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진 감독이 양화진문화원의 목요강좌 강사로 초청됐다. ©양화진문화원   ©양화진문화원

[기독일보 오상아 기자] 최근 양화진문화원 목요강좌에 초청된 인재진 자라섬국제페스티벌 총감독이 '인연과 우연'이라는 주제로 강연하며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이 시작되기까지의 비하인드스토리를 소개했다.

2003년 한 신문사의 문화강연에서 재스페스티벌에 대한 꿈 이야기를 하고 그로부터 두달 뒤 그 강연을 들은 가평군청의 한 공무원에게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가 10년동안 누적관객 140만명을 넘겨 아시아 최고의 재즈페스티벌로 인정받고 있는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의 시작이 됐다.

그는 "자라섬에는 2003년 아무것도 없었고 논에다 땅콩, 고구마 심어놓고 섬 입구에는 경비행기장이 있어서 활주로가 있고... 버려져 있었던 섬이다. 황무지라고 보면 된다"며 사람마다 부르는 이름도 달랐었다고 했다. 인 감독 개인적으로도 '어떤 인연도, 연고도 없었던' 곳이었다.

그런 자라섬에서 2004년 9월부터 시작된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은 이후 국내에 우후죽순으로 생긴 야외 공연예술축제의 첨병 역할을 하며 하나의 문화적인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그는 "2003년도에 신문사의 강의를 우연한 계기로 가게 됐는데 그날은 제가 강의하는 날도 아니었다. 친구가 집에 일이 있어서 못간다고 해서 제가 갔는데 2시간 내내 재즈페스티벌에 관해 얘기만 했다. 끝나고서 두 달이 지나서 전화 한통을 받게 됐는데 문화관광과에 근무하는 말단공무원이었다. 그가 전화해서 하는 말이 '강의를 굉장히 재밌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페스티벌 가평에서도 할 수 있는 건가요?'라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안될 것 있겠습니까?"하고 가평을 가서 그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페스티벌을 한다면 어디서 하는게 좋을지 돌아보자고 해서 여기저기 다녔다고 했다. 인 감독은 "그때는 어디가 어딘지 잘 몰랐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소방서 앞마당, 뒷마당을 데리고 다녔었다. 그분은 마당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을 하고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다 그냥 가야 되겠네 하고 가려고 하는데 '진짜 말도 안되는 데가 있는데 거기도 가서 보실래요?' 해서 보니까 자라섬이었다. 그가 제게 처음 한 말이 '여기 비 오면 가라앉아요'였다"고 말했다.

인재진 감독은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뭐라고 얘기했냐면 '여기 너무 멋지네요. 굉장히 멋진 곳입니다'였다. 그 말을 했더니 그분이 그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제가 전문가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가 '전문가'라는 말의 정의 중에 제일 좋아하는 것은 '전문가란 자기 분야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실수와 실패를 해본 사람' 이 정의를 제일 좋아한다"며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나서 헤어지고 집에 돌아와서 고민과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계속 생각하다 보니까 생각이 변해서 '혹시 여기서 하면 잘 될 수도 있지 않나. 그리고 나중에는 아예 여기서 하면 되겠네'하고 머리가 확 변하더라"고 했다. 생각이 변하고 나서 그 얘기를 했을 때 가장 격렬하게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반대한 사람은 '저희 엄마'라고도 덧붙였다. '니가 아주 서울에서 다 말아먹고 가평까지 가서 말아먹을려고 그러냐'며 '미친놈'이라고까지 했다며 그런 인연으로 시작하게 됐다고 기억했다.

그는 "그런데 자라섬에 가서 보고 여기 멋지다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있었다"며 "핀란드에 포리(Pori)라고 하는 도시가 있다. 인구는 8만 정도 되고 1966년도에 재즈페스티벌이 시작돼 지금까지 하고 있다. 거기는 섬이라 사람들이 나룻배를 타고 음악축제를 하고 나룻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축제에 한 20만명 정도 온다. 핀란드 전체 인구가 500만인데 40여년동안 전국민이 2-4번은 갔다 온 것으로 봐도 된다. 그것을 보고 깜짝 놀랬다"고 했다.

인재진 감독은 "미국에 수많은 재즈페스티벌이 있고 프랑스에 250~300개, 독일에 300개의 재즈페스티벌이 있다. 어떻게 그 많고 많은 페스티벌 중에 그 북유럽 조그만 나라의 재즈패스티벌을 봤느냐는 거죠?"라며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 기막힌 '인연'을 소개했다.

