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명예교수 손봉호 교수   ©연세대

[기독일보 오상아 기자] 연세 신학 100주년 기념 진리와 자유 포럼이 9~10일 연세대 신과대학 2층 예배실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번 포럼은 100년 전인 1915년 언더우드 선교사가 조선기독교대학(연희전문의 전신)에 신학과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신학교육을 시작한 것을 기념하는 첫 행사로 연세대 신과대학과 연합신학대학원이 CBS와 공동으로 주최했다.

포럼 첫째날일 9일에는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가 기조강연하고 연세대학교를 대표하는 사회과학자들, 박영신 명예교수, 김상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호기 사회학과 교수 등이 한국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 분야에서의 기독교 정신에 대하여 강연했다.

'현대사회와 기독교정신의 재발견'을 주제로 기조강연한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인간의 존엄성'을 설명하며 "물질주의를 영어로 materialism(독어, 불어 등 다른 서양어도 비슷함)이라 하는데 이는 '유물론'이란 뜻도 가지고 있다. 가치관으로서의 물질주의는 존재론으로 유물론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며 "유물론은 인간의 정신작용도 물질적인 것으로 설명하는 환원주의(reductionism)이며, 자연과학의 발달은 유물론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그러나 자연과학의 눈부신 성공은 사람들을 크게 경탄하게 했고 과학의 권위를 엄청나게 높여 놓았다. 기고만장하게 된 자연과학은 마침내 물질의 영역을 넘어 정신과 신의 영역에까지 손을 대기 시작했다"며 "1802년 프랑스 물리학자 라플리스 (P. Laplace)가 우주의 체계에 대한 자신의 저서를 나폴레옹에게 바쳤을 때 나폴레옹이 그 책에는 우주의 창조자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자 그는'폐하, 저는 그런 가설은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고 대답했다. 그런 정신은 최근 '하나님이란 망상' (The God Delusion)이란 책을 쓴 옥스퍼드 대학의 도우킨스(R. Dawkins)에 의하여 더욱 강화되어 전파되고 있다"고 했다.

손 교수는 "물질계에 적용하던 연구방법을 정신계에 적용함으로 정신계를 물질적인 것으로 환원해 버리는 것이다"며 그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 자유의지, 도덕 같은 것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오늘의 유물론적 세계관 형성에는 마르크스보다 자연과학이 더 크게 공헌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인하고 존엄성이란 사람들이 만들어 낸 허구에 불과하다는 유물론이 가져오는 가장 심각한 결과는 기본인권이란 이념이 설 자리를 잃는 것이다. 유물론적 입장에서는 왜 인간에게 기본 인권이 있는지를 정당화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때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이성 때문에 인간은 존엄하고 기본권이 있다고 주장했으나 이성의 권위가 떨어져 도구적 합리성(instrumental rationality)으로 격하된 오늘날엔 그 근거도 쓸모없게 되었다. 오늘날 세계의 지성계는 기본인권을 증명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해 서 부인할 수도 없는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마르크스는 그의 '국가경제와 철학' (Nationalekonomie und Philosophie>에서 공산주의는 자연주의요 곧 인본주의(Kommunismus=Naturalismus=Humanismus)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공산주의는 인간의 가치를 높여주지도 못했고 인간을 더 행복하게 하지도 못했다. 원칙적으로 마르크스의 등식은 실현될 수 없는 것이었다"며 "오늘날의 환원주의적이며 유물론적인 과학주의 (scientism)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존엄성, 기본인권은 오직 기독교가 가르치는 바 인간만이'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고, 기본 인권 사상은 기독교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고 강조했다.

손 교수는 "윤리학에서 당대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매킨타이어(A. Macintyre)나 세계적으로 알려진 사회철학자 하버마스(J. Habermas)는 '기본 인권' 사상이 유대교와 기독교의 가르침이 세속화된 것이라고 인정했고, 1982년 이란의 유엔대사 사이드 라자디-코라사니(Said Rajadie-Khorassani)는 국제연합이 1948년에 제정 선포한 <보편인권선언>이'유대-기독교적 전통의 세속적 이해'(a secular understanding of the Judeo-Christian tradition)라고 비판했다"며 "기본 인권 사상은 오늘 인류가 결코 포기할 수도 없고 포기해서도 안 되는 소중한 문화적 유산이다. 그런데 그것은 기독교가 인류에게 공여한 가장 위대한 선물 가운데 하나이다. 기독교는 이에 특허권을 가지고 있으며 그 특허권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뿐 아니라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고 제시했다.

이어 "기본인권 사상이 민주주의의 뿌리임은 말할 것도 없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동일한 생득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지 않으면 왜 유식한 사람이나 무식한 사람, 가난한 사람과 부자가 동일한 참정권을 행사해야 하는가?" 질문하며 "흔히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중요 사항을 시민들이 함께 논의하고 결정한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제도적으로는 그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폴리스의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유시민 뿐이었고 여자, 노예, 상인들은 배제되었다. 평등권이 전제되지 않는 것을 과연 민주주의라 할 수 있겠는가?" 물었다.

