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기독일보 김브라이언 기자] 시애틀 다운타운에서 페리를 타면 푸른 바다와 자연을 담은 아름다운 도시 브레머튼을 만나게 된다. 최근에는 고속 페리의 운행으로 분주한 도심에서 벗어나 25분이면 자연과 하나된 브레머튼을 만날 수 있다.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이 곳, 브레머튼에 35년 전 세워진 한인교회가 있다. 바로 브레머튼 한인장로교회다.
10년 전 이 교회에 부임한 박근범 목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교회"를 표어로 행복한 교회를 이뤄가고 있다.
박근범 목사는 장로회신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공군 군종 장교로 입대해 17년 6월 개월 동안 백령도를 시작으로 군종감실, 계룡대 본부교회 등 군에서 군종 장교로서 다양한 보직을 두루 거쳤다.
진급도 어렵지 않았다. 한번도 쉽지 않은 특진을 두 번이나 하면서 군목 중령이 되기까지 순탄한 길이었다. 급기야 불과 42세의 나이에 군종 목사의 최상위 계급인 대령으로 진급할 수 있는 기회까지 얻게 됐다.
대령으로 진급해 군종 목사로 살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길을 시작할까?를 고민을 하던 그는 아브라함을 생각하며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그렇게 브레머튼 한인장로교회에 부임하게 됐다. 아래는 박 목사와의 일문일답
-브레머튼 한인장로교회 부임 10년이 됐습니다.
"목회자가 교회에 부임해서 3년에서 5년은 서로 적응하는 기간이라고 한다면, 5년에서 10년은 서로 마음을 잇고 나누는 시간 같습니다. 목사도 행복하고 성도도 행복한 교회를 바라보며 지금까지 왔고, 성도들과 함께 건강하고 성숙한 교회를 세워가고 있습니다. 목회 10년이 되니 교인들도 담임목사가 어떤 목회 철학과 방향을 지향하는지 알게 되고, 교인들과 마음으로 소통이 잘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군목 출신에 직급도 높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교인들이 제가 권위적인 목회자이지 않을까 염려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누구보다 소탈한 성격이고요. 교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권위적이지 않고요. 제가 교회에 부임해서 한 가지 약속한 것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던지 여러분에게 화를 내면, 그날이 교회를 떠나는 날입니다'라고요. 지금까지 한번도 큰 소리를 낸 적이 없습니다. 목회자가 화를 내지 않으니까 교인들도 더욱 화목에 힘쓰는 것 같습니다."
-군목 사역을 오래 하셨는데 이민교회 사역을 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요.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군종 장교로 군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군대는 제게 선교지였습니다. 첫 부임지인 백령도부터 계룡대 공군 본부 교회 담임까지 17년 동안 전후방 병사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삶을 함께 했습니다.
그러다가 군종감실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주위에서는 축하가 이어졌지요. 군목 중령까지 정말 순탄하게 진급했고 불과 군종감실 근무로 42세의 나이에 대령으로 진급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이 진로를 두고 심각하게 기도하게 됐어요. 군종 목사로 대령으로 진급하면 안정적인 사역을 할 수 있었어요. 복무 20년이 되면 연금 등 여러 가지 혜택도 많고요. 그런데 급하게 전역 지원서를 제출했습니다.
그 당시 주위 모든 사람들이 저에게 모두 미쳤다고 말했었지요. 다른 사람에게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 어려운 기회를 한 순간에 날려버렸다고요. 그런데 남은 생을 행정을 하면서 살기보다는 복음을 전하며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군종 장교로 1년 동안 국비 유학으로 남가주 풀러신학교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공부할 때 인연이 있던 가나안교회의 요청으로 이민 목회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가나안교회에서 수석 부목사를 3년 동안 하다가 브레머튼 한인장로교회의 청빙을 받아 오게 됐습니다."
-교회가 미국장로교(PCUSA)와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오래전 브레머튼 지역에는 한인교회가 없었고 지역 한인들이 한인회와 대한부인회를 조직해 운영하다가 35년 전에 지금의 교회를 빌려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이후에 시애틀 연합장로교회(당시 박영희 목사)에서 우리 교회를 지교회처럼 1989년까지 후원을 해주었고요. 시애틀 연합장로교회의 중재와 권유로 미국장로교 시애틀 노회에서 브레머튼 한인장로교회를 회원교회로 받아들이면서 교회를 구입해줬습니다.
