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 항공우주국(NASA) 항공연구 부문 최고 책임자(the Aeronautics Research Mission Directorate) 신재원 박사(53)를 만났다. 신 박사는 2008년 NASA 본부와 10개 산하 센터를 통틀어 20명으로 한정된 최고위층에 동양계로는 최초로 최고 책임자 자리에 올랐다. 굳이 직급으로 따지자면 국장과 부국장 바로 아래인 차관급.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30여년의 경력을 쌓고 은퇴하기 직전에 오른다는 책임자의 자리에 그는 40대 후반의 젊은 나이로 오른 것이다. 당시 주변에서는 그의 ‘빼어난 전문성’ ‘조직과 사람을 관리하는 능력’ ‘금전적 잡음이 없는 관리 능력’등을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하지만 신 박사가 꼽는 성공 요인은 다른 곳에 있다. 늘 교만해지지 않도록 자신를 치는 겸손을 연습하는 것이 그의 성공 요인이라면 요인이라는 신 박사. “도무지 될 수 없는 자리를 주시니까, 내가 뭘 잘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왔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전적 주권으로 주신 자리이고, 저에게는 너무나 선명하게 다가오는 사실”이라는 신 박사. 그의 성공, 리더십,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처음 항공우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초등학생 때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는 장면을 TV로 보면서 ‘인류가 참 대단한 일을 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어떻게 나사에 입사하게 됐나.
“대학 1학년 지도교수님이 미국 유학을 하시면서 NASA 휴스턴 존슨 스페이스 센터 견학을 가신 경험을 재미있게 말씀해 주신 적이 있다. 그때부터 NASA를 알게 됐다. 석박사로 비행기 연구를 하다 보니 자연히 나사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됐고, 졸업하면서 나사 센터 10군데에 모두 다 어플라이를 했는데 그 중 클리브랜드에 있는 나사에서 연락이 와서 1989년에 시작했다.”
-2008년에 나사 헤드쿼터 차관보인 최고 책임자가 되셨는데, 그 과정을 좀 들을 수 있을까.
2004년 클리브랜드 글렌리소스센터에 근무할 때, 지금 제 직책에 있는 빅터 레박(Victor Lebacqz)이라는 분이 방문하면 농담처럼 ‘너 언제 헤드쿼터로 올래?’라는 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헤드쿼터 고위직으로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치적인 끈이나 지원이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에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어느날 그 분으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워싱턴 DC에 오기 힘든 가족 상황이나 어려움이 있느냐’고 해서 그런 일은 없다고 답장을 보냈다. 그러자 한 달 뒤에 다시 연락이 와서는 자기를 보러 오라는 것이다. 알고보니 그 분이 이미 다 자리를 만들어놓고서 나를 부른 것이다. 그 때부터 그 분을 보조하는 데퓨티(Deputy) 즉 항공우주관련 총괄 부책임자로 일하게 됐다.
하지만 대선 후 행정부가 바뀌면서 보스였던 레박의 자리에 다른 사람이 임명됐다. 원래 책임자가 잘리면 함께 일하던 부책임자도 자동적으로 해고되는 것이 순서인데, 새로 온 책임자가 나사에 아는 사람이 많이 없던 차에 함께 3개월을 일하며 도와주는 기회가 생겼다. ‘3개월 정도 일해보고, 연말에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나랑 일을 못하겠다고 하면 그렇게만 이야기하라’고 제안했는데, 연말이 되자 계속 같이 일하자고 나를 붙들었다. 그리고 2008년 초에 그 분이 다른 정부 기관 총 책임자로 가면서 나를 꼭 이 자리에 안해주면 자기는 떠나기 어렵다고 당부를 했다고 한다.
-당시 기분은 어땠나.
“100% 하나님이 하신 일이란 생각이 들게 하셨다. 도무지 될 수 없는 자리를 주시니까 내가 뭘 잘했기 때문에 주셨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나님이 전적 주권적으로 주신 것이고, 그것이 너무나 명백하고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이 제일 감사하다.”
-항공우주부문 최고 책임자로서 하는 일은 어떤 건가?
차세대 비행기 기술 개발이 주 목적이다. 연 예산이 항공우주 파트만 5억7천만불정도다. 미국에서도 민간 항공(군사항공 아님) 연구를 하는 데가 있긴 하지만, 나사가 가장 주도적으로 하고 있다. 즉 전세계 민간 항공 연구를 주도하는 자리라 할 수 있다.
