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울교회(담임 박노철 목사)에서 진행된 창조론오픈포럼에서 '초기 기독교의 한반도 전래에 대한 신학적 검토'를 주제로 발제한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는 개신교와 천주교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기독교의 한반도 전래 이전에 들어온 한반도 기독교 전래에 대해 신학적으로 검토하는 가운데 '천손사상'(단군신화)과 '베스티기움 트리니타티스(Vestigium Trinitatis, 삼위일체의 흔적)'와의 관련성도 짚고 넘어갔다.
그는 "이 문제는 주로 윤성범 박사가 단군 신화를 '베스티기움 트리니타티스'로 해석한 데서 촉발되었다고 볼 수 있다"며 "윤성범은 단군설화가 환인·환웅·단군 삼신이 모두 다 남성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환인·환웅·단군을 삼위일체의 '아버지', '아들', '성령'에 대응시킨다"고 했다.
조덕영 박사는 "고조선의 시대는 교회 시대 이전의 시대이다"며 "교회 시대 이전 구약 성경이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희미한 계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약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 이유 때문인지 이 부분에 대한 자신의 연구에 대해 윤 박사는 신화의 종교현상학적 해석이 가능하기는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해석자의 주관에 의존하는 것으로 그것을 객관화 할 수는 없으므로 기독교진리와 우리 문화와의 접촉점 또는 친근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에 그치는 것이 현명할 것 같다고 선을 긋고 있다"고 했다.
또 "윤성범은 베스티기움 트리니타티스라는 용어조차 삼위일체의 흔적이라는 용어보다는 삼위일체의 잔해라는 용어를 사용해 신앙적인 적극적 접촉 용어로서가 아닌 마치 신앙의 본질과 멀어진 부스러기처럼 취급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조 박사는 "그가 단군신화가 기독교적 영향을 받은 증거로 6세기 중국에 들어온 경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하려 한 것도 단군 신화에 대한 깊은 역사적 이해 아래 그가 이 문제에 접근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며 "고조선이 멸망한 것은 경교와 전혀 무관한 주전 108년 경이었다"고 했다.
또 "단군신화를 고조선 멸망 이후 등장하였다고 본 윤성범식 판단은 식민사관의 영향인 것이다"며 "고조선과 한반도 삼국 초기 역사를 불신하는 일제 식민 사관에 무의식적으로 영향 받았음을 짐작케 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 하나님의 본질 안에 세 개의 위격이 존재한다는 삼위일체 신비의 존재 방식을 이해하기 위한 고대부터 많은 신학자들의 다양한 연구가 있어왔다"며 "베스티기움 트리니티타스는 바로 그 가운데 하나이다"고 했다.
이어 "이것은 신학이나 철학에서 어떤 사물이나 물제를 설명할 때, 그것을 간접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다른 사물이나 현상을 통해 설명하는 형식과 자료를 의미한다"며 "즉, 자연의 예증이나 사변적 유추에서 그 흔적들을 찾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성범의 연구가 큰 논란이 일었던 것처럼 어떻게 감히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하나님의 피조 세계의 흔적들을 가지고 하나님의 본성을 찾으려는 움한 도전을 하느냐는 비판 앞에 삼위일체의 흔적에 대한 연구나 설명은 늘 위축되거나 주춤거리는 경우가 많았다"고도 했다.
또한 "이렇듯 자연에서 하나님의 흔적을 찾는 작업은 성경에서 찾는 삼위일체의 논증에 비해 완전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며 "삼위일체에 대한 유비(analogy)와 흔적 연구가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은 이 부분의 대가인 어거스틴도 솔직히 인정한다"고 했다.
그러나 "유비와 흔적을 찾는 작업은 어쩔 수 없이 피조물인 인간의 제한 아래에서 인간에게 여전히 많은 유익을 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며 즉 하나님이 모든 진리의 궁극적인 원천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유비적인 논법에 의미가 부연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일신론에 있어 어거스틴에게 많은 영향을 준 터툴리안은 삼위일체의 삼위를 '뿌리, 나무 줄기, 열매'의 관계로 묘사하거나 '샘, 시내, 강'으로 묘사하거나, '태양, 광선, 광선의 종착점'의 관계로 묘사하면서 이것이 보혜사 성령으로부터 받은 계시라 했다"고 소개했다.
또 "캔터베리의 대주교 안셀름은 나일강에 있는 '샘, 시내, 호수'의 존재와 상호 관계 속에서 삼위일체를 비유했다"며 "샘은 시내가 아니고, 시내는 호수가 아니며, 호수는 시내가 아니지만 세 나일강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하나의 나일강일 뿐이다. 뿐만 아니라 샘, 시내, 호수는 각각 그 자체로써 나일강이라는 것이다"고 했다.
그는 "많은 신학자들이 제한적이기는 하나 삼위일체를 유비적으로 해석하려 들었던 것처럼 단군 신화의 천손 사상을 기독교적으로 접근해보려는 시도 자체가 무조건 불경한 것은 아니다"며 "하지만 단군신화에 나타난 신화적 구조는 어떤 거창한 신앙이나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삼위일체의 흔적으로서의 '베스티기움 트리니타티스'보다는 국가 체제가 특별한 존재성을 가진다는 왕통 보존과 권위적 요소를 더 많이 가지고 있다고 보여진다"고 했다.
이어 "단군 신화가 일본으로 건너가 더욱 변질된 천손 사상이 되어 철저한 천황 권위 강화에 악용된 것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면서 "설령 일부 유대교적 유일신 사상이 가미되었더라도 그것은 기독교가 수용 가능한 범위를 훨씬 벗어난 너무도 많이 변질된 신학 사상일 뿐이다"고 했다.
그는 "단군 신화는 정상적 창조론이나 삼위일체의 흔적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토테미즘과 애니미즘과 샤머니즘이 혼재된 고대의 신화를 그대로 보여준다"며 "갈등과 탐욕의 인간 역사의 패턴을 볼 때 단군 신화는 곰 토템과 호랑이 토템을 가진 씨족간 결합의 모습을 더욱 보일 뿐이다"고 했다.
또 "삼위일체 흔적이 구약에 있다 하더라도 계시의 점진성 아래 삼위일체에 대한 뚜렷한 모습은 초대교회 시대부터 시작된다"며 "그것도 많은 초대 교부들의 시대를 거치면서 정립된 것이다"고 했다.
그는 "그런 기독교적 교리를 단군 신화에 적용하는 것은 당연히 무리가 따른다. 조직신학의 관점에서 단군신화의 창조론, 삼위일체론은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볼만큼 성경과 다른 윤색과 변질 투성이인 것이다"며 "더군다나 기독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기독론이나 구원론의 모형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독교는 성경이라는 불변의 토대 속에서 진리를 모색한다. 그 한계치를 벗어난 기독 운동은 변질이요 오히려 해롭기까지 하다"며 "그런 면에서 단군 신화나 삼일신고 등의 천손 신화를 비신화화하여 기독교적 관련성을 찾으려는 일부 시도는 학문적 가치는 있을지 모르나 기독교적 가치 평가의 범위를 벗어난 영역으로 벗어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고 했다.
이외 그는 사도 도마의 (한반도)선교 가능성, 가야 연맹에의 기독교 전래 가능성, 경교의 전래 가능성, 한일 관계사 속의 기독교 등을 다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