당시 미국장로교에서 선교적 차원에서 한인교회를 지원했는데. 이런 사랑의 섬김의 터 위에 교회가 유지가 되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선교지 교회 개척과 건축 사역도 활발한데요.
"작은 교회지만 선교적 사명을 가지고 우리가 받은 사랑을 돌리자는 취지로 진행하고 있는데요. 교회 예산의 10%는 선교비로 책정을 해 놓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건물을 미국장로교 시애틀 노회에서 은혜로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갚자는 뜻으로 5년 마다 한 번씩 선교지에 교회를 건축해서 봉헌하고 있습니다.
5년의 준비 기간 동안 땅을 사서 교회를 건축하고 목회자의 3년치 사례비를 드리고 자립할 수 있도록 선교하고 있습니다. 지난 창립 30 주년에 첫 번째 필리핀에 30주년 기념 교회를 세웠고, 현재 자립해서 잘 성장하고 있습니다. 올해 4월에는 필리핀 산지족, 망양족 원주민들을 위해 민도르 섬에 교회를 건축하고 헌당예배를 드렸습니다.
교회 개척과 건축이 쉽지 않은 일이라 교인들도 처음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두 번을 해보니까 오히려 긍지를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브레머튼 지역에 필리핀 주민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우리 교회가 필리핀 선교를 하고 교회를 개척했다고 하면, '한국 이민교회가 필리핀에 무슨 상관이 있어서 두 번이나 헌당을 했냐고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합니다. 제가 은퇴할 때까지는 2번은 더 헌당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성도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일 수 있었던 이유는 뭔가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교회를 함께 만들어보고자 하는 마음이 통했던 것 같습니다. 크지 않은 이민교회지만 함께 모여서 행복하게 사명을 감당할 수 있으면 그것만큼 보람된 사역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40대 중반에 미국에 왔습니다. 한국에서 미국에 올 때 나머지 20여 년 동안 한 텀을 목회할 수 있는데, 사이즈나 지역에 상관없이 그 교회에서 은퇴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어요. 다른 지역으로 가지 않고 브레머튼 한인장로교회를 성숙하고 행복한 교회로 만들자는 마음이 전해진 것 같아요.
최근에 지역 사회를 위한 클래식 콘서트도 열었는데요. 교회가 우리끼리만 기쁨을 나누고 즐겁게 지내는 시대를 넘어, 베풀고 섬기는 교회가 되려고 합니다. 먼저는 교회 안에서 봉사와 섬김이 일어나고요. 브레머튼에 해군 기지가 있어서 군인 가정, 국제 결혼 가정한 가정도 많은데요. 이분들의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봉사가 교회에 큰 힘이 됩니다."
- 몇 년 전 암 수술을 받으셨는데 지금 건강은 어떠신가요?
"평소에 병원에 잘 가지 않을 정도로 건강했는데요. 저희 교회 30주년을 맞아 필리핀 선교지에 세운 교회 헌당을 위해 한국을 거쳐 가면서 종합검진을 받았어요. 놀랍게도 대장암 2-3기라 항암치료에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검사과정에서 의사들도 의문스러워하는 것이 5센치미터 크기의 암이 전이가 전혀 안된 상태로 있는 것이었어요. 하나님의 은혜였지요. 대장을 15센티미터 자르는 수술을 받고 완쾌 판정을 받았어요. 이후에도 1년에 한 번씩 체크를 하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고 나옵니다.
암이 다른 병하고 다르게 죽음하고 직결된 병이니까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내 자신은 하나님 앞에 가면 목회 열심히 했으니 부끄러움이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남겨진 가족들과 섬기는 교회에 미안한 마음이었어요.
또 목사가 목회를 하다가 암으로 사망을 하게 되면 교회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 같아 아쉬움이 있었고요. 그런데 수술 후에 완쾌된 것 보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사랑하시는 것 같고, 교인들 마음의 상처를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신 것 같아서 감사했습니다. 교인들은 우리 교회가 선교를 했기 때문에 목사님이 살게 됐다고 더욱 선교에 마음을 모으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요?
"돌아보면 정말 쉼 없이 달려온 목회여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 앞에 변함없는 신앙으로 건강하고 교회, 성숙한 교회, 행복한 교회를 만들어 나아가고자 합니다. 또 작은 교회지만 선교적 사명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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