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학센터 주관으로 정훈택 교수 추모 북 콘서트를 개최했다.   ©개혁신학센터

[기독일보 오상아 기자] 화란(和蘭·네덜란드) 깜펜 신학대학교에서 한국인으로서 첫번째 박사학위를 받은 개혁신학자 고(故) 정훈택 교수(1952~2013)의 1주기를 맞아 그를 추모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4일 경기도 용인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양지도서관 4층 라운지에서 진행된 고 정훈택 교수 추모 북 토크콘서트 '열매로 알리라'가 바로 그 자리이다. 이날 토크콘서트에 앞서서 추모예배가 진행됐다.

고 정훈택 교수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교수와 신학대학원장을 역임했고, 총신대학교 부총장과 총장 직무대행으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이날 북 토크콘서트의 제목인 '열매로 알리라'는 작년 6월 발간된 고 정훈택 교수의 총신대학교 퇴임 기념 논총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그에 의해서 영향을 받았던 제자 학자들 29명이 전체 956페이지에 논문을 기고했다.

역사신학 분야에서 이 책에 논문을 기고한 안인섭 교수는 "이것은 정교수의 신학적 영향력과 감화력이 각 분야에 얼마나 컸었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고 평하기도 했다.

이날 '고 정훈택 교수와 화란 개혁신학'을 주제로 발제한 안인섭 교수는 "고 정훈택 교수의 신학 사상을 평가하기 위한 하나의 기초적인 연구로서 그가 신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던 화란개혁교회의 신학교인 캄펜신학대학교의 역사와 신학을 살펴보겠다"며 발제를 전개했다.

안 교수는 먼저 "캄펜신학대학교는 화란개혁교회의 신학교이기 때문에, 화란개혁교회의 역사와 성격을 그대로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할 수 있다"며 "따라서 캄펜신학대학교의 사상적 기원을 논할 때 그 출발점을 화란의 교회개혁운동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14세기 공동생활형제단으로 잡는 것이 좋을 것이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 영적 운동은 그리스도에 헌신하는 삶과 교육을 강조했다. 이런 종교적 풍토속에서 토마스 아 켐피스(1380-1471)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진다"며 "그는 19세에, 캄펜에서 10분거리에 있는 쯔볼레(Zwolle)에 세워진 아그네스템베 르크 어거스틴 수도원에 들어가, 평생을 그리스도를 본받아(De Imitatione Christi)와 같은 고전을 저술하면서, 칼빈의 종교개혁과 화란 교회 개혁운동의 깊은 토대를 놓았다"고 설명했다.

▲정훈택 교수 추모 북 콘서트가 4일 총신대 신대원 양지도서관 4층 라운지에서 진행됐다.   ©개혁신학센터

이어 "네덜란드는 1568년에서 1648년까지 무려 80년에 걸친 용맹한 반-가톨릭, 반-스페인 독립전쟁을 벌여서 역사상 처음으로 칼빈주의 국가로 독립했다"며 "이 작은 나라 네덜란드는 17세기에 이르러 칼빈주의를 그 기반으로 하는 네덜란드 공화국을 수립하면서, 개혁파 정통주의와 개혁파 경건주의의 꽃을 피우면서 황금의 17세기를 보내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안인섭 교수는 "당시 칼빈주의자들 내부에서 예정론 논쟁이 발생했고, 이 아르미니우스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서, 최초의 칼빈주의 세계 대회인 도르트 총회(1618-1619)가 화란에서 열리게 되었다"며 "그 결과 영문 약자를 따서 튤립(Tulip)이라고 알려진 칼빈주의 5대 교리가 확립되었다. 화란에 전파되었던 칼빈의 신학은 보다 성숙되어 화란의 도르트에서 칼빈주의 5대 교리로 꽃피웠던 것이다"고 했다.

덧붙여 "이런 역사적 전통 위에서 독립 후 360여년간 네덜란드에서는 전통적으로 칼빈주의가 정치와 사회를 이끄는 동력이 되어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1795년에 프랑스 군대가 네덜란드에 입성한 후, 1810년에는 프랑스에 완전히 합병되고 말았다"며 "당시 화란에는 사회적 불안정과 분열, 그리고 세속주의가 풍미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어 "1813년에 화란 왕실이 옹립되면서 새로 형성된 왕실 개혁교회는 권위주의화 되어갔으며, 신학도 교회 현장과 상관없이 세속화 및 사변화 되어갔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헨드릭 더 콕을 중심으로 종교개혁의 정신과 도르트신조의 신앙고백으로 돌아가자는 개혁 운동이 경건 운동과 더불어 일어나는데, 이것이 바로 캄펜 신학대학교 출현의 직접적 원인이 된다"며 "이 운동에 참여하는 일단의 개혁교회들이 1834년에 화란 왕실 개혁교회와 결별하게 되 는 압스케이딩(분열: Afscheiding)이 발생한다"고 전했다.

