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이선규 목사] 선배 어른들이 은퇴 하신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나하고는 상관이 없는 듯 ‘그런가 보다‘하고 지나 쳤는데 이제 본인의 현실로 돌아 왔다. 생각해 보면 요즈음의 날씨만큼이나 마음이 차가움이 다가온다.
좀 더 교회를 부흥 시키지 못한 아쉬움뿐만이 아니다. 어제 밤에도 교회 지하 서재에서 밤을 지냈다. 교우님들이 지하에 거처 하시는 것이 좋지 않으니 자택에서 주무시라는 당부를 몇 차례 받았지만 사택이 유흥가의 중심에 있다 보니 한밤중에 벼락 치는 소리가 나지 않나 전투가 벌이지는 광경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시끄러워서 교우들의 요구를 들어 들이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
시인 유안진님은 빈가지 뿐인 겨울나무의 그 가득한 꼭대기에 까치집이 걸려 있는 것은 한 폭의 그림이며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라고 하면서 아무리 초라한 집이라도 마당이나 뒤켠 한쪽이 높은 나무가 서있고 그 나무꼭대기에 까치집이 있으면 참 보기 좋고 웬 지 가까운 미래에 형편이 잘 되어 나가리라는 생각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지방에서 목회 할 때 동구 밖 훤칠하게 자란 미루나무 꼭 대기에 자리 잡은 까치집을 방문을 열고 나와서 이마에 손을 얹고 바라보던 때가 그리워지며 감성으로 다가서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 그런 생각에 잠기면서 요즘 갑자기 추워진 날씨만큼이나 모든 순진한 시민들의 어어 붙게 한다.
그러나 염려 하지 않는다. 동장군이 시위를 하듯 맹렬하게 닥쳐와도 훈훈한 인간애와 자연애가 있는 한 겨울은 결코 춥지 않을 거라고 확신 한다. 까치 소리를 들으며 새해에 좋은 날이 올 것을 기다리는 마음. 까치가 푸득 푸득 나는 하늘 밑을 눈을 밟으며 세배 가는 발걸음은 그런 모든 인간사와 자연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하는 즐거움 그래서 겨울은 따뜻하기만 하다.
어제 밤에는 시편 88편을 읽었다
...나는 갇혀서 나갈 수 없게 되었나이다. ...
잊음의 땅에서 주의 의를 알 수 있으리까? 잊어진 땅 눈물과 한숨에 젖은, 영영 버림받은 거와 같은 땅에서 내 어찌 주의 의를 알 수 있겠는가 시편 88편의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고난을 당하여 죽게 되었사오며...’하고 울부짖게 된다.
수고와 슬픔뿐인 인간세상, 내가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저자는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겠다’고 하지 않는가?
“성경의 뿌리가 있고 성경의 질김이 있고 끈기가 있노니... 주여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기도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아침에 어린 아들을 폭력을 가하고 시신을 훼손한 사건이 보도되고 있다. 그날이 겨울이 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 하라고 하셨는데 인간의 마음은 더욱 요즘 겨울 추위 보다 점점 더 얼어붙는 것 같습니다.
‘자 텅빈 들녘을 바라보십시오.’ 이어령님의 말처럼 바깥세상이 텅 비면 빌수록 내면의 세계는 더욱 넓어 지는법 이라는 단어가 기억난다.
“삭막한 겨울 풍경 모든 것이 다 죽어 버렸다고 말하지 마시오. 모든 생명은 지금 가장 활발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은 내면의 세계에서 말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네 인생살이도 가장 따뜻하고 그립고 풍성하고 즐겁게 살아 갈 때가 바로 겨울임을 생각해 보는 순간이다.
요즘 겨울 풍경은 그렇게 메마르고 또 그렇게 외로워 보이건만 겨울나무들의 가지가지에는 봄날의 찬란한 꽃 세계도 신록의 청신한 향연도 충분히 마련해 가지고 있지 않던가?
봄이 오면 시 냇가의 능수버들은 어느 나무보다도 일찍 꿈처럼 아련한 초록으로 실가지 들을 물들이고 흐느적 거리겠지. 적막하기 그지없는 깊은 겨울날에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거칠 것 없이 비쳐오는 겨울 볕을 받으며 천안의 겨울 산책을 느껴 본다.
겨울의 낙엽수 들은 제각기 특유의 골격과 수형을 지니고 있어 제 나름의 본 모습을 보여 준다. 수석의 아름다움에 도취 될 줄 아는 사람들은 겨울의 벌거벗은 나무들을 감상해 볼 것이다. 그 소박하고 깊이 있고 떫은 멋에 취하여 반드시 삼매경에 잠기게 될 것이다.
마른 가지에 빈틈없이 준비하고서 하루하루 다가오는 봄날을 의심 없이 믿고 기다리는 겨울나무, 눈서리와 매운바람을 희망 속에 꾸준히 견디고 참는 겨울나무 볼수록 믿음직하고 멋지고 아름답다.
탁월한 예술인 같기도 하고 천년을 내다보는 철인 같기도 하는 이곳 테크노 마크의 길을 걷노라니 고향의 정원을 걸었던 그 시절이 새롭게 다가오면서 그 아쉬움으로 으로 남는다. 오늘 이 시간 아쉬움이 없는 삶을 살리라 다짐해 본다.
인생의 봄을 기다리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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