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정치] 4월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자중지란(自中之亂)을 겪고 있다. 야권은 지난해 말부터 분당 사태를 겪고 있으며 여권 역시 총선 공천이 본격화되자 계파간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역사적으로 분열과 통합을 지속해왔던 야권은 이번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두 개의 큰 세력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들은 총선에서 큰 충돌을 예고하고 있다.
이미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수도권에서 야권이 힘든 싸움을 벌일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선거 때마다 박빙의 승부를 보여 왔던 지역이 다수 있는 수도권에서 야권 후보의 난립은 야권의 몰락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충분하기 때문에 양측은 서로를 주저앉히려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국민의당 한상진 창당준비위원장의 ‘이승만 국부론’ 논란이나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참여 논란이 확산된 것도 양측의 총선 전 신경전으로 볼 수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이 더민주와의 연대를 아직까지는 부인하고 있지만 선거가 다가올수록 수도권 등의 지역에선 지역별 단일화가 이뤄질 가능성은 남아있다. 그렇지만 호남에선 양측이 제1야당 자리를 두고 피 튀기는 접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야권의 텃밭인 호남지역에서 일정 의석을 확보해야 총선 이후의 제1야당 선점 경쟁에서 한 발 앞설 수 있는 것이다.
야권 전체의 자중지란뿐만 아니라 각 정당 내부서도 분란이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 의원을 중심으로 창당을 진행하고 있는 국민의당은 과거 안철수 의원의 대선조직인 ‘진심캠프’ 인사들과 탈당파 현역의원들의 당권 경쟁이 조금씩 불거지고 있다. 얼마 전 언론에 포착됐던 김관영 의원의 문자메시지 논란 등을 보면 이들이 화학적인 결합을 이뤄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국민의당에 천정배 의원이 합류했고 조만간 정동영 전 의장 역시 동참할 것으로 보이는데 중도진영을 표방하는 안철수 의원 등의 세력과 더민주보다 좌클릭됐다고 평가받는 천정배 의원 등이 충돌할 여지가 있다.
게다가 새정치를 표방하는 안철수 의원은 호남지역에서 새로운 인사들의 공천을 추진할 것으로 보이는데 국민의당에 합류한 광주지역 현역의원들 다수가 이에 반발하고 나설 수도 있다. 특히, 천정배 의원은 ‘뉴DJ’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광주발(發) 국민의당 내부 전쟁이 진행될 소지가 다분하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문재인 대표가 대표직을 사퇴한 후 김종인 체제가 시작됐다. 정치권에선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원장과 기존의 더민주 주류 세력과의 충돌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위기에 처한 더민주의 수장으로 선임된 김 비대위원장은 선거 승리를 위해 여러 개혁을 추진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 과정에서 양측의 충돌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막 출범한 비상대책위원회에 이종걸 원내대표가 포함되지 않아 논란이 일기도 했다.
특히, 지난 2012년 김종인 위원장을 곁에서 지켜봤던 여권인사들은 더민주의 김종인 체제가 악수(惡手)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새누리당 관계자들은 “그와 함게 일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기존 조직과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이처럼 분열 양상을 보이는 야권에 반해 여권은 한동안 잠잠했다. 그렇지만 친박(친박근혜)계 핵심인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의 당 복귀를 기점으로 친박계와 비박계의 갈등이 본격 시작되고 있다.
최근 김무성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김 대표는 지난 26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중장기 경제어젠다 추진 전략회의’에 참석, 일명 국회선진화법으로 불리는 현행 국회법에 대해 “왜 그러한 망국법인 국회선진화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느냐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며 “(입법 당시인) 그때도 우리 당내 거의 많은 의원들이 반대를 했는데, 당시 권력자가 찬성으로 돌자 반대하던 의원들이 모두 다 찬성으로 돌아버렸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그래서 통과된 게 바로 국회선진화법”이라면서 “이런(권력자를 따라가는) 잘못을 종료시키려고 공천권에 발목이 잡힌 국회의원에게 정치적 철학과 소신을 굽히지 말라는 뜻에서 100% 상향식 공천을 내가 지금 온갖 모욕과 수모를 견뎌가면서 완성했다”고도 했다.
