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개역개정)

◇창세기 14:14~24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그와 그의 가신들이 나뉘어 밤에 그들을 쳐부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오직 젊은이들이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가질 것이니라

이수영 새문안교회 담임목사
▲이수영 목사 ©새문안교회

▲설교전문

오늘은 창세기 13장과 14장이 말하고 있는 아브라함에 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 앞의 12장에서의 아브라함은 극명히 대비되는 두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는 칠십오 세의 나이에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두 말 하지 않고 온 가솔을 데리고 정든 땅을 떠난 믿음과 순종의 사람 아브라함의 모습입니다(창12:1-5). 다른 하나는 새로 정착한 땅에 심한 기근이 들어 이집트로 옮겨갔다가 절세미인인 아내 사라를 탐낼 이집트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고 아내를 빼앗을까 두려워 사라가 자기 아내임을 감추는 바람에 자기 목숨은 부지했지만 사라가 바로의 아내가 되기에 이르는 비겁하고 치졸하기 짝이 없는 아브라함의 모습입니다(창12:10-15). 그것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12:2-3) 하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도 상실한 믿음 없는 자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13-14장에서는 아주 마음이 넓고 용감하며 의리 있고 철저히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라를 자기 아내로 삼은 바로는 아브라함을 후대하며 그에게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주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로와 그의 집안에 재앙을 내리시며 개입하셔서 바로로 하여금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돌려주게 하셨습니다(창12:14-20). 비록 아브라함은 자기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부족해서 부끄러운 처신을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바로로부터 많은 재물을 받아 큰 부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아내도 돌려받고 이집트를 떠나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하신 것입니다(창13:1-2). 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복 주시겠다는 약속만 지키신 것이 아니라 그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위한 복이 되게 해주시겠다는 약속도 지키셨습니다. 그의 조카 롯도 아브라함 덕분에 양과 소 등 많은 재물을 소유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기름진 땅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창13:5-6).

그런데 아브라함과 롯이 모두 많은 가축을 소유하게 되자 그것들을 다 먹일 물과 목초지가 부족해졌고 그래서 양쪽의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창13:7). 그러자 아브라함이 결심을 하고 롯에게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롯에게 말하기를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13:8-9) 한 것입니다.

땅을 나누어 갖되 가질 땅을 먼저 선택할 권리를 양보 받은 롯은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보았습니다. 거기는 온 땅에 물이 넉넉했고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이 보였습니다(창13:10). 롯은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쪽으로 옮겨감으로써 아브라함과 갈라지게 되었습니다(창13:11). 그렇게 해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가나안 땅에 머물러 살게 되었고 롯은 그 바깥 지역의 여러 도시들을 거쳐 소돔에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소돔은 그 도시들 중 가장 크고 가장 부하며 가장 죄악이 만연한 도시였습니다(창13:12-13).

아브라함은 비록 이집트에 가서는 초라하고 딱한 모습을 보였지만 조카 롯과의 관계에서는 너그럽고 본받을만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조카에게 좋은 것을 다 양보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창13:14-17)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롯과 아브라함의 차이를 봅니다. 롯은 자기 자신의 눈에 좋아 보이는 곳을 택해 갔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보라 하시는 곳을 보았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받은 것입니다. 롯이 택한 곳은 부가 넘치는 곳이었기에 또한 전쟁이 잦았고 죄악이 들끓다가 하나님에 의해 멸망할 땅이었으며 아브라함이 받은 곳은 약속의 땅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적인 욕심을 따라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는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아브라함이 옮겨간 곳은 헤브론이었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헤브론에 거주하고 그의 조카 롯은 소돔에 살고 있을 때 주변 여러 나라들 사이에 큰 전쟁이 났습니다. 당시 동방의 네 큰 나라인 "시날"과 "엘라살"과 "엘람"과 "고임"이 연합하여 서쪽의 요단 저지대의 다섯 도시국가들 즉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벨라를 징벌하는 전쟁을 하기 위해 싯딤 골짜기에 집결했습니다(창14:1-3). 치열한 전투의 현장을 "싯딤 골짜기 곧 지금의 염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소돔과 고모라 성 가까운 곳이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대단한 원정을 온 것입니다.