▲인재진 감독이 북유럽의 가장 큰 재즈페스티벌인 포리재즈페스티벌을 만든 유리키 캉가스 감독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양화진문화원

이어 인재진 감독은 포리재즈페스티벌에 가게 된 계기는 2000년 호주에서 생겼다고 했다. 그해 호주 인터내셔널 재즈 인더스트리 포럼에 해외 게스트로 초청이 되어 갔는데 그 포럼에서 유리키 캉가스(Jyrki Kangas), 1966년 포리재즈페스티벌을 만든 그 사람 '전설의 기획자'를 처음 만났다고 했다. 그런데 말수가 너무 없어 '이렇게 친해지기 힘든 사람은 처음 만났다'고 할 정도로 친해지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대면대면한 관계를 유지하다 행사가 이틀쯤 지난 뒤풀이에서 공교롭게도 마주보고 앉게 됐는데 그의 앞이라 맥주를 마실 때마다 자동으로 고개를 돌리고 마시는 모습이 의아했는지 유리키 감독이 물었단다.

인재진 감독은 "'대한민국에서는 훌륭한 사람과 연장자에게 존경의 뜻을 표하기 위해서 고개를 돌려서 마신다'고 얘기했더니 그 이야기를 하고 난 순간부터 그의 말문이 터지기 시작해 이런저런 모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며 "집으로 초대할테니 놀러오라는 얘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한국에 돌아와 얼마 후 핀란드 대사관에서 연락이 와서 찾아갔더니 유리키 감독이 당신을 초청한다고 연락이 왔다는 내용이었다. 그 초청을 받고 포리재즈페스티벌에 간 인재진 감독은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후 유리키 감독에게서 집에 놀러오라고 해서 갔더니 멋진 집에 살고 있었다며 그런데 거실에 많이 보던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가깝게 가서 보니 스티비 원더였다고 말했다. 또 유리키 감독이 하는 말이 '조금 기다려. 스팅 올거야. 스팅 오면 같이 먹자' 였다. 인재진 감독은 "같이 모여서 밥을 먹으면서 드는 생각이 '이 형 너무 멋있네. 이 형처럼 살아야지. 한국 돌아가면 무슨 일이 있어도 재즈페스티벌을 만들어서 이 형처럼 살아야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계속 꿈을 꾸게 된다"고 말했다.

인재진 감독은 다음날 포리재즈페스티벌의 메인 스테이지 무대 뒤에서 한 여자를 만났다고 했다. 그녀는 다름아닌 핀란드의 대통령 할로넨 여사였다. 지지율이 80%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높은 핀란드의 대통령이 경호원을 데리고 와서 무대 뒤를 왔다갔다 하다가 나중에는 무대에 올라가서 다음에 나올 뮤지션을 소개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첫 곡이 나오니 신나는 음악에 맞춰 대통령이 무대 위에서 춤을 추더라며 "지지율이 80%가 되는 대통령이 무대 위에서 춤을 추니까 관객이 얼마나 좋아했겠냐"며 "저도 굉장히 놀랬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한국에 돌아가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이런 페스티벌을 만들어서 저 형처럼 살아야되겠다' 꿈을 꿨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생각을 하면 구체적으로 준비도 하고 해야되는데 저는 천성이 게을러서 아무것도 안하고 계속 생각만 했다. '이렇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게 생각만 하다 보니까 강의를 가서도 페스티벌 얘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만 했는데 지금은 그 페스티벌을 하면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또 "1회 때는 유리키 감독을 초청했는데 그가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이걸 고치고 저걸 고치고 하면서 굉장히 많은 조언을 해줬다. 4회때 다시 초청해서 페스티벌을 보여줬더니 가면서 저에게 했던 이야기가 '제이제이 저는 내가 30년에 걸쳐서 했던 걸 4년만에 비슷하게 만들었네' 하는 칭찬이었다"고 말했다.

인재진 감독은 "제가 그날 가서 강의하지 않았든가, 공무원이 그 강의를 듣지 않았든가, 핀란드에 가서 이 페스티벌을 보지 않았든가, 좀더 파고들어 가서 제가 유리키 감독 앞에서 고개를 빳빳히 들고 맥주를 마셨으면 오늘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은 제가 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며 "아무 것도 아닌 인연이, 아무 것도 아닌 우연이 발전이 돼서, 계속 생각하고 생각하고 꿈만 꿨는데 하고 싶은 일을 거의 비슷하게 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는 "작년 전체 관객은 27만명 온것으로 집계를 하고 있다"며 "무대가 12개가 있고 12개중 10개가 무료고 2개가 유료다. 20만명 이 오는데 이들이 다 재즈가 좋아서 온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4~5만명 정도가 정말 음악을 좋아하고 재즈를 좋아해서 오고 나머지는 15만명 그냥 온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이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것이 있다. 어디선가 본듯한 기억이 있다. 사람들은 모두가 그 그림의 주인공이 돼서 사랑하는 가족, 연인, 친구와 하루를 그렇게 소풍처럼 보내고 싶어서 온다"며 "놀이문화의 굉장히 큰 트렌드를 형성하게 된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20-30년 동안 지속되는 강한 문화적 트렌드가 될 것이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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