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해 논할 때 흔히 루터의 95개 논제를 가장 중요한 논제로 간주한다. 물론 이 논쟁이 종교개혁의 시작을 알렸을 뿐만 아니라, 당시 교회와 정치 사회에 논란을 야기할 만큼 중요한 영향을 끼쳤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95개 논제와 더불어 가장 영향력 있고 중요한 논제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1518년 루터의 하이델베르크 논제이다.
이 하이델베르크 논제가 쓰여진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517년 10월 31일 루터는 95개 논제(Disputatio pro declaratione virtutis indulgentiarum) 출간으로 한차례 큰 논란에 휩싸인다. 교황 레오 5세는 어거스틴 수도회의 가브리엘 델라 볼타(Gabriel della Volta)와 접촉하고, 루터를 파면하기 위한 수단으로 루터를 이단으로 낙인 찍을 것을 요구하였다. 볼타는 이 책임을 독일 어거스틴 수도회의 주교인 슈타우피츠(Johann von Staupitz)에게 위임했다. 그러나 루터를 높이 평가한 슈타우피츠(루터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영적 아버지)는 어거스틴 수도회의 형제들에게 그의 새로운 신학을 말하도록 하기 위해 루터를 하이델베르크로 불렀다. 슈타우피츠는 루터에게 논쟁적인 문제들을 토론하기 보다는 죄, 자유 의지, 은총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설명할 것을 요구했다. 여기서 루터는 95개 논제 이후 자신의 복음주의적 신학을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하고 변호하는데, 그것이 바로 하이델베르크 논제이다.
루터는 이 하이델베르크 논쟁에서 그의 '십자가 신학'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루터는 바울의 가르침을 따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간의 지혜와 철학과 양립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 보다 더 어리석고 공격적이다. 십자가는 영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걸려 넘어지는 돌이다. 그러므로 참된 신학자는 가시적이고 분명한 것들로부터 논하는 자가 아니다. 도리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안에 숨어계시는 방식인 십자가로부터 배우는 자"라고 주장한다.
이 하이델베르크 논제는 총 40개의 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28개 논제는 신학적 논제이고, 나머지 12개 논제는 철학에 관한 논제이다. 그 중 우리가 살펴 볼 신학적 논제 28은 일반적으로 다음의 4가지로 구분된다.
1. 선한 업적의 문제 (논제 1-12). 여기서는 죄와 연관하여 인간 사역의 본성과 가치에 대해 다룬다.
2. 의지의 문제 (논제 13-18). 여기서는 죄를 극복하는데 있어 인간 의지의 중요성을 다룬다.
3. 중요한 구분: 영광의 길 vs 십자가의 길 (논제 19-24). 여기서는 "중요한 구분", 곧 영광의 신학과 십자가 신학자의 차이점에 대해 묘사한다.
4. 우리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사역: 믿음의 의 (논제 25-28). 여기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믿는 자들을 일으키는 창조적인 사랑이다.
이 하이델베르크 논쟁의 신학적 논제들의 중요성은 다음의 사실에서 잘 나타난다. 즉, 하이델베르크에서 루터의 논쟁을 들은 청중들 가운데 마틴 부처(Martin Bucer)와 요하네스 브렌츠(Johannes Brez), 그리고 루터의 제자들이 되었거나 루터에 의해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은 많은 종교개혁가들과 신학자들이 배출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논제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이러한 중요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하이델베르크 논제는 한국 교회와 신학에서 여전히 폭넓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이 논제들이 간결하고 함축적이어서, 종교개혁의 역사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루터의 신학에 깊은 지식이 없다면, 이해하기 힘든 학문적 질문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앞으로 주해와 설명을 곁들여 가며 하이델베르크 논제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루터의 '십자가 신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심이 다시 한 번 불러일으켜 지기를 바란다. 이와 함께 어디로 나아갈지 그 방향을 잃어버리고 점차 쇠퇴해져 가는 한국 교회가 다시금 십자가를 붙들고 나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 정진오 목사는...
루터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 신학과에서 석사와 박사를 취득했다. 이후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 리서치 펠로우(Research Fellow)와 예일 신학대학원 방문연구원(Visiting Scholar)을 거쳐 현재 미국 시온루터교회(LCMS) 한인부 담당 부목사로 재직중이다. (연락처: 618-920-9311, jjeong@zionbellevill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