그러면서 "인권 사상이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표현된 것은 독일의 농민전쟁과 관계해서 1525년 스바비아(Swabia) 농민들이 요구한 <12개 조항>이었다 한다. 그 제3조에 보면 그리스도는 양치기이든 고위층이든 차별을 두지 않고 모두 그의 고귀한 피로 구속했기 때문에 농부들을 악한이라고 부르는 것은 개탄할 일이라고 했고 4조에는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모든 인간에게 짐승, 공중의 새, 물속의 고기들을 지배할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평민들은 짐승이나 새를 사냥하거나 고기를 잡을 권리가 없다고 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며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권리를 주셨고 그리스도께서 계급의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을 구속하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기본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함축되어 있다"고 소개했다.

또한 "종교개혁 때 구체적으로 드러난 인권과 평등사상이 개신교 국가들을 민주국가로 발전시킨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오늘날 개신교가 지배적인 나라들에는 예외 없이 민주주의가 정착되어 있다"며 "윤리는 인간에게 자유의자가 있다는 사실을 전제해야 가능하다. 짐승과 기계는 자유의지 가 없으므로 그들에게는 윤리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인간이 물질적인 존재에 불과하고 자유의지가 없다면 윤리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거의 모든 사회에서 도덕이 아니라 법에 의하여 질서가 유지되고 있는 현상도 유물론적 세계관과 무관하지 않다. 유물론적 세계관에서 도덕성이 약해지는 것은 당연하다"며 "최근 독일에서 조사해 본 결과 과거 공산주의 치하에서 살았던 동독 출신들이 서독 주민들보다 도덕성이 월등하게 낮다는 것이 드러났다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물질주의적 가치관 혹은 유물론적 인간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약육강식을 막기 위해서는 도덕보다는 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자발적인 선의지가 아니라 처벌로 위협 하는 법에 의하여 행동이 규제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어긋난다"며 "짐승은 외부의 협박과 유혹에 따라 행동한다. 그러나 인간의 인간다움은 자신의 행동과 삶을 자신이 결정하 는 자율성에 있다. 법률은 불가결하나 인간의 자율성과 존엄성에 적합하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스스로를 기본권도 없고 존엄하지도 않으며 자유의지가 없으므로 동물적인 욕망을 충족함으로 쾌락을 누리고 자극에 효과적으로 반응함으로 짐승보다 좀 강하다는 정도로 인식할 때 사람이 과연 자존감을 가질 수 있으며 자신의 삶이 의미 있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그리고 그런 자아인식으로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까?" 질문하며 "하나님이 없어야 인간이 가장 높아지는 줄 알았는데 결과적으로 짐승과 비슷하게 낮아지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이 없어야 사람이 주인이 될 줄 알았는데 결과적으로 동물적인 욕망의 노예가 되고 있지 않은가?" 물었다.

손봉호 교수는 "기독교는 인간은 존엄하고 모두 평등하며 모은 인간에게 기본권이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서로로부터 요구하라고 가르치지 않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존엄성 과 평등한 인권을 존중하라고 가르친다"며 "그것이 바로 성경이 가르치는 아가페의 특징이다.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고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은 누구나 자연히 하게 되는 이기적인 사랑이다. 이기적인 사랑은 특별히 명령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신약학자 다드(C. H. Dodd)는 아가페 사랑을 '정이나 애 정이 우선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능동적인 의지의 결단이다. 그러므로 감정은 명령될 수 없는데 비해서 사랑은 명령될 수 있다'했다. 사랑스러운 것, 사랑할 가치가 있는 것에 끌려서 하는 사랑은 수동적이고 감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명령하는 아가페는 능동적인 의지의 결단(active determination of the will)으로 수행될 수 있는 것이므로 명령의 대상이란 것이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아가페와 에로스'란 책을 쓴 니그렌(A. Nygren)은 진정한 윤리는 아가페에 근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나 칸트의 윤리는 철두철미 자기중심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미덕 (virtues)을, 칸트는 자신의 선한 의지 (gute Wille)에 윤리의 초점이 놓여 있다. 그러나 아가페는 이웃의 이 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며 "올바른 윤리는 내가 얼마나 선하고 훌륭한가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해를 끼치지 않는가에 있다. 윤리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라고 요구하지는 않다. 적어도 해는 끼치지 말라고 요구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물론 아가페는 윤리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뿐 아니라 나아가서 그를 행복하게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며 "오늘날 인간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 주로 인간이며 인간이 만든 사회라면 자신의 미덕이나 의무감, 자신의 이익보다 이웃의 고통을 고려하는 아가페라야 그런 고통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손봉호 교수는 끝으로 "오늘날 물질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행복지수가 이렇게 낮은 것은 인간관계가 경쟁적이기 때문이고 공정하지 못하게 때문이다"면서 "다른 사람의 이익을 고려하는 아가페라야 이런 불행을 치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둘째날인 10일에는 이상화 목사가 2015년 한국교회의 이슈를 전망하고, 기독경영연구원장인 배종석 고려대 교수가 기업의 시대의 경영과 목회자의 역할에 대하여 강연한다. 또 숭실대 김회권 교수가 한국교회와 신학의 현주소를 강연하고, 고려대 심리학과 한성열 교수의 앵그리사회와 행복한 목회에 대해 강의한다. 마지막으로는 숙명여대 교양교육원 교수인 김응교 시인이 기독교정신의 성찰과 실천에 대하여 강연한 후,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역임한 한완상 교수의 통일시대를 위한 새로운 신앙패러다임에 대해 강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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