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이수민 기자] 무교회주의자 김교신 선생 서거 70주년을 맞이하면서, "김교신 한국사회의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25일과 26일 기념학술대회와 강연회가 김교신선생기념사업회(회장 이만열 박사) 주관으로 열리고 있다. 먼저 25일에는 기독교회관에서 기념학술대회가 열렸는데, 양현혜 교수(이화여대)는 무너진 한국교회 가운데 다시금 김교신 선생의 정신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양현혜 교수는 "김교신의 일상성 속의 신앙과 예언자적 역사의식"이란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먼저 한국교회의 안타까운 현실부터 지적하고, "한국 개신교가 사회적 공신력을 잃은 이유는 대체로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영적 기업주의'이다"라고 주장했다. 거대한 성전을 건축하고 막대한 신도수를 자랑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돌리지만, 그 안에는 그리스도가 없는 '영적 기업주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러한 '영적 기업주의'의 기독교 에서는 신도들의 신앙의 중심이 교회가 되어 버리고 '신실한 신앙'이란 교회를 열심히 섬기는 것이 되어 버린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의 생명인 예수 그리스도가 실종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스도가 실종되면, 신앙은 종교 단체의 소속과 동일시되고 종교적 지식과 정보의 습득이 되어 버리고, 지식이나 정보는 그것을 습득한 사람의 삶을 형성시킬 힘도 의무도 없기 때문에, 이러한 신자의 삶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란 것이다. 양 교수는 "한국 개신교의 두 번째 문제점이 바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신앙적 인격도야와 삶에서의 신앙 실천이 없다는 점"이라 지적했다.
이어 양 교수는 "한국 개신교의 세 번째 문제점이 신앙을 개인적 삶의 영역에만 한정시키고 공적 사회적 영역에 대한 신앙적 책임을 외면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설정하고 사회적 공적 영역에 대해 무관심할수록 좋은 신앙이라고 한 결과는, 사회적 공적 영역에 대해 응답하는 역사의식과 기독교적 사회 윤리의 성찰의 부재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전쟁 위험이 높은 나라에 살면서도 (한국교회가) 평화 문제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고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면서도 통일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다"고 지적하고, "그러다 보니 얼마 전 독실한 장로이기도 한 총리 후보자의 자격 검증에서도 극명히 드러난 바와 같이, '좋은 신앙인'이지만 '좋은 시민'일 수는 없는, 즉 건강한 시민으로서의 상식과 소통할 수 없는 '별에서 온 기독교인'이 이 땅에 너무 많이 출현하게 된 것"이라 이야기 했다.
때문에 양현혜 교수는 "이러한 한국 개신교에서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이 한 사람이라도 기독교인다운 기독교인이 나오게 하고, 하나라도 교회다운 교회를 만들어 보자는 자기 쇄신 운동"이라 말하고, "이러한 때 우리가 김교신을 기억하고 그를 다시 살려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그는 신앙과 삶과 역사가 하나가 되는 삼위일체적 신앙을 주장했고 살아낸 사람"이라 전했다. 더불어 "그에게 '참 좋은 신앙인'은 '참 사람'이었고 나다나엘처럼 어떠한 거짓도 없는 '참 한국인'이었다"고 이야기 했다.
양현혜 교수는 "김교신이 기독교 신앙이란 신과의 살아있는 교제라고 보았기 때문에 신앙은 김교신에게 있어 생활과 분리되어서 생각될 수 없는 것이었고, 중요한 것은 일상생활에서의 산 신앙에 의해 증명되는 그리스도와의 결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정신의 그의 삶 때문에 김교신은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김교신은 실천이 없는 '말만'의 신앙 비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고 한다. 양 교수는 김교신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렇게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일상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와의 일치로 이해한 그는 기독교인은 중개자 없이 그리스도와 직접적인 살아있는 관계를 사는 사람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평신도와 성직자를 구별하는 교회의 계급주의에 반대했다. 그리고 신 자신의 생명에 참가하는 신앙을 고정된 제도나 형식에 가두려고 하고, 일정한 교파적 신조와 관행이 구원을 독점한다고 주장하는 교파주의나 그에 부수되는 종교적 배타주의와 불관용주의에도 반대했다. 세례나 성례전을 신앙의 본질적 요소로 보고 구원을 위한 불가결의 요소로 보는 율법주의적 성례전주의에도 반대했다. 김교신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여 자신의 일상의 삶에서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증명하는 산 신앙을 사는 것이 최대의 관심이었다.