김 대표가 언급한 ‘권력자’는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박근혜 대통령을 뜻한 것으로 해석됐다. 김 대표의 발언은 지난 2012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선진화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입법의 필요성을 밝히자 선진화법에 반대했던 친박계가 찬성으로 돌변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같은 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선 친박계를 향해 “권력 주변의 수준 낮은 사람들은 완장을 차려 한다”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그는 “완장을 차고 권력자 이미지를 손상시킨다”며 “역대 정권마다 있었던 일이다. 그게 대통령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친박계가 이번 총선에 세를 확장하려는 데 대해선 “이해가 잘 안 된다”며 “대선 때 박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이 (새누리당에) 있느냐”면서 “그럼 다 친박 아니냐”고 했다. 그는 “그때 (친박계가) 다독였다면 모여 있던 사람들이 흩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김 대표는 “그런데 몇 명의 소수가 ‘우리만 친박’이라며 밀어냈다”며 “그래놓고 다시 세력화한다는 게 이상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김 대표는 다음 날인 27일에도 “많은 젊은이들이 정치를 하고 싶어도 구태 정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능력과 열정보다 권력자에게 줄을 잘 서야 한다는 얘기를 들어 용기를 못 냈을 것”이라면서 “과거에는 공천권이 당의 소수 권력자에 의해 밀실에서 좌지우지됐다”며 거듭 박 대통령과 각을 세웠다.
김 대표가 연달아 박 대통령과 친박계를 겨냥하자 친박계도 반격에 나섰다.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은 2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여당인 새누리당의 권력자는 김 대표 스스로 아니냐”면서 “여당의 모든 인사권을 가지고 있고 대권후보 1위 반열에 올라있는 이 이상 권력자가 있느냐”고 따졌다.
서 최고위원은 이어 “야당도 분열되는 상황에서 우리 당은 조심스레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한다”면서 “김 대표가 왜 이런 권력자 발언을 해서 분란을 일으키느냐”고 비판했다.
서 최고위원은 또 “선진화법의 경우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김 대표 본인이 여기에 반대했지만 당 대표로서 책임있다면서 사과하지 않았느냐”며 “그런데 한 달도 안돼 다른 분에게 책임을 돌리려 하느냐”고 날을 세웠다.
뿐만 아니라 김 대표가 최근 언론인터뷰에서 친박계에 대해 “권력 주변의 수준 낮은 사람들은 완장을 차 권력자의 이미지를 손상시킨다”고 말한 것과 관련해선 “이런 말도 안 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현재 노동법을 비롯한 민생경제 법안의 처리가 시급한 청와대는 김무성 대표의 발언에 참고 있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지만 당내 계파간 갈등은 앞으로도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공천관리위원장 문제를 두고 양측은 맞붙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김황식 전 국무총리, 김능환 전 대법관과 같은 법조인 출신의 명망가를 찾고 있으며 친박계는 대구 출신으로 불출마를 선언한 이한구 전 원내대표를 밀고 있다.
새누리당은 앞서 공천기구 구성 당시에도 갈등을 빚었었다. 설령 위원장을 선출한다 해도 다시 위원 구성에 계파 안배를 놓고 힘겨루기가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공관위의 구성뿐만 아니라 권한과 역할 범위 등에 대해서도 비박계는 이를 축소하려 하지만 친박계는 되레 확대해 최대한 전략공천의 가능성을 열어두려 할 것으로 보인다.
그간 총선 때마다 각 정당은 시끌벅적했다. 지도부에선 자기사람을 하나라도 더 당선시키려는 계파간 전쟁이 불거졌고 지역에선 서로 보지 않을 사람으로 보일 정도로 충돌을 벌여왔다. 다수의 이합집산 경험이 있는 야권은 정통성 경쟁을 위해 상대를 깎아내리려는데 혈안이 됐었다. 이번 총선 전 정치권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정당이 어떻게 내홍을 잘 추스르고 선거 준비를 착실하게 할 것인지는 선거 결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이는데 자중지란의 당사자들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지만 해법 찾기와 실천이 어려울 뿐이다. 누가 최후의 승리자가 될 것인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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