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이동윤 기자] 장공(長空) 김재준 목사의 삶과 사상을 담은 서적 '장공 김재준의 삶과 신학' 출판기념회가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개최됐다. 장공김재준목사기념사업회가 주최로 진행된 이날 출판기념회는 장공을 기념하고 추모하기 위해 모인 각계 인사들과 참석자들로 성황을 이뤘다.
이날 출판기념회는 1부 기념식과 2부 기념강연회로 진행됐다. 2부 기념강연회에서 한완상 박사(전 교육부총리)가 '장공신학의 적합성'이란 주제로 발제하며 "장공의 사상, 그의 신학적 상상력과 청빈했던 삶, 그리고 그의 치열했던 '역사변혁에의 헌신'은 오늘에 와서 더욱 절박하게 요청된다"고 말했다.
한 박사는 먼저 우리 사회의 심각한 구조적 양극화는 정치사회 문제로 보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신학적 문제'이며 '교회의 과제'이며 '종교의 주요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우리는 국가의 총체적 무능과 시장의 처절한 탐욕을 목도했다"면서 "세월호 참사를 역사의 분수령적 사건이라고 보고, 한국의 기독교인들 특히 기독교 지식인들이 반드시 치열하게 다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박사는 "세월호 참사에서 '가만히 기다리라'는 지시에 충실하게 순종했던 청소년들이 몰살당한 것인데, 창조적·모험적 교육을 무시해왔던 한국교육의 민낯을 보는 듯 했다"며 "이것은 교육이 가르치고 길러내야 할 바람직한 인간이 무엇인가 하는 근본질문을 던지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세월호 참사를 보며) 표준 또는 교과서를 아무 의심 없이 그대로 수용하도록 강요하는 교육이 과연 민주시민, 민주지도자를 육성하는 교육인가를 새삼 묻고 싶다"며 "그렇다면 한국교회의 상황은 어떠한가. 교주 같은 권위로 쏟아내는 온갖 설교에 '아멘'과 '할렐루야'로 조건반사처럼 반응하도록 한국교회의 풍토에서 '가만히 기다리라'는 명령을 거역하는 창조적 도전자들이 나올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완상 박사는 "국가, 시장, 학교, 교회 모두가 세월호 참상에 무관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위기 상황에서 장공 김재준의 삶과 사상(그의 신학과 신앙도 포함해)이 가지는 시대적 적합성과 역사적 적절성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80살 가까운 저의 삶에서 장공과의 조우(遭遇)가 갖는 사회적, 신앙적 의미를 증언하고 싶다"며, 그가 장공에 대해 느낀 점을 구체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한 박사는 전쟁의 충격을 받고,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며 방황했던 청소년인 그에게 장공이 쓴 '낙수이후'는 충격적이면서 감동적인 메시지였다고 전했다.
그는 "성서절대무오설과 축자영감설에 대한 그의 날카롭고 거침없는 비판은 충격이었고, 그때까지 성서는 절대 틀릴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신했기에 장공의 '교리와 신앙'이란 글은 엄청난 충격 그 자체였다"며 성경에는 원본이 없고 사본만 있다는 언명도, 그러기에 오류는 자연스럽다는 언명도 그를 경악하게 했고, 한편 통쾌하게 했다고 말했다.
한 박사는 "(장공을 통해) 축자영감설은 인간을 존엄한 자유인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에도 위배된다는 깨달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성서 저자들이 결코 녹음기 같은 기계가 아니라고 했다. 하나님 형상을 지닌 존엄한 인격주체가 바로 나라는 깨달음은 '방황자'로 하여금 '그러면 그렇지' 하고 속을 쾌재를 부르게 했다"며 "당시 근본주의 신학의 거두에 대한 비평에서 그를 '경건한 기만'이라고 일갈한 것을 읽고 무릎을 치기도 했다"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한완상 박사는 장공의 글 '무원(無怨)'에서 감동과 격려의 메시지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김재준은 예수의 억울한 죽음 자체가 가장 웅변적인 변호라고 했다. 예수는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 원망도 변명도 하지 않았다. 원수를 용서했던 십자가의 그 사랑, 그 무원의 사랑이 없다면 그리스도교는 없었을 것이다. 원수를 이웃으로 만드는 무원의 사랑이 참평화를 세운다고 장공은 온몸으로 외쳤다"고 전했다.
