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노
▲푸른교회 조성노 담임목사

올해는 유난히 블록버스터급 미술 전시회가 많았습니다. 마크 로스크, 프리다 칼로, 디에고 리베라, 모딜리아니, 페르난도 보테로 등 서구 거장들의 작품이 봇물을 이뤘습니다. 지난 휴가기간 중 동대문 DDP 디자인 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앤디 워홀 라이브>전을 관람했는데 그 전시회 또한 대단했습니다. 그의 출생지인 미국 피츠버그 <앤디 워홀 미술관>의 소장품 400여 점을 들여와 시기별로 꼼꼼하게 분류해 놓아 작품과 관련된 그의 생애까지도 추적할 수 있어서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동안 몇 차례 그의 작품을 접해봤음에도 또 다른 감흥을 느낄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회의 큰 축은 역시 초상화 시리즈 40점, 우리에게도 익숙한 마릴린 먼로, 마오쩌 둥, 마이클 잭슨, 무하마드 알리, 믹 재거 등의 실크 스크린 초상화는 물론 프란츠 카프카, 조지 거슈윈, 지그문트 프로이트 등 <20세기 유대인 10명의 초상화> 연작도 전시되었습니다.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은 미국의 가난한 체코계 이민 노동자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대학에서 시각 디자인을 공부하며 미술교사를 꿈꿨지만 정작 졸업 후에는 패션 잡지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구두회사의 광고를 시작으로 그의 경쾌하고도 가벼운 대중문화 이미지의 작품들이 점차 인정을 받기 시작하면서 1957년에는 아예 자신의 광고회사를 설립합니다. 이후 꾸준히 개인작품 전시회를 열고 1962년에는 사진에 기초한 <32개의 캠벨 수프 캔>이란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대량 생산된 상품이라는 소재와 사진 실사 실크 스크린 판화라는 독창적인 기법을 통해 일약 미술계의 스타가 됩니다. 이번 전시회에도 그가 <글래머>와 <하퍼스 바자> 같은 유명 잡지의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한 스팩이며 <인터뷰>지를 창간하고 전설적인 록그룹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프로듀서 겸 데뷔 앨범 커버(유명한 노란 바나나 실크 스크린 이미지)를 제작한 경력 등이 전시장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내노라 하는 당대 스타들이 앞 다투어 자기 얼굴을 그려 달라며 몰려들어 앤디 워홀의 전시회는 언제나 각계 스타들이 총출동한 파티장과도 같았습니다. 작품을 제작하기 바쁘게 팔려나가는 통에 급기야는 수많은 종업원들을 두고 같은 작품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실크 스크린 공장(팩토리)까지 세웠던 사람, 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화가는 아니었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사회가 만들어낸 가장 대중적이고 가장 상업적인 작가임에는 틀림이없습니다. 누구나 팝 아트라는 장르를 생각하면 앤디 워홀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그가 즐겨 다루었던 이미지들이 머리를 스쳐가는 상업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허문 장본인, 본래 그는 자신이 대량으로 생산한 예술을 싸게 싸게 팔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고 난 후에는 그의 작품이 가장 비싼 예술이 되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합니다. 미술품 경매 분석기관인 <아트 프라이스>가 발표한 <예술시장 트랜드>에 의하면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작품이 거래된 작가는 바로 앤디 워홀이며 거래액은 자그마치 4억 2천만 달러(4천억 원), 앤디 워홀은 이제 팝 아트의 황제라는 타이틀을 넘어 거래액 측면에서도 역대 최고 화가의 반열에 오른 셈입니다. 그는 평생 수많은 여성과의 염문을 뿌리고 다녔지만 끝까지 동정남이었다고 고백했고, 누구보다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는 사실이 이채롭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후에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주일 아침에는 항상 어머니와 함께 교회 예배에 출석했는데 오죽하면 사람들이 <주일 새벽까지 파티장에 있던 워홀이 몇 시간 뒤에는 반드시 어머니와 함께 교회에 있었다>고 회고했을까요? 그는 58세가 되던 해인 1987년 2월 21일, 뉴욕의 코넬 의료센터에서 담낭 수술을 받은 이튿날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면서 심장마비로 눈을 감았습니다.

추석(27일)까지 이어지는 <앤디 워홀>의 전시회, 가을 산책으로 어떻습니까?

/노나라의 별이 보내는 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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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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