이 나라들 사이에 전쟁이 난 것은 당시의 맹주였던 엘람 왕 그돌라오멜을 십이 년 동안 섬기던 나라들이 그를 배반했기 때문입니다(창14:4). 전투의 결과는 두말 할 것 없이 엘람 왕 그돌라오멜이 주도한 큰 네 나라 원정연합군의 우세와 다섯 도시국가의 패퇴였습니다. 특히 소돔과 고모라는 네 나라 연합군의 왕들에게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창14:11). 그런데 그 와중에 소돔에 거주하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사로잡혀갔고 그의 재물까지 다 노략질을 당했습니다(창14:12). 롯은 큰아버지 아브라함 덕분에 소돔에서 이미 무시 못 할 부호가 되어있었고 그래서 침략군의 표적이 되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그런데 그 전장에서 도망쳐 나온 병사 하나가 아브라함에게 와서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창14:13). 조카 롯이 사로잡혀갔다는 말을 들은 아브라함은 자기 집에서 기르며 훈련시킨 가병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추격에 나섰습니다(본문 14절). 아브라함과 그의 가신들은 롯을 잡아간 군대를 단까지 쫓아가서 쳐부수고 계속해서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습니다(본문 15-16절). 단은 이스라엘 민족의 땅 최북단 지역이고, 다메섹은 오늘날 시리아의 오랜 수도입니다. 아브라함이 대단한 추격전을 감행했으며 비장한 전투를 벌였음을 짐작케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집트에서 미인 아내 때문에 죽을까봐 겁을 먹고 사랑하는 아내까지 남의 손에 넘어가게 한 아브라함과는 사뭇 다른 면모를 봅니다. 불과 삼백십팔 명의 사병을 거느리고 막강한 군대를 쳐부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기적의 승리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조카를 구하기 위해서 적은 병사로 큰 군대와 맞서는 위험을 무릅쓰는 용기와 결연한 의지를 우리는 아브라함에게서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자기 자신의 힘을 믿고 나섰다기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나선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출하기 위한 작전에 성공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했습니다(본문 17절). "왕의 골짜기"는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골짜기입니다(삼하18:18). 아브라함이 북쪽으로부터 개선하고 귀향할 때 남쪽 소돔의 왕이 자기들을 위기에서 구해준 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예루살렘 근처의 왕의 골짜기까지 올라와 개선축하영접을 했던 것입니다. 소돔 왕은 아브라함에게 말하기를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본문 21절) 했습니다. 자기의 사람들은 되찾더라도 물품은 사례의 표시로 아브라함에게 주겠다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자기들을 이기고 모든 것을 빼앗았던 원정연합군을 이겨주고 빼앗긴 모든 것을 되찾게 해준 데 대한 답례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아브라함의 대답이 무엇이었습니까?

본문 22-23절을 봅니다: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소돔 왕의 제의를 거부한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부당한 취득은 하지 않겠다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죄악이 넘쳐흐르는 땅의 재물을 탐하지 않겠다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부당하고 명분 없으며 깨끗하지 않은 재물을 거부한다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소돔 왕이 사람들에게 자기가 아브라함을 부자가 되게 했다는 말을 할 여지를 두지 않겠다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복 주신 사람"이라는 말만 듣기를 원한다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복 외에는 일체의 다른 복을 원하지 않겠다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더욱 넘치는 복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가장 큰 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바로 다음인 1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15:1) 하시고는 아브라함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셔서 물으시기를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하시고는 또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15:5)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대로 아브라함이 백세가 되었을 때 그에게 친아들 이삭을 주셨습니다(창21:1-3).

우리는 창세기 13장에서의 아브라함의 이야기 속에서 그가 롯처럼 인간적인 욕심을 따라 눈을 들어 땅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을 바라보았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또 14장에서의 이야기 속에서는 떳떳하지 않게 치부하기를 거부하며 오직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복만을 바라본 아브라함을 주목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브라함에게 놀라운 복과 은혜를 베푸셨다는 사실을 주목합니다.

오늘은 금년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2015년이 며칠 남지 않은 시점에서 지나간 한 해를 돌이켜보기를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바라보라고 하시는 곳은 보지 않고 인간적인 눈으로, 세상적이고 탐욕적인 눈으로 이곳저곳을 바라보며 살아오지는 않았는가? 그래서 얼핏 보기에는 비옥하고 풍요로워 보였지만 결국은 죄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게 하고 망할 수밖에 없는 길로 나아가지는 않았는가?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실 참으로 큰 복을 다 놓치지는 않았는가? 세상적인 복을 부러워하며 세상적인 방법으로 그 복을 받아보려고 발버둥치지는 않았는가? 물질이든 명예든 지위든 일신상의 안위든 하나님께 맡기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확보하려고 자신의 양심이나 자존심에 스스로 상처를 입히지는 않았는가? 더 나아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남의 이름을 팔고 다른 사람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일을 서슴치 않고 행하지는 않았는가? 매사에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묻기 전에 먼저 일을 저질러놓고 하나님의 뜻을 거기에 덧씌우려는 억지를 부리지는 않았는가?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 자신의 신앙과 인격의 밑바닥을 다 드러내고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하는 씁쓸함을 경험하지는 않았는가?

새해를 앞두고 세상을 바라보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눈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을 바라볼 수 있기를 구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복을 움켜쥐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대로만 복을 누리기를 원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눈이 좋아야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가 멀리 보아야 얼마나 멀리 볼 수 있겠습니까? 만물을 꿰뚫어 보시며 모든 시간을 관통하여 보시는 하나님의 눈에 우리의 갈 길을 맡겨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손이 커봐야 얼마나 크겠습니까? 우리 손으로 움켜쥐어봐야 얼마나 쥐겠습니까? 무한히 광대하신 하나님의 손으로 퍼부으시는 복과 은혜를 외면하고 사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새해에는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살기를 바라고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살 수 있기를 간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수영목사 #새문안교회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