이어 "이 압스케이딩의 교회 개혁 운동은 1854년 12월 6일에 캄펜에 신학교를 세움으로, 학문성과 실천성을 겸비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캄펜 신학대학교의 공식적인 출발이 되는 것이다"며 "이 교회 운동은 1869년에 총회를 열어 기독개혁교회(Christelijke Gereformerde Kerken)라 지칭했다"고 소개했다.

또 "1880년에 영역주권을 주창하면서,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자유대학교(de Vrije Universiteit)를 세운 아브라함 카위퍼를 따르는 일단의 교회들이 1886년에 화란 국교회를 떠나게 되며 이를 돌레앙찌(슬픔: Doleantie)라고 한다"며 "압스케이딩의 교회 중 기독개혁교회에 잔류할 것을 고수하는 일단의 교회들을 제외한 대다수 교회들과 돌레앙찌의 교회들이 연합하여, 1892년에 화란개혁교회(Gereformeerde Kerken in Nederland)를 형성하게 되었다"고 했다.

안인섭 교수는 이어 "2004년 5월에 화란에서 가장 큰 두 개의 개혁교회들이 170년만에 공식적으로 연합하는 역사적 사건이 발생했다"며 "이 두 개혁교회의 교단은 캄펜 신학대학교가 속해있던 화란개혁교회 (Gereformeerde Kerken in Nederland)와, 화란의 왕실이 속해 있던 화란개혁교회 (Nederlands Hervormde Kerk)이다. 여기에 극소수의 소규모 화란 복음주의 루터교회 (Evangelisch-Lutherse Kerk)가 합세해서, 화란개혁교회(Protestant Churches in the Netherlands)가 새롭게 창립된 것이다"고 말했다.

▲4일 총신대 신대원 양지캠퍼스에서 정훈택 교수 추모 북 콘서트가 진행됐다.   ©개혁신학센터

발제를 정리하며 그는 "캄펜신학대학교 150주년 기념 도서에서, 이 대학에서 교리사를 가르치는 레일링 브라우어 (Rinse H. Reeling Brouwer) 박사는 만약 지난 150년간 캄펜에서 추구해온 '하나의' 불변의 신학적 작업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이 기간 내내 칼빈의 작품들이 중단없이 읽혀졌었다는 것과 그것이 반복해서 깊이 묵상되어 왔었다는 것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며 "캄펜 신학대학교 150년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역사적으로 볼 때, 화란 개혁주의는, 칼빈주의 사상과 삶의 뿌리요 그 실천적 전파의 견인차 역할을 해 왔다"며 "화란 개혁교회를 통해서 스코틀랜드 등 영국과, 미국, 캐나다, 호주, 헝가리, 루마니아의 트랜실베니아지역, 남아공은 물론이고, 인도네시아와 수리남 등에까지 이 개혁교 회의 신학이 전해졌다"고 했다.

그는 "캄펜신학대학교는 칼빈의 개혁 신학과 그 세계화를 위한 신학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 왔다"며 "정훈택 교수는 이 정신을 가지고 한국을 향한 교량을 설치했다. 한국에서 캄펜신학대학교에 유학을 가서 신학을 연구한 거의 대부분의 신학자들 은 정훈택 교수가 직접 장학생으로 추천하여 화란개혁교회의 장학금을 받으면서 박사학위를 마쳤다"고 했다.

이어 "그들은 이 대학에 유학하여, 칼빈의 종교개혁 사상에 근거한 개혁주의 신학을 연구한 후에, 한국의 칼빈주의적 신학대학과 장로교회의 목회 현장에서 한국 개혁신학의 확립을 위해 서 학문적 노력을 쉬지 않고 있다"며 "그러므로 정훈택 교수의 신학 사상의 저변에는 개혁신학과 그 신학의 세계화라는 키워드가 놓여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고  안인섭 교수는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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