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지옥을 향해 달려가는 영혼을 찾기 위한 전도에 얼마나 힘을 쏟고 계십니까?"
요즘 성도들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과연 뭐라고 대답할까.
"저는 말을 잘 못하고 용기가 없어서..."
"저는 전도의 은사를 받지 못했습니다."
"먹고 살기 바빠서 전도할 시간이 없습니다."
이런저런 핑계 찾기에 바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랫동안, 아니 모태에서부터 주님을 믿었다고 하면서도 아직까지 한명도 전도해 보지 못한 성도가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이렇듯 전도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우리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주님의 절대명령이기에 전도는 믿는 자에게 주어진 사명인 것이다. 즉, 성도라면 누구나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전도다. 전도야말로 주님의 제자로 온전히 살아가는 길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세상 죄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참으로 많다. 복음의 생명 줄을 던지기만 하면 그들을 살릴 수 있는데도, 우리는 죄 속에 바져 죽어가는 그들을 구경만 하고 있다 그들이 영원한 지옥 불에 던져져서 불의 심판을 받도록 버려두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성도로서의 본분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 9:16)
필자는 사도 바울처럼 하루라도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임할 것 같은 두려움 마음으로 전도를 해왔다. 복음을 전하러 나가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해 터져버릴 것만 같아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야말로 필자는 전도에 목숨을 걸었다. 이는 전도가 바로 생명이기 때문이다. 전도가 한 영혼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고, 내 생명을 나눠주는 것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내가 전도에 늑장을 부리고 있는 그 순간, 누군가의 영혼이 지옥 불로 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내 생명이 쪼개지는 것처럼 안타까운 마음이 있어야 전도를 할 수 있다. 진정한 전도는 영혼에 대해 애통해 하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지금도 울보다. 예수 안 믿는 영혼을 위해 기도하다 보면 그들의 인생이 불쌍해서 눈물이 나오고, 그 영혼이 구원받지 못해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울지 않을 수가 없다. 또 그들을 위해 내가 전도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운다. 이렇게 몇 시간씩 기도하다 보면 어느새 눈물이 강을 이루게 된다.
나그네처럼 잠시 와서 사는 이 땅에서의 삶은 짧고 허망하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천국의 소망을 품고 주변의 불신영혼들을 애끓는 심정으로 사랑해야 한다. 목숨을 건 사랑으로 그들을 전도할 때 그들은 진정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전도가 말처럼 쉬운 건 절대 아니다.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어놓는 결단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생명을 내어놓는다는 것은 나 자신을 죽이는 것을 말한다.
전도를 할 때 내 말솜씨로 하려고 하거나 시간적 여유가 생길 때 하겠다는 건 결코 자신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또 이웃을 전도하기 위해 그 사람에게 물질을 베풀고 그 베푼 것을 생색내는 것 역시 자신을 죽이는 일은 아니다.
내가 생명처럼 아끼는 돈이나 명예, 자손심을 주님을 위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버리는 것이 바로 자신을 죽이는 것이요, 주의 일에 목숨을 거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죽이는 일이 어찌 그리 쉽겠는가. 전도는 예수님을 향한 간절하고 뜨거운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내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나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워 나는 매일 부르짖어 기도하면서 밖으로 뛰어 나갔다.
전도지를 들고 집집마다 찾아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나의 삶에는 오직 전도만 있을 뿐이다. 한 영혼이라도 더 전도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시간을 다투며 영혼을 찾아 나섰다.
예수님을 뜨겁게 만난 뒤 나는 이렇게 전도에 미쳐서 살았다. 세상과 담을 쌓고, 친구도 친척도 멀리하고 오직 예수님께만 초점을 맞추며 살아왔다.
예수님을 믿고 하루아침에 변해버린 나를 우리 가족들조차 이상하게 여겼다. 주변에서는 나보고 참 유별나다고 했다.
"다른 믿는 사람들처럼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나가고 말면 그만이지. 왜 그렇게 교회에 푹 빠져 유난을 떠느냐"고 핍박을 많이 했다.
친정에서는 "왜 교회를 다녀도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렇게 이상하게 믿느냐"며 "자꾸 그러면 아예 족보에서 빼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을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텔레비전도 안 보고, 가족끼리 그 흔한 여행 한번을 가지 않고 오직 전도하러만 쫓아다녔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주님의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았기 때문에 전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꼭 안아주시며 사랑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내 사랑하는 딸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사랑받을 자격 없는 못난 딸을 어찌 이렇게 사랑해 주십니까"하며 몇 시간씩 울면서 기도를 드리곤 했다. 정말 나는 주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었다.
예수님을 핍박하고, 우상을 섬기며 내가 잘난 줄 알고 살아 왔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뒤, 나는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참된 기쁨과 삶의 소망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나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시 37:4~5)
주님께 이 죄인을 용서해 달라고 눈물로 기도하며 주님 앞에 엎드려 고백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넘치는 은혜를 부어 주셨다. 예수님께 받은 그 뜨거운 사랑을 주체할 수 없었던 나는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세상에서 기쁨을 찾으려고 술을 마시고, 세상 유혹에 빠져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만난 그 귀한 예수님을 전해야 했기에 하루도 전도를 쉴 수가 없었다 가만히 집안에 앉아 있을 수 없어 밖으로 뛰어 나가 전도지를 들고 집집마다 찾아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나는 전도를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거절을 당했고, 핍박을 받았다. 하지만 전도는 몇 달 하다가 안 된다고 포기하고 돌아서면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절대 살릴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전도를 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온 우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없고, 독생자 예수를 내어주기까지 사랑한 그분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신감이 결여되면 복음을 전했을 때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까 하는 두려움을 갖게 된다. 즉 '거절당함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의 전도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복음을 거절하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어떤 때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30번 혹은 100번 이상을 방문한 적도 있었다. 10년이 넘도록 계속 물질과 기도로 정성만 쏟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끊임없이 방문하고, 예수를 믿으라고 사정을 하고 정성을 들여서 한 사람, 한 사람씩 전도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과 한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서라면 몇 년이라도 기다릴 줄 아는 인내와 끈기가 있어야 한다. 투자 없이, 인내 없이 전도는 절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전도 대상자를 찾아가기 전, 그를 가슴에 품고 천 번 이상 그의 이름을 부르며 하루에 3번씩 기도하고 난 다음에야 그를 만나러 갔다. 기도 없이 전도할 수 없고, 강퍅한 심령을 녹일 수 없다. 기도해야 성령충만함이 임하고, 전도를 방해하는 사탄을 쫓아낼 수 있기 때문에 전도는 곧 기도인 것이다.
이렇게 힘든 과정이었지만, 전도는 내 인생에 있어서 오아시스와 같았다. 이는 전도할 때의 기쁨이 마치 황량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났을 때의 그것과 같기 때문이다.
사탄이 전도를 방해하기 위해 내게 수없이 많은 시련과 형언할 수 없을 만큼 큰 고통을 안겨 주었지만, 나는 주님께 전도의 사명을 받았다고 확실히 믿는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전도할 때 가장 행복하니 말이다.
필자는 지금도 전도하러 사람들을 만나러 갈 때가 가장 행복하다. 전도의 기쁨을 맛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그 기분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전도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인 것이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4~15)
글ㅣ엘시다전도훈련센터 원장 최필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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