김교신은 이러한 자신의 신앙을 담아내는 교회 형태로 '무교회'를 선택했다. 성직자, 성례전, 조직이라는 매개없이 성서 강해를 중심으로 한 평신도의 성서 공부라는 형식으로 자신들의 집회를 운영한 것이었다. 김교신이 우치무라의 무교회주의를 받아들여 기성 교회를 거부한 것은 교회의 부패에도 원인이 있으나,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기독교 신앙에서 교회는 비본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기성 교회의 오류는 그리스도와 생활 속에서의 결합이라는 본질적인 것을 버리고, 그것을 하나의 기관과 그것에 부수하는 조직, 교의, 예배 형식으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그가 생각한 '무교회'의 핵심은 기독교 신앙에서 본질적인 것은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증거 하는 것이고, 교회는 기독교 신앙에서 2차적인 문제라는 주장이었다.
이러한 이해에 근거해서 그는 기독교인의 생활 그 자체를 부단한 예배 행위로 보고 모든 활동이 그리스도에 대한 봉헌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예배행위와 일상생활의 구분이 없다. 기독교인은 모든 생활을 통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교신은 건전한 마음과 이성을 활용해 과도한 열광주의나 맹신적 축자주의를 배격하며 성서 해석의 객관성을 확보할 것을 주장하는 한편, 동시에 성서의 말씀에 주체적인 투신을 요구했다고 한다. 더불어 김교신은 치·사회적인 공적 영역에서 예언자적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양보할 수 없는 신앙적 실천이라고 봤다. 이러한 맥락에서 양현혜 교수는 김교신의 항일 정신과 그 활동 등을 소개했는데, 양 교수는 "김교신의 이러한 '일상성 속의 신앙'과 종말론적 희망에 근거한 예언자적 역사의식은 탈세 속과 세속으로의 회귀를 가능하게 하는 그의 정치적 실천 철학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행사에서는 양현혜 교수의 발표 외에도 "일본의 무교회와 김교신"(모리아마 코지) "자율적 근대를 향한 김교신의 고뇌 - 20세기 한국사상사의 새로운 지평"(백승종) 등의 발표가 이뤄졌고, 논찬자로는 이덕주 교수(감신대) 윤경로 교수(한성대 명예교수) 박상익 교수(우석대) 등이 수고했다. 또 추도예배에서는 한병덕 선생(그리스도의 사람 편집인)이 설교했고, 유족대표로는 김정옥 선생(김교신 선생 넷째 딸)이 인사말을 전하기도 했다.
회장 이만열 박사는 김교신 선생에 대해 "192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초반에 걸쳐 그의 신앙의 동지들(송두용, 양인성, 유석동, 정상훈, 함석헌)과 함께 '성서연구회' 및『성서조선』을 통해 '성서를 조선에' 주고 '성서 위에 조선'을 세우려 한 그리스도인이자 한국 사회에는 큰 스승"이라 평하고, "그는 성경이 말하는 기독교로 돌아가기 위해 먼저 철저히 성경연구를 하려고 노력했으며, 또 '미국식의 천박한 기독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조선적 기독교' 혹은 '조선산 기독교' 운동을 펴려고 했다"고 소개했다.
더불어 이 박사는 "김교신 선생은, 성경연구를 통해, 형해화 되어가고 있던 당시의 기성교회를 비판 개혁함으로 그 틀과 제도에서 벗어나려고 했다는 의미에서 '무교회주의자'로 불려지기도 한다"고 말하고, "한국 교회사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는 그는, 한국 교회가 세계선교사상 유례없는 성장과 발전을 이룩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신학과 신앙을 제대로 갖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올 때마다, 그런 비판에 대응하여 내세울 만한 가장 주목되는 선각자이기도 하다"면서 ", 그런 비판에 대응하여 내세울 만한 가장 주목되는 선각자이기도 합니다. 그의 '조선적 기독교'가 최근에 더욱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했다.
한편 26일 오후 2시에는 일심회에서 기념강연회가 열린다. 이 자리에서는 "김교신과 조선 지리소고"(진영선) "김교신고 가나안 신도들"(양희송) "사진으로 보는 김교신의 생애"(박찬규) 등의 발표가 이뤄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