선교사와 목회자들에게 모범과 교훈이 되고 있다”며 강연을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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