또 회사, 대학, 나사 안에 리서치 센터 등의 항공 연구를 총괄 지도한다. 앞으로 10~20년 미래를 내다보고 연구를 지시해야 하는 자리인 만큼 책임도 막중하다. 매년 성과 리뷰를 하고, 미국에 있는 회사 뿐 아니라 전세계 연구기관과도 협력 관계를 만든다. 국회 청문회를 통해 국가 예산을 따 와야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책임자로 있으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2008년 책임자가 되고 처음 항공우주국 예산을 위해 국회 청문회에 갔다.
청문회는 한번도 해보지 않은데다 본토 미국인이 아니라 말실수나 어눌한 대답을 하지는 않을까 해서 나사에서도 준비를 엄격하게 시켰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내 직급 다른 파트에 있는 사람들 보다 훨씬 잘한 것이다.
나는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에 왔기 때문에 네이티브 처럼 영어를 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국회나 백악관의 높은 사람들도 내가 설명을 하면 쉽게 알아듣는다. 말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는 것 같다. 그런 예가 너무 많다.
내가 여기서 일하는 동안 국회, 백악관, 협력 회사와의 관계가 좋아졌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책임자로 온 후로 항공우주국 항공연구 파트 예산이 450밀리언에서 570밀리언으로 늘어난 것도 괄목할 만한 성장이었다.
-어떻게 가능했나? 단지 말을 잘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셨다고 했는데 이 외에 다른 요인이 있을 것 같다.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 소중한 하나님의 창조물이란 것을 알고, 귀하게 보면 내가 겸손해 질 수 있다. 겸손한 마음으로 진지하게 대답하면 그 마음이 전달된다고 믿는다.
미국에서 살면서 가장 많이 느낀 것이 가식하지 않고 잘난 척 하지 않고 진실되게 대하면 아무리 나쁜 생각을 가지며 나를 대하는 사람에게도 그 마음이 전달된다는 것이다.
청문회를 할 때 국회의원들의 목적은 사실을 밝혀내는 데 있지만, 또 부족한 정부 예산을 조금이라도 깎아야 하니까 부정적으로 대하는 경우가 많다. 대처하는 방법이 여러가지가 있는데 ‘파워 플레이’라고 오히려 건방지게 ‘내가 전문가인데 내가 더 잘 안다’고 나가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 진실을 얘기하고 진실되게 대답을 하려고 하는 데 그 마음이 전달되는 것 같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 유혹도 많을 텐데, 어떤가.
맞다. 목이 꼿꼿해지는 유혹이 많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도무지 경계를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사람도 매일 되새기지 않으면 정말 힘들다. 내가 리더십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겸손이다. 가짜 겸손이 아닌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진짜 겸손. 결국 그것이 안되면 목이 꼿꼿해져서 실패하게 된다.
미국은 실력 위주 사회다. 그런데 그게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단점도 된다. 처음에는 실력이 있고 뛰어난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 들어왔는데 조금 지나면 무슨 부정을 행하거나 생각하지도 못했던 이상한 일을 해서 실패하는 경우들이 많다.
권력이 쥐약이다. 내가 잘나서 자격이 있어서 이런 자리에 왔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을 우습게 볼 수 밖에 없고, 자기보다 똑똑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결국 패망의 길로 들어서게 되더라.
-그런 유혹은 주로 어떻게 다스리는 편인가?
아직 나도 부족하지만 매일 하나님이 주신 자리라는 것을 알고 내 위치를 되새긴다. 이사야가 환상에서 하나님이 계신 성전에 들어갔을 때 문지방이 다 흔들리고 성전 안에 안개가 자욱할 정도로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그 광경을 떠올리는 걸 무척 좋아한다. 크신 하나님 앞에 우리의 위치를 깨달을 수록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되는 것 같다.
매일 아침마다 기도한다. ‘나를 땅에 납작 엎드리게 하셔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시라’고.
-하나님이 원하시는…이라고 했는데, 그 길이 어떤 길인지 발견했나.
사실 워싱턴에 와서 거의 2년 간 매일 이 기도를 했다. ‘저를 통해 뭔가 하시려고 하는게 있는 것 같은데, 이런 자리를 주셨으니까 그 뜻을 알려달라’고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03년에 하나님께서 나를 전격적으로 만나주셨고, 성경 말씀이 꿀처럼 달아서 출장을 가도 매일 아침 성경을 읽는 넘치는 기쁨 속에서 살고 있었다. 바로 그 때 워싱턴 DC 헤드쿼터 항공우주분야 부책임자라는 상상할 수 없는 자리를 주신 거다.
