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위예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김구림(78)이 종로구 소격동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8월 24일까지 개인전을 연다.

전시장에는 '진한 장미'란 제목으로 2000년 이후 제작해온 작품 110여 점을 펼쳐놨다. 김 화백의 책 시리즈에서 제목을 따온 전시회다

1970~1990년대에 존재와 비존재, 실재와 가상의 경계를 개념적으로 탐구했다면 2000년대 작업은 양식과 제작방법, 매체, 관심사 등이 모두 뒤얽힌 듯하다. 혼란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2000년대 콜라주 작업들은 '매우 야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나 그에게 '성(性)'이라는 것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 본능이면서도 고도로 조직화한 사회에서 가장 억압되는 지점이다. 그 억압의 결과 기형적으로 분출되는 현상들은 시대를 진단케 해주는 주요 방편이다.

특히 이 시기 김 화백은 '성형'에 주목했다. 기존의 것을 고쳐서 새롭게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성형은 김 화백의 작업과 일맥상통하다. 김 화백은 이 시대 대중문화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성형을 작업에 녹여냈다. 대중 매체 속 다양한 이미지와 주변에서 흔히 발견되는 오브제로 숨겨진 욕망을 드러내고 분출한다.

1990년대 이후 그가 주력한 '음과 양' 시리즈 신작도 나왔다. 음양은 끊임없는 생성, 소멸, 변화, 발전을 주제로 시간의 흐름과 생명의 존재를 다룬다.

29일부터 10월 5까지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에서도 볼 수 있다. 천안 전시는 '그는 아방가르드다'란 제목으로 1960~1980년대 회화, 조각, 영상, 다큐멘테이션 기록설치 작품 등 40여 점으로 꾸민다. 물질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다양한 매체로 표현한 시기다.

1960년대 암울했던 시대상과 개인적 상황을 반영한 '태양의 죽음' '핵' 시리즈 등을 볼 수 있다.

김 화백은 1970~1980년대에는 시간성을 담은 오브제 작품과 미술 외 연극, 무용 등 공연 예술 분야에서 전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잔디에 불을 붙이고 이듬해 다시 새 잔디가 자라나는 과정 모두가 작품 일부로써 하나의 죽음은 또 다른 소생을 낳는다는 것을 보여준 1970년 '현상에서 흔적으로', 철판을 걸레로 닦아 표면의 성질을 변화시키는 '걸레', 테이블에 놓였지만 동시에 테이블로 스며들고 있는 '신문' 등도 눈길을 끈다.

전시에서는 김 화백의 수많은 작품 중 시대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로 평가되는 1970년대 '정물 시리즈', 일상의 사물을 주제로 한 작업들을 볼 수 있다.

특히 갤러리 1층 중앙에 전시되는 높이 2m의 브론즈 '볼(Ball)'은 원래 1979년 13cm 높이의 작은 크기로 제작됐다가 35년 만에 처음 의도대로 크게 만든 작품이다.

◇김구림은 1969년 실험그룹인 '제4그룹'을 결성하고 한국현대사회의 기성문화를 비판한 해프닝 '콘돔과 카바마인', 기성문화를 비판한 해프닝 '기성문화예술의 장례식'과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서 경복궁 미술관을 흰 베로 감는 작업과 같은 일련의 퍼포먼스들을 보여줬다. 또 기성영화의 틀을 깬 한국 최초의 전위영화 '1/24초의 의미'와 '무제', 최초의 라이트 아트인 '공간구조 69', 문명사회에서 미디어의 문제를 다룬 첫 메일아트 '매스미디어의 유물'과 한국 최초의 대지예술인 '현상에서 흔적으로'(1970)를 발표했다.

연극과 영화, 무용의 무대미술과 연출활동까지 장르를 초월하며 활동하던 그는 1980년대 중반 자신의 양식에 안주해버린 동년배 작가와 달리 입지를 과감히 떨쳐버리고 시대 정신과 감수성을 찾아 미국으로 가 끊임없이 새로운 실험을 추구해왔다.

1990년대부터 음양 사상을 기초로 한 다양한 세계의 조화와 통합을 모색하는 작품 활동을 통해 현대문명사회에 대한 예술적 비판과 작가적 성찰을 펼쳐왔다. 특히 새로운 작업에의 도전으로 평생을 주류에 편승하지 않고 자기만의 작업세계에 몰두했다. 02-541-5701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김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