장공의 사상에 대해선 "그의 실천적 삶은 참으로 복음적인 신학의 뿌리에서 자란 가지요 잎이요 열매라고 생각한다"며 "장공, 그가 김익두 부흥집회에서 성령의 은혜를 벼락 떨어지듯 받은 이후, 그 성령의 감격을 죽는 순간까지 평생 지녔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 박사는 "장공의 굴곡 많은 순례길에서 일관성 있게 그를 인도해준 이 감격은 한마디로 진정한 의미에서 복음의 동력이었다"며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속량의 은혜에서 나온 힘이었다. 이것은 삐뚤어진 복음주의자들(또는 근본주의자들)의 값싼 속죄론이 아니고, 성육신 신학과 비움 신학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 박사는 "1970년대 장공이 '제3일'지(紙)를 창간했을 때, 그가 가졌던 절박한 상황 판단은 지금에 와서 더욱 절박하게 정당하고 적합한 것 같다"며 "감히 '제3일 운동'이 다시 펼쳐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한 박사는 "제3일의 적합성(relevance)은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으로 역사적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 펼쳐질 때,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절망해 귀향하는 제자들에게 부활예수는 그들의 가슴을 뜨겁게 해 눈을 뜨게 했다. 처음에는 그 길벗이 바로 부활예수인지 몰랐다. 떡을 떼는 순간, 그들은 비로소 갈릴리 밥상 공동체 운동에서 익숙히 보았던 예수 모습을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로구나' 라는 '아하'의 깨달음에서 바로 '제3일 운동'이 시작된다고 하겠다. 그래서 절망에서 제자들은 떨쳐 일어날 수 있었다. 용기있게 다시 예루살렘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새역사가 날개짓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불같은 성령의 소통 능력을 체험했다. 역사 변혁의 큰 물줄기가 터져 나왔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으로 벌떡 일어서면서 새 구조와 새 역사를 만드는 작업에 발동이 걸렸다. 인종장벽, 계급장벽, 성의 장벽 등 도무지 허물어질 것 같지 않게 오래 버텨온 차별과 억압의 장벽들이 마침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한 박사는 "2014년 끝자락에 서서 '제3일 운동'이 절박하게 요청된다"면서 이 운동을 이끌어갈 힘은 원수사랑에서 나오고, 원수사랑으로 이어지지 않는 추상적, 초월적 사랑은 한낱 지배 이데올로기로 변질되기 쉽다고 전했다.
그는 "폭력의 원수를 용서하는 기도는 바로 참 용기의 실천이며, 이것이 우리가 선택해야 할 '제3일'의 길"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장공의 신학에서 자랑스러운 특징은 그의 '전우주적 사랑 공동체' 비전이라고 전했다.
한 박사는 "장공은 근원적 평화, 보다 공공적인 평화는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살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뜯는 이사야의 평화의 메시지와 같다"며 "장공에게 전우주적 사랑 공동체는 그 비움의 감동을, 표현할 수 없이 넓고 길고 깊은 아바사랑공동체(Love-dom)이라고 믿고 있다"고 전했다.
한완상 박사의 강연 이후, 하태영 목사(장공기념사업회 학술위원장)과 김희헌 목사(성공회대 연구교수), 이영미 교수(한신대 신학과)와 이철우 목사(기장 광주노회장)가 참여한 집담회가 진행됐다.
한편 이날 장공김재준목사기념사업회(기념사업회) 주최로 진행된 1부 기념식은 이현숙 부이사장의 사회로 인금란 목사(기장 여신도회전국연합회 총무)가 기도했고, 한신대 총장 채수일 박사(기념사업회 이사)가 기념사를 성북교회 육순종 목사(기념사업회 편집위원장)가 경과보고를 전했다.
육순종 목사는 "오늘의 한국교회의 위기가, 그리고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정체성의 위기가 자연스럽게 장공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며 "그래서 장공의 삶과 신학을 한 권의 책에 정성스럽게 담으려 노력해고, 드디어 소중한 열매를 내어놓게 됐다. 장공의 생애와 장공 자신의 생각을 이처럼 정교하게 압축해 한 권의 책으로 담아낼 수 있었던 것에 자부심과 더불어 깊은 감사를 느낀다"고 편집후기를 전했다.
이어 황용대 목사(기장 총회장)의 축사 후, 김경재 이사장이 유족들에게 저서를 전했다. 한신대 신대원 원우회는 '행복한 인생(조민하 글,곡)' 특송 후 황용대 목사가 축도를 했다.
장공김재준기념사업회 김경재 이사장은 "'장공 김재준의 삶과 신학'이라는 책 제목을 붙여 한국 기독교계, 한국 지성인들, 그리고 이웃 종교인들에게 김재준 목사의 삶과 신학사상의 핵심을 알 수 있는 기본 표준자료를 여기에 내놓는다"고 전했다.
김 이사장은 "장공은 매우 역설적 의미에서 '진보적 보수주의자, 보수적 진보주의자'였고, 평생 그리스도 예수와 동행한 진리의 탐구자였다"며 "김재준 목사의 삶과 사상을 알지 못하고서는 한국 현대사 속에서 진보적 그리스도인들이 왜 '행동하는 신앙양심'으로써 현실참여와 역사변혁 운동에 나섰는지, 그리고 왜 진보적 신학계의 다양한 학문적 활동들이 지금도 전개되고 있는가를 충분하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 이사장은 "'보수정통'을 주장하는 한국 기독교계는 장공의 진면목을 알지 못하고, 아직도 편견과 오해 속에서 진실했던 '그리스도의 종'을 무책임하게 비판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 책의 간행은 객관적 자료를 접하지 못해서 아직도 편견과 선입관을 가지고 장공 김재준 목사를 평가하는 이 땅의 그리스도 형제와 자매들에게 평가를 위한 기본 자료로 제공하는 목적을 일차적으로 갖는다. 그리고 기독교장로회 산하 모든 교회들에게 장공의 청빈사상, 역사변혁의 신학, 성육신 여성,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