하지만 오랫동안 기도해도 응답이 없었다가 교회에서 말씀 훈련을 받으며 깨달았다. ‘내 능력으로는 도무지 될 수 있는 자리가 아닌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이런 자리를 주신 것’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해야할 일은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고 좋으신 분인지를 깨달아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그 분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란 것을 말이다. 내 삶이 기쁨과 감사로 변화되는 것이 하나님은 그냥 기쁘시다는 깨달음이 온 것이다. 그리고 나니까 너무 마음이 기쁘고, 점점 성경에 나오는 말씀들이 체험적으로 다가온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내가 주는 멍에는 쉽고 가볍다’고 말씀하시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이 공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을 제대로 알아서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뭔지 알고 나니까 마음이 굉장히 가볍고 자유해졌다.
돌아보면 몇 년 간 강박관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나님 일을 뭔가 해야 할 것 같은데, 답답하고 기도를 하면 뭔가 해드려야 된다는 생각에 힘들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즐기면 돼!” 이것을 깨닫고 나니까, 너무 즐겁다. 댓가가 필요없는, 이게 바로 은혜다.
-조금 주제를 틀어서, 혹시 과학자로서 창조주가 존재하는 필연성을 실감한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있다. 먼저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기본 구조와 전체 우주를 돌고 있는 구조가 똑같다. 그것이 우연히 됐다고 하는 사람들이 되려 비 정상인이다. 그게 어떻게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는 건 과학적으로 말이 안되는 이야기고, 일정한 법칙 하에 그렇게 만드신 분이 있다는 것을 논리로도 알게 된다.
또 우리를 보면 알 수 있다. 과학을 하지 않아도, 수많은 동물들 중에서 정말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만드시지 않았다면 왜 우리만 창조의 능력이 있겠는가. 비행기를 만드는 것만 봐도 ‘그런 창의력이 어디서 나오느냐’고 했을 때, 다 같이 진화를 했으면 우리만 그렇게 고등으로 진화를 하고 다른 동물을 다 진화를 못했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는 이야기가 우리의 겉모습이 닮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수많은 종교가 있는 이유도 우리가 하나님을 원초적으로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들어 믿는 것이 또 하나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세번째, 우리가 존재하는 공간이 있다. 이 공간을 내가 만들지는 않았지만 이 공간이 있는 것은 안다. 그리고 그 공간으로 인해 내가 존재하고 있다. 이 엄청난 우주를 담고 있는 것도 스페이스가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스페이스가 있어야 그것이 존재하는 데, 그것은 어디서 온 것이냐. 하나님이 주신 논리적 생각을 가지고 생각을 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에 도달한다. 그 스페이스를 누군가 만들지 않았으면 이 전체 우주를 담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길 수 있었을까.
-은퇴 후에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
꼭 은퇴 후가 아니라도 마음가짐은 언제라도 부르시면 가야지 하는 생각이다. 이사야서에서 ‘누구를 보낼꼬’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사야가 ‘나를 보내소서’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사랑이 크기도 했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준비된 사람이었기 때문이란 생각이다.
무엇을 하고 싶다는 것보다, 내일이라도 이리로 가라고 하면 주저하지 않고 그리로 갈 수 있는 준비된 사람이 되면 좋겠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만큼 밖에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없다. 인간 사이에도 알아갈 수록 참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관계가 깊어지듯이, 하나님을 아는 만큼 밖에는 은혜의 깊이를 그 정도 밖에 알 수 없다. 은혜의 강물이 점점 성전에 차올라 발목까지 갔다가 완전히 은혜 안에 잠기게 되는 에스겔의 환상처럼 내가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점점 하나님을 잘 알아서 그 은혜가 얼마나 큰 지를 점점 잘 아는 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이 있긴 하다. 내가 44세에 하나님을 만났는데 돌아보면 하나님을 몰랐던 때의 시간이 너무 아깝다. 젊은 청년 시절부터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인생과 모르고 살아가는 인생이 나중에는 삶의 내용에서도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이다.
바라기는 젊은 청년들이 빨리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신재원 박사는 1982년 연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캘리포니아주립대(롱비치)에서 석사 학위, 버지니아텍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공은 유체역학으로, 89년 NASA 클리브랜드 글렌연구센터에 들어간 뒤 탁월한 연구 실적과 관리 능력을 인정받아 고속 승진, 2008년 동양계로는 최초로 미 항공우주국(NASA) 항공연구 부문 책임자 자리에 올랐다.
항공 전략 결정, 항공 비행 및 안전 등 항공학 관련 모든 연구가 신 박사의 책임 아래 진행되고 있으며, 백악관을 비롯해 민간 항공업체에 가서 연구 예산을 위해 직접 브리핑을 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2008년 연방정부 직원의 0.005%만 받는다는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으며, 이외 NASA 리더십 메달, 특별 서비스 메달, 그룹 성취상, 루이스 우수 성취상 등을 수상, NASA의 지원으로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 최고경영자 과정을 이수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