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이수민 기자] '미래라이프' 단과대학 설립 문제로 이화여대 교내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대 기독교학과 동창회가 학생들의 의견을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는 동창회 입장에서는 '처음'으로, 현재 학생들의 움직임에 일부 단대 교수님들도 지지성명을 하자, 총장단에서 동창회 지지를 호소하는 가운데 이뤄진 일이다.
기독교학과 동창회장 이숙진 씨는 "미래라이프 단과대학 설립 반대는 '이화'라는 프리미엄을 지키고자 함이 아니"라고 밝히고, "생계를 위해 직장생활을 해야했던 그래서 대학교육에서 소외된 여성을 위한다면 ‘뷰티와 웰니스’ 교육이 아닌 인문학적 성찰을 비롯한 ‘큰 학문’을 배워야 한다"면서 "이화가 스스로 ‘대학’이기를 포기하는 행보이기에 동창들이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더불어 이숙진 씨는 "교육부와 대학당국이 추진하는 사업방향의 문제는 비단 이화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하루에 걸쳐 동창들의 동의를 받아 성명서를 발표한다"고 전했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이다.
[성명서]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동창회입니다. 동창들끼리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화’는 재학시절보다 졸업한 뒤에 애교심이 더욱 자란다고요. 그 말이 무엇인지 절감하면서 우리 졸업생들은 개인으로도 동창회로도 이화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으려 하루하루 성실하고 치열하게 주어진 몫의 인생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어쩌다 마주치는 후배 한 사람이 소중하고 기사 한 줄로 읽는 학교 소식에 가슴 떨려하면서요. 그런데 지난 주 학내에서 불거진 사건을 외부 보도를 통해 접하면서 그야말로 눈과 귀를 의심하였습니다.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처음에는 당황하고 놀란 마음에 삼삼오오 분노를 나누다가 결국 함께 기도하고 고민하면서 모은 의견들을 글로 정리하였습니다. 이 뜨거운 여름, 그보다 더 뜨거운 애교심으로 본관에 모인 재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어서요. 너희들은 고립되지 않았다고. 혼자가 아니라고. 언니들이 있다고. 이에 기독교학과 동창회는 지금 어른들의 도움이 없이도 꿋꿋하게, 용감하게, 그리고 21세기 신세대답게 발랄하고 영리하게 싸우고 있는 후배들을 지지하며, 이화 캠퍼스 안에 있는 어른들께 이렇게 외칩니다.
1. 지켜야하는 ‘이화 정신’이 있습니다.
이화의 처음을 기억해주십시오. 이화가 처음으로 눈을 맞췄던 이가 누구였는지를 꼭 기억해 주십시오. 길 가에 버려진 한 소녀였습니다. 그 소녀는 한 학기 오백만원에 육박한다는 등록금(미래라이프 단과대학 예상 등록금이라지요.)을 감당할 수 있는 학생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추려나갈 힘조차 없는 아이였습니다. 그 소녀를 데려다가 대가 없이 입히고 씻기고 먹였던 이화입니다. 그저 몸만 보호해준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서는 법을 가르쳐주기 위해 지식을, 그리고 정신을 심어준 이화입니다. 희생과 봉사, 지금도 이화인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이 가치는 기독 정신을 그 기반으로 합니다. 약자를 일으켜 세우고 그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이화 정신! 만약 이화가 정당한 노력 없이 돈으로 학위를 사려는 사람들을 받아들인다면 이 정신을 포기하는 겁니다.
2. 지켜야하는 ‘학문 영역’이 있습니다.
‘이화’라는 프리미엄을 지키고자 함이 아닙니다.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적 삶의 조건은 더 이상 인간으로서 사유하고 선택할 수 있는 입지를 좁히고 있습니다. 하여 이런 때일수록 생각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오히려 세상은 수년 전부터 ‘인문학 열풍’을 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학을 접할 기회가 없이 생계를 위해 직장 영역으로 바로 진입해야했던’ 여성들을 구하고자 하신다면서, 개설학과를 보니 어이가 없습니다. 뷰티와 웰니스요? 직장에 다니고 있는 고졸 여성들도 자기들을 모욕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녀들에게 박탈된 교육 내용은 인문학적 성찰을 비롯한 ‘큰 학문’입니다. 그야말로 대학에 와서야 배울 수 있는 학문 말입니다. 이화가 스스로 ‘대학’이기를 포기하는 이 행보를 우리 동창들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3. 지켜야하는 '어린 생명'이 있습니다.
백번 양보하여 학생들이 잘못하였더라도, 어른의 이름은 기다려주는 이름입니다. 스스로 깨닫고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말이죠. 하지만 지금 본관에서 총장님을 애타게 부르는 저 후배들이 무엇을 잘못했나요? 오히려 학교의 대다수 구성원들과 전혀 소통하지 않고서 단과대학 개설이라는 커다란 일을 졸속 시행하려는 분들이 잘못하신 것이 아닌지요. ‘다시 만나는 세계’라는 발랄한 노래를 부르고, 공부할 거리를 가지고 총장님과 대화하기를 기다리던 후배들을 뒤로하고 경찰병력을 캠퍼스로 불러들인 일만큼은 우리 졸업생들이 그저 가만있을 수 없군요. 학생이 잡혀간다면 잘못한 일이어도 몸을 던져 막아야할 스승이 어떻게 먼저 경찰을 불러들이나요? 더구나 어제(8월 1일) 기자회견장에서는 사법처리 운운하는 경찰의 입장을 전하셨더군요. 그 위협에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을 후배들이 눈에 선합니다. 굳이 교육자가 아니더라도, 어른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압니다.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는 것을요. 친구들을 잃으면서 몸으로 배웠습니다. 어른들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으며, 의지할 어른이 없어 온 존재로 울고 있는 후배들을 더 이상 위협하지 마십시오. 저 후배들의 말이 옳습니다. 이화는 ‘대학’입니다. 큰 학문을 배우는 곳입니다. 대학 아닌 곳에서도 배울 수 있는 것들을 ‘이화 졸업장’이라는 매력적인 상품으로 신성한 이화 캠퍼스 안으로 끌어들이지 마십시오. 또한 다음세대를 잃은 공동체는 그것이 어디이든 미래가 없습니다. 이화의 미래가 걱정됩니다. 한 여성이 한 인간으로 우뚝 서서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나갈 능력을 길러주는 곳, 이화. 130년 동안 선배들이 만들어온, 그래서 들으면 언제나 자랑스러웠던 이 이름을, 이제는 우리가 지킬 겁니다. 우선은 저기, 대한민국 여성 교육의 산실이라는 이화여자대학교 본관 안에서 여전히 어른들을 향해 소통하자고 손을 내미는 저 후배들을 지켜내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2016년 8월 2일
이화후배를 지지하는 기독교학과/기독교학과 대학원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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