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승이 할머님! 그간 평안하셨지요? 지난 번 전화통화에서 관절염으로 고생한다 하셨는데 건강은 좀 나아지셨는지요?

재승이를 서울로 올려보내달라 하신 날이 내일로 다가왔습니다. 불현듯 재승이 손을 붙잡고 학교를 찾아와 '원장님'을 찾던 작년 이맘때의 할머니 모습이 떠오릅니다. 부모가 일찍 이혼을 하는 바람에 '에미 에비'의 따뜻한 정조차 느껴보지 못한 재승이가 불쌍하다고, 얘가 착하긴 한데 학교에서 자꾸 따돌림을 받는다고...학비는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일 년만이라도 재승이를 맡아달라며 애처로운 눈빛으로 사정을 하셨지요.

사실 재승이의 삼무곡 생활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습니다. 같은 방에 배정된 아이들이 일주일 만에 모두 뛰쳐나와 재승이와 함께 살 수 없다고 아우성을 쳐댔지요. 왜냐고요? 재승이가 쉬지 않고 말을 거는 통에 밤잠을 잘 수 없다는 겁니다. 심지어 재승이가 함께 있는 상태에선 수업진행도 안 되고, 전체모임도 할 수가 없었지요. 급기야는 재승이를 스승으로 모시기 위한 천사들의 모임이 꾸려졌습니다. '삼무곡자연예술학교'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거나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배웁니다.

2인실 방 하나를 정하고 여섯 명의 선배들이 돌아가며 함께 생활했습니다. 결핍에서 비롯된 생활습관, 소외될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만들어낸 끼어들기 언행, 엄마에게 해보지 못한 유아의 어리광까지 ADHD로 명명된 재승이의 행동들을 6명의 선배들은 묵묵히 받아내었습니다. 자신이 오롯이 받아들여지는 경험! 이 경험은 재승이를 놀라운 모습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왕따의 두려움에서 벗어난 재승이는 친구들과 더불어 평화롭게 사는 법을 터득한 것이지요. 이제는 재승이에게서 그 어떤 문제행동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그런 재승이를 서울로 불러올리시겠다니요? 물론 교육비부담 때문에 더 이상 학교의 신세를 질 수 없다는 할머니의 말씀,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그 또한 방법을 찾아보면 될 일이이죠. 어제는 재승이를 불러 재승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서울로 올라가고 싶다면 올라가게 해줄 것이고, 학교에 남고 싶다면 학교에 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겠노라고. 그날 저녁 재승이는 하교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남겼더군요.

"아빠, 전 여기 1년 살면서 배운 것도 많고 공부도 많이 했어요. 물론 아빠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더 즐겁고 재미난 공부들을요. 정해져있는 답이 없는 그래서 더욱 궁금한. 누군가 사고를 치면 피해자보다는 가해자가 얼마나 힘들어서 그런 사고를 쳤을까.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이상한 학교예요. 저도 처음엔 이해를 못했지만 지금은 헤어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요. 참 이상하죠? 절 세상에 태어나게 만든 아빠보다 절 더 많이 이해하고 제 마음을 이해해주는 학교예요. 좀 못 살면 어때요. 좀 멍청하면 어때요. 남들 승용차 탈 때 저는 걸어다니면 뭐 어때요. 내가 선택한 일이고 이게 내 길인걸! 남하고 비교하며 더 잘 살고 싶은 욕심 저에게는 없나 봐요. 설마 죽기야 하겠어요?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인데 물론 지금 저를 이해해달라는 건 아니에요. 어느 어른이든 저희를 이해하지 못했고, 저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으니까요. 아빠 그거 아세요? 늘 가출하며 현실을 회피했던 제가 아빠에게 이렇게 솔직하게 제 마음을 표현한 건 이게 처음이라는 거. 아빠 그거 아세요? 늘 가출하며 현실을 회피했던 제가 아빠에게 이렇게 솔직하게 제 마음을 표현한 건 이게 처음이라는 거. 아빠! 제가 삼무곡에서 계속 공부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세요."

재승이 아버님! 재승이 할머님! 허락해주신다면 재승이를 학교에서 키우겠습니다. 우리들이 조금씩 덜 먹고, 조금씩 나누면 학교에서 재승이 하나 감당 못하겠습니까? 그러니 너무 걱정 마십시오. 미안해하지도 마시고요. 혹시 알겠습니까? 누군가 재승이의 딱한 사정을 듣고 후원자를 자청할지...? 아무튼 관절치료, 잘 받으십시오. 이만 줄입니다.

출처: 새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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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종률목사 #삼무곡수도회